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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oooz Jul 17. 2020

30년 된 아파트의 팩폭

첫 집, 첫 인테리어의 시작

집은 대책 없이 엉망이었으므로 남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리모델링을 결정하고 짐이 모두 빠져나간 공간을 보았을 때 머리가 지끈거렸다. 처음 집을 보러 갔을 때 감탄했던, 그 한가한 감상은 아주 잠깐,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짐이 나간 자리에 서서 막막함을 느꼈다. 자취는커녕 방 꾸미기의 경험도 없는 내가 엉망인 공간을 보고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는 상상력 같은 건 없었다. 곧 남편이 될 남자 친구에게 내색은 못했지만 내심은 일단 돈부터 걱정이었다. 경험이 없으니 예산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즈음 유튜브며 블로그며 온갖 미디어와 어플을 총동원했는데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는 난파선이나 다름없었다. 이름난 인테리어 회사에 컨택해 견적을 받고 그중 몇 곳은 미팅도 했다. 오래전부터 함께 일하길 꿈꿨던, 알만한 인테리어 회사에는 컨택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문의글을 남기거나 컨택 메시지를 보내면 거의 당일, 늦어도 다음 날 오전에는 회신이 왔다.


우선 유선으로 담당 매니저와 상담을 하는데, 아파트 이름을 대면 거의 대체로 구조는 훤히 알고 있었다. 몇 가지 중요한 니즈 사항을 확인하고 대략의 견적을 말해주거나 최소 견적 가이드를 알려주었다. 그 몇 곳의 예산이 비슷했기 때문에 무리는 되지만 일단 그만한 예산을 잡아두고 우선 숙고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고작 17평 되는 아파트의 수리 비용은 간담이 서늘할 정도였다.


평수가 작다고 예산도 작은 것은 아니었다. 평수와 상관없이 들어가는 디자인비와 인건비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인데 서늘해지는 내 간담과는 무관하게 그래도 이 업계가 인건비를 합당하게 책정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구나,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싶어 비용과는 상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내가 가진 돈으로는 무리한 예산이었다.


그즈음, 충분한 돈이 없는 내가 너무 싫었다. 인스타그램과 매거진에서 보던 인테리어를 갖추고 살려면 일단 내 재정상태부터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이 시기에 참 길고도 꾸준하게 체감했다. 삼십 년 훌쩍 넘게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 없다가 현실로 뼈를 맞으니 더 아팠다.


서류 때문에 어느 날 부동산을 다시 방문했을 때 사장님이 나를 붙잡고 설득했다. "이렇게 오래된 아파트는 이 동네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니까!"


인테리어 사무실까지 두루 경험했다는 부동산 사장님은 집을 계약하고부터는 마지막 잔금을 치를 때까지 우리를 살뜰히 챙겨주었는데, 인테리어 회사를 알아보고 있다는 내 말이 영 탐탁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장님 말은 큰 인테리어 회사는 건물세도 내야 하고, 몇십 명, 몇 백 명 되는 직원들 월급도 줘야 하니 최소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주머니 사정이 궁했던 나에게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귀가 얇은 나는 그 길로 집 인근 인테리어 집도 갔다. 쌓여있는 자재 속에 겨우 공간을 내어 만든 의자에 앉아 집 상황을 아주 간단히 말씀드렸을 뿐인데 단박에 견적이 딱 나왔다. 그 견적이 얼마나 신통방통 했냐면 우리는 그 날 소고기 회식을 했다.


"견적이 5분의 1로 줄었다."


살기로 한 아파트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몇 가지 기술적인 이야기도 나왔다. 전에 인테리어 회사에서 미팅할 땐 없던 이야기였다. 아파트 상황을 훤히 아시니 되는 건 된다, 안 되는 건 안된다로 바로바로 정리가 됐다. 내가 하고 싶었던 몇 가지 인테리어 요소는 30년이나 된 집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몇 가지를 포기하는 대신 소소한 몇 가지는 원하던 대로 진행하기로 하고 계약을 했다. 유명하다는 인테리어 회사의 포트폴리오가 눈 앞에 아른거렸지만 나는 나의 재정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았다. 집의 나이를 고려해주기로 했고 잡지에 나올 법한 집 대신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작업자를 구한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His comment

솔직히 유명한 곳에서 받았다는 몇 천 빠진 억에 가까운 견적을 들고 왔을 때 알아서 하라고 했지만 속으로 정말 계약해버릴까 봐 내가 얼마나 쫄았는지 알아? 네가 대출이라도 받아서 진행하겠다고 농담처럼 얘기했을 때 내 표정 봤지? 나 진짜 심장 벌렁거렸잖아. 그래도 좋은 사장님 만나서 얼마나 다행이야. 봐. 지금 얼마나 좋아. 나는 우리 집이 제일 좋더라.

거실과 부엌이 될 공간. 오후 5시쯤의 빛이 좋았다.
확장을 고민했던, 생각보다 깊고 넓은 베란다.
부엌. 호기롭게 ㄴ자 주방을 꿈꾼 날.
심란했던 화장실
방. 방.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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