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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클럽 통역을 하며 내가 느낀 것들

제주 SK와 카이나가 만들어준 특별했던 시간들!

by 김준용

어느덧 2025 시즌 K리그 개막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매 시즌 길게 느껴졌던 프리시즌 기간이 올해는 유독 짧게 느껴진다 개막이 일러서 그런가


지난 시즌 하반기에 제주 SK(구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일본어 통역으로 지냈던 기간 동안

느꼈던 감정들을 되돌아보았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통역이라는 포지션으로 아르바이트나 봉사활동을 해본 적도 없었다

일본에서 워킹홀리데이, 교환학생을 통해 2년 정도 생활을 했었고,

일본에서 취업을 하고자 알아보고 있던 상황이기도 했어서 일본어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프로팀에서 통역을 한다는 것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이 불안감과 기대감을 모두 공존시켰다

내가 지도자님들의 요구사항을 제대로 통역을 못한다면, 팀과 선수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


스스로 계속 자신감을 가지고 집중력을 놓지 않으려고 계속 노력했던 것 같다

동시통역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내가 통역을 하고 있는 내 목소리에 감독님의 다음 말씀이 가려질 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입은 일본어로 이야기하며, 눈과 집중은 감독님께 향해놓고 놓치지 않으려 했다


미팅 시간이 대부분 엄청난 장시간은 아니지만, 한번 미팅을 끝마칠 때마다 엄청난 체력소모를 했던 것 같다

처음엔 더 피로도가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요령도 생기다 보니 부담은 점점 덜해져 갔다


내 통역을 듣고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경청해 주는 카이나 덕분에 그래도 내가 잘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불안감이 자신감으로 바뀌어 갔던 것 같다


선수와 한 몸이 되어야 한다

개인 시간에는 같이 타팀 경기 시청도 했었다

통역은 기본적으로 팀원들과의 소통을 돕는 것에 역할이 그치지 않는다

생활에 필요한 부분들에서도 도움을 주어야 했고, 나 또한 일본에서 혼자 생활을 해봤기에 더더욱 해외에서의 어려움을 알다 보니 도움을 주고 싶었다


훈련과 미팅, 경기 외적으로는

미용실을 예약해 주고, 은행에 볼일이 있다면 은행에도 같이 가고, 차 와이퍼가 고장 났을 때는 수리센터에도 같이 갔었고 , 올리브영에서 한국 선크림이나 마스크팩, 지인들에게 부탁받은 한국제품들을 같이 사러 가자고 했을 때도 동행을 했다 팀 휴식날에는 같이 식사도 하러 가고 카페에서 시간을 같이 보내기도 했다


거의 선수의 개인 매니저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럴 때마다 카이나는 매번 '도와줘서 고마워 준용'이라고 이야기를 해주면서 커피라도 한 잔씩 사줬다

나도 그렇고 카이나도 그렇고 아는 사람 하나 없던 제주도에서 서로 의지를 많이 하며 지냈던 것 같다

오늘 뭐 먹고 싶어? 물어보면 대답으로 항상 삼겹살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항상 카이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진짜 준용(작성자) 덕분에 불편한 거 없이 지내고 있고 한국어도 조금씩 배울 수 있어서 고맙다'라는 말을 해줬다


내가 뿌듯했을 때

통역으로서 보람과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여러 상황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내가 가장 큰 뿌듯함을 느꼈을 때는 카이나가 리그 데뷔골을 득점했던 광주 원정경기다


광주는 제주와의 경기를 며칠 앞두고 ACLE 첫 경기에서 요코하마 F 마리노스를 상대로 7대 3 대승을 기록하면서 아시아 축구계를 모두 놀라게 했다 7골을 넣고도 계속해서 득점을 이어나가려고 하는 광주를 다음 리그 상대로 만나기에 부담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물론 선수단 체력적으로는 광주가 불리하긴 했겠지만


후반 15분쯤 되었을 때인가, 0-0으로 팽팽하던 상황에서 카이나가 득점을 해줬다 K리그 데뷔골이자 이날 경기 2-0으로 승리를 했는데 선제골로 아주 귀중한 타이밍에 득점을 해줬다

