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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Jun 28. 2023

오늘 뭐 먹었지 17

월남쌈




채소가 잔뜩 먹고 싶은 날이 있다. 푸르고 싱싱한 채소들을 입 안에 가득 넣어 우걱우걱 씹고 싶다. 어디에서 본 건데 먹고 싶다는 건 몸이 부족함을 알아서 그러는 거라고 한다. 내 몸이 지금 채소를 필요로 한다니 그렇다면 오늘은 월남쌈이지. 월남쌈은 가장 쉬운 조리법으로 높은 만족도를 주는 음식 중 하나다. 냉장고에 있는 몇 가지 재료를 썰기만 하면 된다. 집에서 쌈밥을 먹을 때 쌈과 쌈장만 있으면 다른 재료는 고기든 참치든 그냥 채소만이든 있는 것을 먹는 것처럼 월남쌈도 그렇다. 라이스페이퍼와 몇 가지 채소, 월남쌈 소스만 있으면 충분하다. 물론 나는 욕심쟁이라 꼭 필요로 하는 게 조금 많다. 내 기준에서 월남쌈을 만들 때 꼭 필요한 것은 섬유소가 풍부한 쌈채소들, 당근이나 오이처럼 아삭한 식감이 있는 채소, 삶은 달걀이나 크래미처럼 채소만으로 얻을 수 없는 포만감을 주는 단백질 재료 (크래미가 단백질인지는 모르겠다), 버미셀리 (가는 쌀국수), 그리고 고기다. 고기는 오리고기나 우겹살, 혹은 대패 삼겹살 같은 것이 좋다. 예전에 월남쌈을 본격적으로 사 먹기 시작한 후 압구정동에 있는 호주식 월남쌈이라는 간판을 단 곳에 갔었다. 그곳에서 고기를 구워서 월남쌈과 싸 먹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후로 월남쌈을 먹을 때는 이런 고기들을 넣어서 먹는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간단히 먹는 척하고는 너무 거창하다. 그리고 필수인 것은 역시 소스. 예전에는 땅콩잼을 사서 직접 휘핑을 해서 먹는 것이 제일 좋았다. 요즘에는 월남쌈 소스가 워낙 다양하게 잘 나와서 그런 정성을 들이지 않는다. 시판 소스로 피시소스 맛이 나는 월남쌈 소스와 땅콩 소스 이 두 가지가 있으면 매우 만족이다.

오늘은 마트에 가니 모둠쌈이 있어서 채를 썰고 집에 있던 당근과 아보카도를 썰었다. 훈제 오리고기를 살짝 볶고 버미셀리는 뜨거운 물에 담가 익혔다. 크래미는 역시 빠질 수 없다. 간단히 먹는 척하고 거창하게 차려놓고 앉아서 월남쌈을 돌돌 말아먹어본다. 아 역시 맛있다.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던 한 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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