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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명못정함 Jul 21. 2024

'판다 임대 경쟁'…한국 정치는 4류라더니

말로만 '동물보호'…정치적 유리함 엿보이면 본색

MBC 유튜브 채널 '일사에프' 갈무리.


최근 뉴스를 보다 난데없이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명언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 수준은 4류, 관료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다."


서울시와 대구시가 자기네들판 푸바오 임대를 추진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무려 '정치인' 시장들이 직접 나섰다죠.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 각각 국내 정치에서 유력한 인물들인데 생각하는 수준이 이렇다니 저는 그저 놀라고 말았습니다.


관련 뉴스가 나가자마자 반대 여론이 줄을 이었습니다. 


오세훈과 홍준표는 이런 반응예상 못했을까요. 


설마 배짱이었을까요. 혹은 푸바오가 워낙 인기였으니, 저들도 판다 한 마리 데려오면 지지율에 도움이 될 줄 알았던 걸까요. 아니라면, 시민들이 넙죽 환영할 줄 알았을까요. 


무엇이든, 대단히 한심한 발상입니다.  


<서울시 시민참여 게시물 中>

"푸바오는 중국으로 돌아간 이후 3개월 만에 한국에서의 밝고 명랑했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변했습니다. 푸바오 같은 불행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그 어떤 판다라도 받아들여서는 안 돼요."
"태어날 때부터 보고 자란 사육사를 판다로부터 떼어 놓는 것은 동물에게 못할 짓입니다. 푸바오 외 다른 판다들이 그런 고통을 다시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두 지자체의 판다 임대 추진에 시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대개 위와 비슷합니다. 쉽게 말해, 동물을 위해 해선 안 될 짓에 서울·대구시가 되레 열을 올리고 있단 거죠.


판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야


판다 임대 추진, 진짜 한심한 이유


물론 "판다한테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 이런 논리는 다소 감성적이라 정치인들 눈에 설득력이 떨어져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으레 '쫌 있어 보이는 논리'를 좋아하니까요.


그러니 그럴싸한 논리대로, 판다 임대 추진이 왜 어이가 없는지를 들여다볼까요.


대표적인 게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입니다.


한국도 버젓이 가입해 있습니다.   


이 협약의 개념은 단순합니다. '멸종이 우려되는 동물은 거래를 금지해 종을 보존하자'세계가 약속했단 거죠. 각국의 관계당국 관계자들이 정례적으로 모여 현황 점검을 비롯한 관련 논의도 꾸준히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도 가입국입니다.


이 협약과 판다의 관계성은 알게 모르게 자주 논란이 돼 왔습니다. 중국도 CITES 가입국인데, 판다를 임대하는 게 맞냐는 겁니다.


판다는 오랜 기간 멸종위기 대표종으로 꼽혀 왔습니다. 그나마 최근엔 개체 수가 조금 회복돼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기준 '위기'(EN) 등급에서 '취약'(VU)으로 개선됐다곤 합니다만, 여전히 보존 노력은 절실합니다.


당연히 판다를 이렇게 만든 쪽은 인간들이죠. 잇단 개발행위로 판다의 주식, 대나무 등이 깔린 삼림을 파괴했고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후위기도 가속화한 상태입니다.


판다가 비록 멸종 '위기'에서 '취약' 종으로 좀 나아졌다곤 해도, 갈수록 보존 역량을 훨씬 고도화해야 하는 게 당면 과제란 의미입니다.


이러다 보니 판다는 CITES에선 '부속서Ⅰ'에 올라 있습니다. CITES는 국제적 멸종위기 동식물을 보호 필요에 따라 부속서Ⅰ, Ⅱ, Ⅲ로 나누고요, 부속서Ⅰ에 오른 종은 상업적 거래가 원칙적으로 안 됩니다.


CITES 가입국인 중국의 판다 임대는 엄밀히 말해, 명분에선 완전히 어긋난 입니다.


따라서 CITES에 가입국이라면 당장 '세계 어디서도 판다 임대는 그 자체로 안 된다'고 계속 말해야 하는 게 상식입니다.


한국도 당연하죠.


그런데 한국이 CITES에 가서 "이제 판다 임대는 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칩시다.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요. 


"너희 수도인 서울, 주요 도시인 대구는 서로 판다 임대한다고 난리던데?"


곧장 이 같은 반론에 부딪히는…참으로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까 아찔합니다. 환경부 등 당국 관계자들이 얼마나 당혹스러워할지 안 봐도 선하군요.


이게 1인당 국민소득(GNI) 3만 불이 넘는, 세계 모범을 자처하는 선진국에서 펼쳐질 수 있는 광경이겠습니까.


서울, 대구 시장님들? 수준 뭡니까. '애국' 하셔야죠.


