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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운 Mar 15. 2019

네가 만들어준 페이지 중 두 번째

왼쪽 손목에 붕대를 감다 말고 전에 네가 쓰레기통에 생일 선물을 버렸다던 이야기가 생각났어.

내가 기억하기론 겨울에 생일 초를 후- 불었던 것 같은데 이야기를 듣던 그 날따라 무더워서였던지 거리 속 등장인물을 상상하면 하나같이 팔다리를 훤히 드러내며 걷고 있어. 그리고 복잡한 도로변 어딘가에 입 벌 린 쓰레기통이 서 있고 그 안에는 촌스러운 포장지에 둘러싸인 책가방이 들어있는 식이지.

쓰레기통에 버리려면 가방이 대체 얼마나 촌스러워 야만 할까 다시 상상해보다가 나는 무엇이든 버리기 힘들 것만 같아서 쓰레기통 옆에 가방과 남겨졌을 누군가의 표정을 대신 상상해봤어.


네가 가끔 엑셀을 세게 밟을 때마다 그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선명해졌어. 그 뒤로 나는 너를 만나면 자주 넘어져서 발목을 접질렸는데, 이제 오른쪽 발목 통증을 잊을 수 있겠다 싶더니 이번엔 턱이 깨졌거든. 넘어질 때 무얼 짚었던 건지 손목 인대도 파열되면서 팔꿈치와 무릎까지 시퍼렇게 멍이 든걸 남의 일처럼 구경하며 또 상상했어.

나라면 가방을 쓰레기통에서 꺼내어 탈탈 털어보았을까 아니면 그냥 숨죽여 울었을까. 그런데 정작 선물을 쓰레기통에 버린 사람이 화도 대신 내고 집으로 돌아가 펑펑 울었대.

이렇게 되면 촌스러운 가방을 생일 선물로 받은 사람과 선물했더니 촌스럽다고 화내며 쓰레기통에 버리는 걸 목격한 사람과 둘 중에 누가 나중에 더 슬픈 거냐고 묻다가 손목도 턱도 너무 욱신거리는데 고운아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도 돼. 나를 안은 엄마의 목소리가 떨려서 나도 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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