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르 웃던 네 모습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해
오랜만에 던진 농담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네 얼굴이 오래도록 시무룩해 보였다
너는 시소를 타지도 않았는데 나는 수평을 맞추고 있지 균형을 생각하지 말라는 너의 당부를 잊어버렸어 세상에는 균형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너는 그네를 타고 저 멀리 떠나가려 했어 그러나 아무리 발을 굴러도 제자리 다행이야, 삶이라는 중력에서 탈선하지 않고 제자리를 맴도는 너를 내가
사랑할 수 있어서
너는 목마를 좋아했지 세상은 원래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이라고 네 말을 듣기 위해 거꾸로 앉았고 그때부터 세상이 거꾸로 움직이기 시작했어
겨울과 여름은 한없이 냉정하고 뜨거워서, 봄과 가을은 진심으로 외로워서 나는 놀이터에 가지 않아 놀이터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불안하지 불안은 미끄럼틀 위에서 뛰어내리는 아이 같아 저 감정은 아이들을 집어삼키고 머지않아 놀이터까지 집어삼키겠지 너의 미소를 하얗게 삼켜 버린 것처럼
까르르 웃던 네 모습 기억할 수 없어서, 정말 미안해
※ 시의 느낌은 좋아하는 후배 '박주원'의 연주곡 「잔상」에서 빌려왔다. 아래 음악을 들으면서 시를 읽어 보시길 청해봅니다.
주영헌 시인은...
∘ 시 낭독에 진심인 시인.
∘ 2009년 계간 시인시각 신인상(시), 2019년 불교문예 신인상(평론)으로 등단
∘ 시집 『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걷는사람) 외
∘ 김승일 시인과 함께 <우리동네 이웃사촌 시 낭독회>를 진행하고 있으며, 평일 아침 6시 30분 소셜앱인 <클럽하우스>에서 「시로 시작하는 아침」을 진행하는 등, 시·문학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