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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Dec 02. 2022

오늘 뭐 먹었지 13

황태구이




본격적인 냉털의 시기다. 곳간처럼 채워둔 냉장고를 털어먹는다. 혼자 사는 것의 장점은 모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비슷한 맥락 같지만 '제멋대로'라고 풀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대로 장을 보고 제멋대로 쌓아두기 일쑤다. 장보기를 좋아해서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장을 본다. 퇴근길 동네 마트에서 세일하는 고기와 두부, 콩나물 등을 잔뜩 집어왔다. 다음날 밤에는 마켓 컬리에서 먹고 싶던 밀키트를 잔뜩 주문한다. 다음 날 아침이면 집에 상자가 쌓여있다. 하루는 엄마 집에 갔다가 김치며 밑반찬들을 그득히 들고 온다. 그때그때 먹고 싶은 대로 장을 보고 한 끼를 해 먹고 냉장고며 냉동실에 넣어둔다. 많은 음식들이 냉장고에 들어가 자리를 차지한다. 이런 것들이 쌓여 냉장고가 포화상태가 되면 그때는 냉털을 시작한다.

인생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이 있다. 성경 구절 중에 전도서 3장 말씀을 좋아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는 말로 시작을 한다. 냉장고를 비울 때마다 이 구절이 생각난다. 응용하여 채울 때가 있으면 비울 때가 있는 것이라 혼자 말한다. 맥시멀리스트의 비겁한 자기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확실히 궤변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버리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최대한 사둔 것들은 살려서 먹으려 노력한다.

어제는 사둔 지 몇 개월이 된 꽤나 오래된 황태구이를 먹었다. 강원도에 놀러 갔을 때 인제 휴게소의 지역 특산물 코너에서 샀었다. 살 때는 좋아서 샀는데 막상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아 냉동실에 방치되었다. 엊그제 냉동실을 정리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냉장실로 이동해두었던 것이다. 황태 구이는 양념이 다 되어 있어 따뜻하게 구워서 먹기만 하면 된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긴 황태구이를 3등분으로 잘라 양면을 노릇하게 구워냈다. 기름과 만난 고추장 양념 냄새가 고소하게 퍼진다. 기대 이상의 비주얼과 냄새에 입에 침이 고였다. 현미 찰밥과 얼마 전 해둔 엄마의 김장김치와 함께 상을 차렸다. 황태가 부드럽고 촉촉하다. 씹을수록 고소함과 양념의 감칠맛도 좋았다. 이걸 왜 안 먹고 몇 달이나 냉동실에 넣어둔 건지 모르겠다. 아, 그때는 냉장고를 비울 때가 아니어서 그랬나 보다. 궤변이 또 불쑥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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