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한동안 붕 뜬 기분이었다.
10월 14일이 회사 마지막 날이었고, 새 회사를 11월 16일에 시작하기 전에 한국을 일찍 가서 2주 정도 가족이랑 쉬다가 리모트잡으로 한국에서 일할 계획이었다. 새 회사에서도 컴퓨터를 한국 가는 날짜에 맞춰서 일 시작하기 전에 보내주기로 해서 모든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그래서 아무 걱정 없이 잘 쉬면서 포트폴리오 재정비도 하고, 그동안 배우고 싶었는데 미뤄왔던 도자기도 만들면서 평화로이 지내다가 저번주 월요일에 갑자기 연락이 왔다. 현재 맥북 물량이 모자라서 미리 보내줄 수 없게 되었다고 했고, 한국에서 2달 넘게 일할 예정인 나는 노트북을 받아야 해서 한국행 전체를 미뤄야 하게 되었다.
갑자기 가족과 함께가 아닌 나 혼자 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길게 쉬는 계획을 안 세웠을 텐데라며 나는 나를 자책하게 되었고,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었다. 사실 세상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될 수는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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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쉰다고 매일 놀지도 않았고, 항상 같은 시간에 일어나 그동안 해보지 못한 것들을 도장 깨기를 하며, 편히 쉬지 못하는 나를 보며 좀 더 유연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주부터는 의도치 않는 쉬는 시간이 생긴 것을 감사하며 베를린에 가보지 못했던 서점도 가고 혼자 미술관도 가면서 이 시간을 온전히 즐겨보려고 한다.
바쁜 게 미덕인 삶을 벗어나 나답게 살아보려 한다. 이 시간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조급해하지 말고 좀 더 느긋하게 살아봐야지. 세상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될 수는 없지만, 내 시간을 내 뜻대로 사용할 수는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