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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다은 May 13. 2024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세상은 우리에게 술을 퍼마시라고 해요

서면역 9번 출구, 현재 내가 다니는 정신과를 가려면 이곳을 거쳐야 한다.

서면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중에는 노숙인 분들도 많다. 

대부분 술을 드시고 계신다. 대부분 가장 싼 막걸리를 드신다. 

컵도 없이 병째로 왈칵왈칵 드시는 모습을 종종 본다. 

나도 그랬다. 


슬픔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을 사납게 살아간다고 한다(최현우, 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중).

세상에는 슬픔이 너무 많았다.


난 대체로 돈을 많이 못 벌고, 그마저도 힘들게 벌어오는 부모님의 슬픔을 많이 보았고, 대학에 와서는 가족을 떠나보낸 유가족의 슬픔, 내가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은 슬픔, 인정받지 못하는 슬픔, 누구에게도 안기지 못하는 슬픔, 믿었던 국가가 배신하는 슬픔, 내 생계가 용역 깡패에 다 뒤집히는 슬픔, 슬픔, 슬픔, 슬픔.


그런 슬픔을 두고 얌전하게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얌전하게 사는 것만 배웠다. 학창 시절에 선생님께 제일 많이 들어본 말이 '조용히 해라'였을 것이다. 얌전한 사람이 슬픔을 마주하면... 가장 쉽게, 빠르게 할 수 있는 나쁜 것을 찾는다. 술이나 담배일 것이다.

나는 그들 틈에서 함께 슬펐고, 술을 마시면 비로소 '분노'할 수 있었다. 사나워질 수 있었다. 


농활(농민학생연대활동)을 갔을 때였다.

함께 일하는 농민들은 술을 달고 살았다. 밥을 먹을 때에도 새참을 먹을 때에도 술이 빠지는 법이 없었고, 온통 풀 뿐인 밭에서도 술을 시원하게 해주는 냉장고 하나는 꼭 있었다. 

왜 그러냐 물어보니 술 없이는 너무 힘들다 했다. 작업량은 너무 많고, 인력은 없다. 허리는 아파오고 빚은 목을 죄어온다. 어쩔 수 있나. 술이 유일한 친구다. 


얼마 전, 요즘 유명한 저속노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술을 마시는 것은 전두엽을 면도칼로 깎는 것과 같다고 하던데. 그들에겐 그냥 살을 면도칼로 베어내는 것보다 더 큰 아픔이 있었던 것이다. 걱정스러워도 술을 마시지 말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이다. 


아주 어릴 적 나는 동네 친구들을 물고 꼬집고 다니는 말괄량이였다.

그런 나는 타고난 건지 어쩐 건지. 여러 슬픔들에 빠져들었고, 여느 슬픔들처럼 술을 찾게 되었다. 


김해에 와서도 나는 사납게 살아갔다.

서울에 있는 사람들을 원망하며. 지난 시절을 원망하며. 나를 죽도록 싫어하며.

그렇게 부모님 몰래 술을 마신 지 몇 개월째. 

하루에 소주 640ml 두 페트를 '몰래' 마시는 건 불가능하다.

난 그렇게 당연하게도 들키고 말았다.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은 내가 알바하던 곳 근처에 있는 가게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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