잘 키울 자신은 있냐?


1996년 5월 30일 경향신문 기사.

여기까지 얘기하고 싶진 않으나, 만∼에 하나 서울이든 대구든 판다를 임대했다고 가정해보죠. 잘 키울 자신 있습니까?


판다는 키우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종입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고요.


에버랜드가 푸바오 가족을 돌보는 데 투입한 돈이 약 70억 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애들 대나무값만 '억' 단위라 하고요, 그 외 시설유지비, 사육사 인건비 등 부대 비용 다 합치면 수십 억 원에 달한답니다.


그나마 푸바오를 키운 에버랜드는 삼성물산의 물적 지원도 있었고, 이를 토대로 한 '굿즈' 등 여러 마케팅으로 수입을 충당했다고는 합니다.


'삼성' '에버랜드' 정도 이랬, 서울시와 대구시에선 이를 어찌할 셈입니까.


듣자하니 서울시의 경우 판다를 임대하면, 시 예산을 투입하고 서울대공원 등에서 양육·관리한다던데요, 믿고 맡길 수 있겠습니까.


죄송한 말이지만, 공교롭게도 서울대공원은 동물 애호가들한테는 끔찍한 악몽이 깃든 곳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지난 1년 동안 '멸종위기 1급' 시베리아 호랑이가 무려 4마리 잇따라 폐사했습니다. 지난해 2월 '아름이'를 시작으로, 5월과 8월에 '파랑이'와 '수호'가 떠났고요, 올해 4월 '태백이'도 갔습니다.


와중에 국내 유일 몽골 야생말 '용보'도 지난 5월 숨졌습니다. 몽골 야생말의 평균 폐사 나이는 19세인데, 용보는 불과 13살에 세상을 떠났답니다.   


여느 동물이든 철저한 관리가 필수지만, 판다의 경우 더더욱 사육의 전문성이 강조됩니다.


현재 푸바오가 머무르는 속칭 '판생낙원', 쓰촨성 선수핑기지에서마저 원인을 알 수 없는 판다 폐사 사례가 잊을만 하면 발생합니다.


올 3월, 두 살도 안 된 판다가 희귀 장 질환으로 사망했고, 바로 한 달 뒤 중국 공영방송 CCTV에서는 "쓰촨성 야안시 바오싱현 강가에서 어린 자이언트 판다 사체로 추정되는 물체가 강 위에 떠다니는 모습이 관광객에 의해 발견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훨씬 나을 거라고요? 푸바오와 얘네 가족은 운이 좋았던 겁니다.


'푸바오 할부지' 강철원 사육사가 괜히 칭송받는  아닙니다. 직접 중국에서 판다를 공부하고 온 경험이야 워낙 유명하니 차치하고요, 그 역시도 한때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습니다.


강 사육사가 처음으로 만난 판다 '밍밍''리리'를 볼까요. 얘네는 1996년 한국 땅을 처음 밟았던 판다들입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밍밍과 리리의 웨딩마치를 치렀습니다. 흑역사였죠. "신랑 밍밍군과 신부 리리양이 결혼해 신혼생활에 들어간다"는 웃지 못할 보도까지. 얘네, 둘 다 암컷이었거든요.


물론 판다는 워낙 암수 구분이 힘들고, 이는 또 워낙 오래 전 일이므로, 이제 그런 실수 없다 할 수도 있습니다. 뭣보다 서울시와 대구시가 각 1마리씩만 데려올 터이므로, 정말 같은 실수야 없을 수 있죠.


허나, 판다도 1년에 2∼3일 정도는 성욕이 생기고 번식기에 돌입합니다. 이런 사정까지 외면하면서 굳이 판다를 데려와 가둬 놔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특히 푸바오의 경우 2014년에 방한한 시진핑 중국 주석이 우리 정부에 선물한 러바오와 아이바오의 딸이란 특수성이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 양국의 '정부' 간 '외교' 차원의 산물이란 뜻입니다.


무게감은 서울시와 대구시가 '시민들 재밌으라고' 임대하는 바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히 양육 측면에서도 푸바오 식구들만큼의 철두철미한 관리가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 시민이 많을 수밖에요.

  


정치인들이 진짜 해야 할 말 


판다가 정치 성향과 무슨 관계겠냐만, 문득 판다 임대를 추진하는 시장들이 보수정당 소속이란 점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과거 미세먼지 발원지 논란 때도 그렇고, 기타 여러 사안에서 중국에 꽤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던 이들이 판다 임대에서만큼은 무엇 하나 문제로 삼을 게 없나 봅니다.


