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 영월 에세이 『가끔은 영원을 묻고』 인디문학1호점
한달살기가 인기다. 낯선 곳에서 한 달 동안 일상과 여행의 경계가 모호하게 사는 것이 포인트이다.
내 기준의 이상적인 한달살기는 말은 안 해도 눈빛으로 서로 아는 체 할 수 있는 이웃이 있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이웃과 인사도 할 수 없는 동네에서 한 달을 살면 어떤 재미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매일 핫플이나 관광지를 가는 한 달짜리 여행이지, ‘살아’ 보는 것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지 않나..
근데 도시에선 원래 이웃과 인사를 잘 안 한다. 그러니 도심 속 관광호텔에서의 한 달 ‘살기’라니... 정말 이상해 보인다. ‘살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무리 잘 봐줘도 한 달 여행이다. 그래서 관광지나 대도시에선 이웃끼리 함께 입주하는 한 달 살기 전용 집, 커뮤니티 호스팅 서비스가 있는 것 같다. (돈 받고 이웃/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요조님의 한 달 살기가 내가 꿈꾸던 한 달 살기에 가깝다. 정말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과 이웃해 살면서 실례와 친절을 주고받고, 동네에 카페가 딱 하나밖에 없어서 강제로 얼굴을 트게 되는 것.
근데 그런 걸 원하는 나도 나름 요즘 사람답게 낯선 데서 신변을 드러내는 건 두렵다. 처음 보는 얼굴이 자주 보는 얼굴이 되고 나면 “이사 왔어요?”로 시작되는 호구조사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안 왔나? 애는..? 나이는....?
“쯧, 서울 사람들이란..”
(책에서 나온 말을 인용함..)
영월에선 그런 걱정은 별로 할 필요 없는 것 같다.
요조 님의 서술에 따르면 영월은 이런 동네다.
길고양이가 길에 아무렇게나 누워있는 동네.
물이 불면 물에 쓸려내려 가 무너질 걸 알면서도 자연으로 돌아가는 재료들로 도보로만 건널 수 있는 낮은 다리를 짓는 곳.(섶다리)
노을 지는 풍경과 예쁜 선돌이 있는 곳.
나는 요조 님이 그녀의 언어로 번역한 영월을 ”무해한 곳“이라 받아들였다. (실제로 살인, 강도가 0건인 동네였다. 21년 기준)
요조 님의 한달살기로 들여다본 영월은 고양이를 괴롭히거나 귀찮게 하지 않는 동네다. 이방인에게 과하게 친절한 분위기도 아니며, 관광지에 사람을 모으겠다고 요란한 파티를 열지도 않는다. 지역 홍보하는 방법이 책인 곳이다. 작가를 초대해 살게 하고 책으로 홍보하는 곳! 한달살기 선구자 방랑 원조 시인 김삿갓의 고장 맞네싶다.
그리고 또 일단 각종 다리에 무지갯빛 LED장식을 안 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쏙 든다. 23년 1월 기준 책 속의 밤 영월 사진은 별사진뿐이었다. 나중에 명소라면서 다리에 무지개 LED 켜면 좀 실망할 것 같다. 깊은 내륙이어서인지 친환경, 에코, 자급자족 이런 게 인구규모에 비해 활발해 보이는 것도 멋지다.
태백 하면 폐광, 강원랜드, 정선하면 리조트, 평창 올림픽, 인제 카레이싱, 황탯국.. 어?.. 나 강원도 잘아네..
여튼 이제 보니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강원 산골 이미지에 가장 맞는 곳은 이름도 낯선 영월이었다.
그리고 선돌. 나는 이 이름이 입에 안 붙어서 선바위, 입석 등으로 자꾸 불렀는데 그냥 서있는 예쁜 돌이다. 노을명소라고 한다. 내 이름도 마침 선화라서 가끔 개구진 나를 선돌이라고 불러달래야지 하고 다짐도 했다. 노을을 보는 걸 좋아하는 선돌. 노을풍경이 예쁜 선돌.
새로워서 똑같은 것들이 매일 생기는 도시에선 경험하기 어려운 산골 동네의 이런 매력이 좋아보인다. 돌아볼 곳이 너무 많아 한 달로는 다 돌아볼 수 없다는 유명 섬의 한달살기도 좋지만 여기도 한달살기에 꽤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조님이 머문 곳의 호스트(집주인) 영미님과 동료분들은 농사를 지으시기 때문에 겨울을 준비하는 문턱인 가을이 무척 바빠 보였다. 그래도 그 와중에 다들 잔잔하게 서로를 신경 쓰는 느낌. 뭔가.. 이웃을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내적 이웃이 생겨버리는 슴슴하고 무해한 동네. 이 책을 읽고 영월의 붉은 가을이 궁금해졌다.
<가끔은 영원을 묻고 - 가을 영월, 붉은 영원>을 읽고
요조 , 인디문학 1호점 영월군청, 무료배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