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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다은 Apr 29. 2024

너 너무 망가졌어

그런가?

설에 본가에 가서 내 상태를 고백했다. 

엄마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의 자살 시도 소식과 알코올 중독 소식을 동시에 들어야 했다. 엄마는 내 손목을 붙잡고 펑펑 울었다. 손목에 난 실선은 약 5개 정도. 엄마는 5번만 자해한 줄 안다. 사실 상처가 생기지 않는 자해도 많다. 아무튼 이건 엄마한테 아직 비밀이다.


다시 서울로 왔다. 일주일의 시간이 있었다. 설날로부터 일주일간 짐을 싸고 김해에 가기로 했다. 그 일주일 내내 제정신인 상태로 있었던 시간이 없었다. '이제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토를 하고 있었다. 

엄마의 닦달이 이어지고 나서야 느적느적 짐을 쌌다. 6개월 후에 돌아올 예정이었기에 옷만 싸고 가구와 책 등은 같이 살던 친구가 쓰게끔 놔두었다. 


김해로 출발하는 날, 나는 그날도 술을 마셨다. 배웅을 하러 나온 언니와 고속터미널에서 만났는데 술 마셨냐고 묻기에 아니라고 했다. 그때는 코로나의 여파로 마스크를 쓰고 있을 때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백화점에서 청소일을 했다. 보통 9시에 폐장을 하고 10시에 퇴근을 하는데, 엄마의 퇴근시간에 맞춰 버스를 예매했었다. 

언니의 배웅을 받고, 술에 취한 건지 멀미약에 취한 건지. 내려오는 4시간 40분 내내 잠을 잤다. 

그리고 엄마를 만났다. 


미리 짐을 보냈어도 조명 등 손에 들고 있는 짐이 많았기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니 엄마가 이미 내 이불과 베개 같은 것들을 사놨었다. 그땐 생각지 못했는데 지금 쓰다 보니 눈물이 난다. 나는 죄스러운 마음으로 내려갔는데 엄마는 날 그렇게나 기다렸나 보다. 


엄마, 아빠, 나 셋이서 통닭을 시켜놓고(우리 가족은 중요한 일을 논의할 때 항상 통닭을 시켜놓고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전통 아닌 전통이 있다.) 이야기했다. 

'왜 내려오겠다는 선택을 한 건지, 앞으로 무엇을 할 계획인지, 언제 다시 올라갈 것인지'

준비해 놓은 대답을 다 내려놓고 그냥 울었다. 죄책감과 창피함. 


엄마는 내가 서울 가서 많이 망가졌다고 했다. 

망가졌나. 

받아들이지 못했다.

부모님이 보기엔 쓸데없는 일. 하지만 내 청춘을 바친 일. 

정말 온 열과 성을 다해 일을 한 나를 두고 '망쳤다'라고 표현할 순 없었다.  

그 말을 수긍한다면, 지금 내가 울고 있는 이 시간에도 이태원 분향소를 지키고, 유인물을 만들고, 무슨 일이라도 하고 있을 사람들이. 본인을 망가뜨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만 같았다.


망가지지 않음 상태여야 했다.

더 의욕이 생겼다. 정말 술을 끊을 의욕이.


그리고 난 다음날.

부모님이 출근한 낮, 아무도 없는 집에서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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