앞서 구구절절 말했지만, 중국의 판다 외교 자체도 적정한지를 놓고 논의 테이블에 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멸종이 우려되는 동물을 자국의 외교적 이익 목적으로 임대한다는 게 인류 규범에 맞는지도 따져봐야 하고요, 중국이 판다를 보존할 능력이 과연 있는지도 할 말은 해야 합니다. 나아가 이른바 '판다 외교', 이게 정말이지 중국에 실익을 가져다주는지도 뜻을 개진해보면 좋겠고 말이죠.


우선 푸바오를 예로 들면, 얘가 중국으로 간 올 4월, 현지 사육사가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는 단 한 장면만으로 국내 푸바오 팬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학대 아니냐'며 갖은 비판이 쏟아졌더랬죠.


중극 측도 이런저런 입장을 밝혔으니, 이게 학대인지 아닌지를 또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쓰촨성 선수핑기지에서도 판다 의문사가 왕왕 발생한 상황 속, 중국은 '동물보호법'도 사실상 마련하지 않고 있습니다. 판다를 '독점'하고 있는 국가가 이런 구조라니, 일반적 문명국가 시각에선 우려를 더하기 충분합니다.


중국의 동물보호법 부재는 유튜브에서도 한동안 떠들썩했내용인데요, 실제 2023년 2월 강원대 법학과에서 나온 '한국과 중국의 동물법 비교연구' 논문도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더군요.


논문에 따르면 중국의 동물 관련 법률은 △중화인민공화국 야생동물보호법 △중화인민공화국 동물방역법 △중화인민공화국 해양환경보호법 △중화인민공화국 삼림법 △중화인민공화국 어업법 △중화인민공화국 목축법 등이 있다고 합니다.


다만 각 법의 구체 내용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중국은 '실험동물 학대' '타인 소유 동물 학대'가 아닌 한 동물 학대 행위를 처벌할 규정이 사실상 없는 현실입니다.


자, 다시.


우리 정치인들이 말이죠, 서로 판다 데려오겠다고 경쟁할 게 아닙니다. 이들이 진짜 해야 할 말은 최소한 '판다 임대 말자' '중국의 판다 양육·관리 실태 정말 고쳐야 한다' 정도는 돼야 온당치 않겠습니까. 


끝으로, 판다 임대가 중국 입장에서 어떤 외교적 이익을 줄지. 


의문입니다. 저만 보더라도, 원래 같았으면 중국의 동물법이 어떻고…CITES가 저떻고…솔직히 관심 없었을 것 같거든요.


허나 '푸바오 열풍'이 일면서 판다를 독점 및 거래하는 중국의 각종 행보를 어느 정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의구심을 품게 됐습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판다를 중국에 되돌려준 국민들 사이에서 이런 인식이 누적되면…이게 중국에 뭐가 좋을까요. 제 눈에는 '반중 정서 확대' 인상만 뚜렷하던데.      


19세기 말 ~ 20세기 초의 상아 거래 장면. 이런 거래가 지속되면 야생동물은 멸종할 수 밖에 없다. 사진=네이버 지식백과

선진국의 면모


우리 정치인들에 어느 정도의 수준을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고로 선진국이라면 의제를 리드해야 하는 법. '패스트 팔로워' 말고 '퍼스트 무버', 이거 우리나라 슬로건이잖아요? 나라가 발전했으니 이제 그 정도는 돼야 한다면서요?


사실 CITES를 둘러싼 문제도 많습니다. 환경부 등 우리 관계당국에서 선제적(퍼스트 무버)으로 이를 공론화한다면  큰 성과로 기록될 것입니다.


2022년 4월 28일 영국 <GEOGRAPHICAL>에 게재된 'The problem with CITES, the convention to protect endangered wildlife'(멸종위기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협약인 CITES의 문제점)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정리돼 있습니다.


·동식물의 위협 정도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과 세계자연기금(WWF) 등이 결정하고, 이들 연합체인 'NGO TRAFFIC'은 매번 CITES 회의 전에 광범위한 분석을 내놓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


·CITES에서 과학적 데이터보다 정치적 감정이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


·재정이 부족하다. 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로비를 통해 자신들 입장을 관철하려 한다.


·CITES 사무국이 중국이나 UAE같은 강대국들의 규정 위반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CITES의 업무 범위는 너무 광범위해졌다. 따라서 밀렵이나 밀수와 같은 야생동물 범죄는 우리 협약이 아닌 국제 범죄 협약으로 해결, 이를 통해 CITES의 업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줘야 한다.


하나같이 주옥 같은 진단입니다.


판다 임대를 꿈꾸시는 정치인 여러분. '제2의 푸바오' 같은 얘기는 그만들 하시고, 위에 저런 말좀 해줄 수 없겠습니까. 이게 선진국 정치인다운 면모그등요. 더구나 대통령까지 바라시는 분들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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