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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다은 Mar 29. 2024

28살, 여자, 알코올 중독자

지금은 30살이 된 나의 알코올 중독 탈출기

2022년 9월의 어느 날 아침, 나는 서늘한 에어컨 바람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그것도 문지방에서. 술을 마시면 제자리에서 잔 적이 없었기에 그건 그러려니 했다. 중요한 것은 아침에 약속이 있었다는 거였다. 그래서 처음 든 생각은 '아, 약속 늦었겠다.'였다. 

빨리 씻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상체를 일으킨 순간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방바닥이, 벽지가 모두 피였기 때문이었다.


인지하고 나니 머리에서 비릿한 쇠 냄새가 났다.

때맞춰 약속 상대였던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황스러워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병원에 가야겠어요."라고 말했던 건 확실하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서 잠자리에 있던, 피에 젖어 잔뜩 무거워진 요를 돌돌 말아 거실에 내놓았다.

그리고 샤워를 했다. 바닥을 닦을까 했으나 닦으려고 머리를 숙일 때마다 머리카락에서 나는 피냄새에 토를 할 것만 같았다.


샤워를 하며 비로소 상처를 보았다. 상처는 손목에 있었고 딱 보기에도 깊었다. 사실 그때까지도 병원을 꼭 가야 할까 망설이던 나는 상처를 제대로 보고서야 내가 꽤 심하게 나에게 상처를 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울증을 꽤 오래 앓아온 나는 자해도 익숙했는데(모든 우울증 환자가 자해를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게 심하게 벌어진 상처는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물이 닿았음에도 통증이 하나도 없는 것에 의아하기도 했다. 

머리를 감았더니 벌건 물이 나왔다. 그래도 멀쩡하게 샤워를 하고, 멀쩡하게 옷을 입고 근처에 있던 병원으로 슬리퍼를 신고 터덜터덜 걸어갔다. 전날 밤 너무 더워 에어컨을 최저온도, 초강풍으로 맞추고 술을 마셨었는데 에어컨 바람이 아니었다면 손목의 피가 조금 더 늦게 응고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더 이상 손목에서 피가 나지 않았기에 겉으로만 보면 난 별 이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 척했다.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는데 전화했던 언니가 급하게 왔다. 상처는 가리고 있었다. 내 차례가 와서 접수처에 가, 상처가 나서 왔다고 했더니 상처를 보여달라고 하셨다. 조금 망설였던 것 같다. 긴 팔을 조금 걷고 보여드리니 봉합은 응급실에서만 한다고, 응급실로 가라고 하셨다. 언니와 함께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에 가서 상황설명을 하니 한 침대로 안내해 주셨다. 누워야 할지 앉아야 할지 모르겠는데 좀 어지러워 일단 누웠다. 그러길 몇 분, 어떤 의사가 와서 정말 자살 생각이 있었는지, 술은 마셨는지 등을 건조하게 묻고 갔다. 네, 네, 대답하고 가만히 누워있었더니 이번엔 어떤 간호사가 와서 손목을 거즈로 덮어주고 갔다. 

몇 분 후에 파상풍 주사를 놔주고, 또 몇 분 후엔 간호사가 어떤 액체로 상처를 씻어내기 시작했다. 상처에 굳은 피를 닦아내는데, 그제야 아픔이 몰려왔다. 너무 아팠다. 정말 너무 아팠다. 상처를 다 씻어낸 후에 화장실에 가서 토를 했다. 너무 아프면 토가 나오나 보다 생각했다. 또 몇 분 후에 다른 의사가 와서 상처 주변으로 마취주사를 몇 번 찌르고 상처를 꿰맸다. 환장할 만큼 아팠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더니 간호사가 조금 짜증스럽게 고개 좀 들라고 했다. 귀찮은 존재가 된 거 같아 비참했지만 꿰매는 아픔이 더 컸다.

그날 병원비로만 30만 원이 넘게 나왔다.




이 이야기는 내가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기로 마음을 먹기 시작한 계기이다.

나는 장난스럽게 친구들에게 "나 알중이야."라고 말하며 술을 마셔대곤 했다. 술자리를 좋아했는데 나중에는 술을 좋아하게 됐고 결국에는 술에 중독됐다(물론 술을 좋아한다고 다 술에 중독되는 것은 역시 아니다).


내가 술에 중독되어 가기 시작한 계기, 술만이 해소해 줄 수 있었던 나의 마음, 중독을 인식하기까지의 과정, 치료의 과정, 그리고 지금의 나를 이야기하려 한다. 


나를 위해 쓰기 시작했다. 어떤 수치스러운 기억도 글로 쓰면 흐릿해진다 하여 썼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

"야 어디서 술 냄새난다."라고 했을 때 그게 '젊은' '여성' 일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한다.

바로 그렇기에 고립되고 외로운 사람들. 그래서 괴로운 사람들을 위해서도 쓰고 싶다.


당신 혼자가 아니에요. 당신 같은 내가 지금 살아있어요. 그것도 멀쩡하게요.

그러니 들어봐 주세요. 당신도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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