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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다은 Jun 02. 2024

소주가 발을 적시고

소주 640ml를 두 페트씩 마시면 냄새가 안날 수 없다.

엄마는 여러 번, 어디서 술 냄새 나지 않냐는 말을 했었고 나는 잘 모르겠다고 잡아뗐다.

엄마는 술 냄새가 났지만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점점 대담해진 나는 어느 날, 부모님이 거실에 계신데도 불구하고 술을 사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모님께 젤리를 사온다고 뻥을 치고 나와서는 젤리와 술을 샀다.

두꺼운 외투를 입던 날씨여서 술을 외투 안에 숨겼다. 

현관문에 흐릿하게 비치는 모습을 보며 술이 보이는지 몸을 요리조리 돌려보기도 했다.


그렇게 집안으로 들어왔다.

들어가기 전, 괜히 떳떳하고 싶은 마음에 부모님께 '이 젤리 샀다' 하고 자랑을 했다. 

그렇게 젤리를 들고 환히 웃으며 들어가려던 때 엄마가 물었다.

"안에 그건 뭔데?"

나는 "아니다" 하면서 황급히 방으로 들어왔지만 바로 뒤따라 엄마가 들어왔고, 침대 위에 술을 숨기는 걸 들켰다. 


엄마는 기가 막혀했다.

어떻게 부모님이 다 있는데 술을 이렇게 몰래 사서 들어올 생각을 다했냐고 했다.

그렇게 김해에 내려와서 약 9개월간 몰래 마신 술들을 다 고백했다. 

편의점 알바를 하던 나는 퇴근을 하며 술을 하나씩 사서 가방에 넣어들어왔고 다 마신 페트병은 다시 일하는 편의점에 가서 버리곤 했다.

부모님께 안들키려고 텀블러에 담아온 적도 있었다. 


이야기를 듣던 엄마는 점점 화가 났고, 갑자기 술병을 따더니 자기가 콸콸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당연히 말렸지만 화가 난 엄마의 힘은 엄청났다.

다행히 난리통에 아빠가 방으로 들어왔고 병을 확 낚아채서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아빠는 쉭쉭 가쁜 숨을 내뱉었고, 엄마는 엉엉 울었다. 

나는... 가만히 서있었다.

차가운 술이 두 발을 다 적셨다. 

부모님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았다.

나와, 내 발을 적신 술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죽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사람이 이렇게 도는구나 싶었다.

당장 창문으로 뛰어가서 떨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가 내 손목을 붙잡고 울고 있었다. 


죽지 못한 나는 엄마아빠와 화해했다.

먹고 싶으면 차라릴 말을 하라고 했다. 

화해의 포옹도 했다.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잠자리에 누웠다. 

후회를 했다.

이럴 거면 소주 2병 사올걸...

어느때보다도 술이 마시고 싶은 밤이었다. 


그 날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SNS에 글을 썼다.

부모님의 양육에 문제가 있었다고, 엄마는 정서적 발달을 덜 한 아이같은 행동으로 날 힘들게 했다고.

그런 원망은 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다고.

그런 글을 작성하고 누워있다가 답글 알림에 폰을 확인하니 이런 글이 달려 있었다. 

'원망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복이에요.'


나는 또다시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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