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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mu Apr 05. 2017

020 애묘인 전략

오랜만에 K를 만났다. 그녀와 난 같은 스타트업 회사서 일했다. 권고사직을 받고도 몇 달째 실업급여를 받지 못해 형사소송까지 벌인 우리다. 얼굴만 마주해도 막막한 세상살이의 푸념이 좔좔좔 쏟아진다. 대화의 주제는 대개 콘텐츠로 돈벌어먹기다. 무엇을 만들면 팔릴까, 글을 쓸까, 그림을 그릴까, 브런치? 텀블벅? 팟캐스트? 1인출판? 돈 안 되는 얘기만 오가고 있다.   

   

그러다 문득 K가 말했다. “아림씨도 고양이를 키워보지 그래요?” 고양이? 나는 지금껏 한 번도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아, 저도 그러고 싶은데 경험이 없어서” 그러자 K 왈. “그럼 홍보하는 데 유리할 텐데” 난 순간 멍-했다. 무슨 말인가 했다. 고양이와 홍보. 고양이와 홍보. 고양이와 홍보. 그리고 이내 풉, 웃고 말았다. 맙소사, 그런 의미구나. 반려동물까지 자기홍보의 수단이 되는 시대다. 경계는 없다. 애묘인은 또 다른 애묘인을 공략한다. 이름하야 ‘애묘인 전략!’ 난 엄청난 사회학적 징후를 잡아낸 무명학자라도 되는 듯, 음흉하게 낄낄낄 거렸다. 그래, 그런 거야. 그런 거였어.      


난 인스타그램 중독이다. 팔로우하고 있는 계정만 739개다. 이중엔 이른바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데 대개 프리랜서들이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소규모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양가감정에 빠져있다. 부러워하면서도 시샘하고 감탄하면서도 비웃는다. 그들의 부지런함과 노련함엔 혀를 내두르면서도 혼잣말을 가장한 은근한 과시, 이미지들이 보여주는 세계의 협소함은 한껏 조롱해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안다. 그중에서도 가장 우스운 건 나다. 빈정거리면서도 결코 언팔은 하지 못한다. 도대체 방법이 뭘까, 그들의 ‘있어빌리티’를 염탐한다. 어설프게 따라도 해보는데 사진의 구도며 빛의 조절, 피사체의 근사함에서 언제나 모자란다. 한참 떨어진다. 그럴 땐 배로 낭패감이 밀려온다. 그럴 듯한 무언가, 내게 있을 리 없는 무언가만 찾고 있다.     


정말 고양이라도 키워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무명인 내가 글을 써서 팔아먹으려면 SNS을 잘해야 한다는데, 매사 어리숙하고 촌스럽고 일관성 없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어필해야 할지 모르겠다. 노려보는 고양이, 널브러진 고양이, 멍 때리는 고양이, 가물가물 조는 고양이, 서로 할퀴고 싸우는 고양이. 그 많은 고양이 사진들 사이, 사이 책 홍보를 해야 하나. 하긴 그것도 전략이라면 전략이겠다. 난 정말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함정이란 생각도 든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전시하면서 “나를 뽑아줘” 외치는 것은 불특정 다수에게 아부하는 것 같은 아찔함이 있다. 소통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글쎄 그렇게 간단할까. 홍보인 듯 홍보 아닌 홍보 같은 일상샷들이 결국 홍보로 귀결되는 걸 한참 보아왔다. 잠투정하면서 침실사진을 찍어 올리고, "바쁘다" 하면서 노트북을 찍어 올린다. 도대체 진짜는 뭔가 싶다. 이것이야말로 ‘픽미세대(Pick Me)’의 운명일까. 나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적극적으로 몸을 내맡겨야 하는 건 아닐까.     


며칠 전 재밌는 일이 있었다. 아트하우스 모모에 영화를 보러가는 길에 이화여대 복합단지 계단에서 사진을 찍는 무리를 보았다. 한 사람이 사색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으면(입은 굳게 닫고 시선은 먼발치에), 그 바로 앞에서, 정말 30cm도 안 되는 코앞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친구가 있었다.  웃겼다. 그런 모습은 자연스럽게 '도촬'되는 거 아닌가. 관광객도 뒤섞인 그 번잡한 공간에서 ‘사색에 젖은 나’를 찍으려는 젊은이들의 투지에 진정 감명 받았다.      


그럼 나는 어떠한가. 내 계정을 쭈욱 -살펴보았다. 나도 하등 다를 게 없었다. 인화하기 전인 필름통을 찍어 올리면서 “예쁜 모습으로 돌아와”라고 써놓았다. 누구한테 말하는 거니? 필름통? 요가매트 위에 서 있는 맨발도 찍어 올렸다. 덧붙여 써놓은 말이 가관이다. “세계는 넓고 난 한참 멀었다.” 이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나도 참, 부끄럽다. 도무지 모르겠다. sns 시대라는데 이렇게 해도 부끄럽고 저렇게 해도 부끄럽다. 그냥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그래선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으니 난 또 줄타기하는 심정으로 사진을 올려봐? 말아? 올려봐? 말아?  

   

고양이가 진정 부럽다. 그렇게 도도해도, 꼴리는 대로 살아도, 거드름을 피워도 모두가 예뻐해 주는 구나. 네코상, 우라야마시이데스!! 고양이가 상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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