카이나가 바라던 첫 골을 터뜨리자 팀원들 모두가 카이나에게 달려들어 카이나의 첫 골을 축하해 줬고, 비가 오며 추웠던 그 날씨도 다 잊을 만큼 엄청나게 기뻐했던 것 같다


그날 경기를 마치고 호텔로 복귀해서 아드레날린에 잠이 안 온다는 카이나와 함께 호텔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시간을 가졌다 항상 밝은 표정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던 카이나지만 특히 더 기뻐 보이는 모습에 너무 뿌듯했고 거기에 팀도 승리를 했으니 경기 마친 이후였는데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용병임에도 팀원들 모두와 잘 어울렸던 카이나지만, 타국에서 스스로 얼마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을지 생각하면 눈물이 날 뻔도 했다(정말로ㅎ)

결승골과 쐐기골을 넣은 카이나와 진수가 같이 31라운드 주간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K리그 1 주간 베스트 11에 선정되었고, 곧바로 카이나에게 알려줬다!

"이번 주 리그 베스트 11 선정됐어! 축하해요"


축구적 표현의 다른 부분을 극복해야 한다

스포츠 통역사가 일반적인 통역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해당 종목에서 사용되는 전술에 대한 이해와 용어에 대한 이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통역을 했던 상황들은 다음과 같다

- 감독님을 포함한 코치님들과 스태프분들 <-> 본인 <-> 카이나

- 팀 내 한국 선수들 <-> 본인 <-> 카이나

- 팀 내 브라질 용병 선수들 <-> 포르투갈어 통역사님 <-> 본인 <-> 카이나

- 구단 사무국 <-> 본인 <-> 카이나

- 인터뷰를 하러 오신 기자분 <-> 본인 <-> 카이나

- 팬분들 <-> 본인 <-> 카이나

많은 구성원들과의 소통을 도와야 했다

축구적인 이해가 부족하면 이를 전달하는 데에는 정말 어려움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에서 단순히 말만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구나라는 걸 하면 할수록 느낀 것 같다


나는 J리그 경기 일본어 중계를 자주 접했었기 때문에 크게 어려움은 없었지만 가끔씩 표현의 차이에 대해서 카이나와 의논하기도 했었다


팀 미팅을 마친 후 카이나가 나에게 와서

'준용, 경합(競合, 쿄오고오)이랑 침투(浸透, 신토오)는 잘 안 쓰는 표현이야'라고 알려줬다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이를 곧바로 바로잡아주는 것에 너무 고마웠다

'경합은 競り合い(せりあい、세리아이)라고 하고 침투는 裏を抜く(うらをぬく、우라오누쿠)를 일반적으로 써'라고 알려줬다


이날을 계기로 표현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겠구나라는 결심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지속적으로 일본 축구 방송 프로그램, 전술 분석 블로그, 기사, 유튜브 영상들을 확인하면서 다른 표현이 있나 체크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게 되었고, 카이나에게도 직접 '이 상황에서는 이런 표현 써?'라고 물으며 서로 합을 맞춰나갔다 카이나도 한국어를 나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도움을 주고받았다


이는 일본어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단순히 회화를 잘하는 것의 문제가 아닌, 축구적 표현의 언어적 차이를 극복해야 했다


또 다음 만남을 기대하며!

냉정한 프로세계란 이런 것인가라는 점을 ㅇ몸소 체감했다

팀과 작별을 하게 된 카이나의 마지막 배웅과 출국 준비를 도와주면서

서로 아쉬운 마음에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6개월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기간 동안 거의 매일 함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몇 년간 알고 지냈던 오랜 친구처럼 지냈기 때문에 서로 정이 많이 들었다

서로에게뿐만 아니라 팀원들과도 정이 많이 들었던 터라 그 아쉬움이 가장 컸었다


지금 당장 또 같은 공간에서 생활을 하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일본이든, 한국이든 또 꼭 만날 수 있을걸 직감적으로 알았기에 다시 꼭 만나자! 이런 말도 안 했던 것 같다


통역은 사람과 사람 간에 이루어지는 직무고 직업이었기에 서로 간의 신뢰와 관계성이 정말 중요한 역할인 것 같다 일단 그 통역을 해주어야 하는 당사자와의 좋은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는데 다행히 카이나와는 성격도 잘 맞고 그 어떤 무리한 요구도 없이 친구처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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