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Live Young

당신의 인생은 안녕하십니까?

by LEEMIN


시곗바늘이 12시를 가리킨다. 약속이 없는 날이면 대체로 샐러드로 점심을 간단히 먹고 회사 주변을 산책한다. 5월의 따듯한 햇살 아래 초록이 짙어진 나무 사이를 걷다 보니 기분이 절로 상쾌해진다. 여의도 빌딩 숲을 걷다 올리브영 매장을 발견하고는 (늘 그렇듯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투명한 유리너머 환하게 빛나는 매장이 보인다. 형광등 불빛 아래 요즘 유행하는 스킨케어, 메이크업 제품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 마흔이 되니 눈가 주름을 예방하려면 아이크림도 필요하고, 피부에도 비타민 씨를 꼬박꼬박 챙겨 발라주어야 한다. 구경만 하려고 무심코 들린 매장에서 양손 가득 무거운 쇼핑백을 들고 나온다. 올리브영은 젊고 아름답게 살고 싶은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올리브영‘은 ‘All live young‘, ‘우리 모두 젊고 아름답게 살자’라는 의미에서 지은 네이밍이라고 하니 뜻도 참 기가 막히다.


실리콘밸리에서 ‘브레인트리’를 창업하여 억만장자가 된 브라이언 존슨은 ‘프로젝트 블루프린트’라는 이름으로 신체 나이를 되돌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매년 200만 달러(약 28억 원) 이상을 들여, 의료진·영양사·트레이너로 구성된 전담팀의 체계적인 관리를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엄격한 식단을 따르면서 백 가지가 넘는 영양 보충제를 섭취하고, 대장 내시경부터 MRI·초음파·혈액 등 정밀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는다고 한다. 노화를 질병으로서 극복하기 위한 연구들이 계속 중이지만, 애석하게도 근시일 내 상용화될 가능성은 없는 것 같다. 브라이언 존슨처럼 몇십억을 들여 관리하면 노화를 어느 정도 늦출 수 있겠지만, 결국 벤자민 버튼이 아니고서야 세월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 그랬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그런데 나이 듦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최대한 피하고만 싶고 뒤로 미루고 싶다. 요즘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저속노화’ 방법이 트렌드다. 나도 유행에 편승하여 쌀밥 대신 현미잡곡밥을 지어먹고, 평소 잘 먹지 않던 브로콜리도 데쳐 먹는다. 하루에 적어도 오천 보 이상 걷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헬스장에 가서 근력 운동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허리, 목, 무릎 등 아픈 데는 계속 늘어가고, 모니터를 보고 있는 눈은 건조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인공눈물을 넣어야 한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슬플 때도 있지만, 나이를 먹어서 좋은 점도 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받던 연약한 마음에도 근육이 생겼다. 나를 타박하는 말을 들어도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나?’ 하고 내 탓을 하지 않고 담담하게 넘길 줄 알게 되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느라 놓치고 지나쳤던 주변을 이제야 비로소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때가 되면 피어나는 꽃과 나무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계절이 바뀌는 냄새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채찍질을 하는 감독자의 시선이 아니라, 자식을 돌보는 엄마의 마음으로 나를 바라본다.


가끔 회귀물의 주인공이 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만약 지금의 지식과 경험을 그대로 가진 채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고시생 시절의 불안과 압박감, 세상의 모든 것이 막막하게만 느껴지던 그때로 돌아가서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타임머신이 발명되어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그 시절의 미숙함과 불안감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다. 마흔의 나는 이전의 나보다 훨씬 견고해졌고, 타인의 욕망이 아닌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지금 이대로의 내가 좋다. 늘어가는 주름과 조금씩 약해지는 몸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나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저속 노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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