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시청한 MBC 예능 '나혼자산다'에서 모 출연자의 말이 재밌었다. 이름은 기억 안 나는 연예인이었는데, 암튼 그는 매일 로또를 산단다.
물론 당연히 당첨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복권을 사는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다고 한다. 이유인 즉 "액땜했다고 생각한다"는 것. 호재든 악재든 계속되진 않으므로, '로또 꽝'이라는 좋지 않은 일을 겪으면 다음엔 좋을 일들이 펼쳐질 거란 기대가 생긴다고.
기가 막힌 발상이란 생각과 공감이 동시에 들었다. 나도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매사 평온하게 지내다 보니, 좋은 일이랄 것도 나쁜 일이랄 것도 거의 없는데 간혹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속으로 "침착하자" 속삭이곤 한다. 이 다음은 나쁜 일을 마주할 수도 있겠다는 '이상한 우려'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열심히 기도하며 내면에 '나대지 말자' 끊임없이 주문을 건다.
그런 점에서 올해는 상반기를 내내 이 '이상한 우려'와 함께 보냈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뜻깊은 상을 받았고, 연봉계약도 잘 됐고, 인사(부서이동)를 통해 좋은 기회도 얻은 덕분이다. 이 때문에 7월을 마주했을 때는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더랬다. "상반기 내내 좋은 일이가득했는데, 하반기는 어떨까". 내심 올 한 해가 통째로 좋은 일들 투성일 거라 믿었는데…아직은 글쎄다.
새 부서에서 일을 시작하고 아직은 낸 성과가 없다. 오히려 뜻대로 풀리는 일들이 많지 않아 조금 답답한 상태다.
그러다 최근에는 군산/전주로 출장을 떠났다. 군산과 전주 각각에 꼭 다시 찾고픈 식당이 있었다. 그치만 여차저차하다 군산 식당은 가지도 못했고, 전주 식당은 험난한 길을 뚫고 두어 차례 궁상 끝에 다시 찾아갈 수 있었다. 하필 내가 찾아간 그 시점에 장대비가 쏟아진 터라 온몸이 젖은 채로. 조금 짜증이 났다.
오늘은 노트북이 말썽이 났다. 가방이 비를 맞은 탓인지, 더워서 습기가 찬 탓인지 모르겠는데, 화면에 얼룩이 졌다. 수리비용을 알아보니 무려 18만 원. 계획에 없던 거액이 빠져 나간다니…순간 몹시 화가 났다. 가뜩이나 회사 일도 그저 그런, 아니 생각처럼 잘 안 풀리는 상황에서 같이 일해야 할 노트북마저 이렇게 되자 그저 갑갑하기만 했다. 게다가 돈 나갈 일들이 앞으로 더 있는데…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독였다. 애써 한 정신승리는 아니었고, 돌연 "얼마나 또 좋은 일들이 펼쳐지려고 이럴까" 기대됐다. 행복한 일을 마주하기 전, 딱 이 정도의 악재만 지나간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이므로 되레 "잘됐구나"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금은 기분이 아예 좋아졌다. "그래, 조만간 무슨 기쁜 일이 또 생기려나봐…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감사, 감사, 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