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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융 Feb 25. 2019

정동길을 걷다

길 위에서 역사를 만나다

시작은 단순했다. 매일 같이 마시는 커피지만 그 역사나 문화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문화역 서울 284>에서 전시 중인 ‘커피사회’가 보고 싶었고, 그래서 갔다. 이토록 많은 역사와 이야기가 길 위에 있을 줄은 몰랐다.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


전시장 입구로 들어가니 입장권 대신 종이컵을 나눠줬다. 정해진 장소에서 이 컵에 커피를 받아 마실 수 있다 했다. 시간의 흔적을 품고 있는 공간으로 들어서니 20세기 초반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 한 기분이었다. 서울역사의 1·2등 대합실 티룸(Tea room)은 커피 문화가 시작된 공적 장소라고 하니 커피 관련 전시에 이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사회

기간 : 2019년 3월 3일까지

장소 : 문화역 서울 284

관람료 : 무료     


서울역사

사적 제284호. 1922년 6월에 착공해 1925년 9월에 준공됐다. 일제 강점기 시대 물자 수탈의 중심지로 활용된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2003년 말 서울역이 새로 오픈하면서 현재는 문화 전시 공간(문화역 서울 284)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도입된 것은 19세기 후반으로 약 100여 년의 시간 동안 커피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됐다. 1896년 러시아 공사로 피신한 고종은 그곳에서 커피를 소개받고 이후 커피(가배) 애호가가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19세기 후반의 커피는 상류층만 향유하는 고급문화였지만, 해방 이후 국내에 주둔한 미군들에 의해 일반 국민들에게 보급되었다고.      


전시회 <커피사회>

당시의 다방, 황실 전문 사진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 등 다채롭게 구성되어 천천히 돌아보기에 좋았다. 특히 1900년대의 커피 관련 신문 기사를 모아놓은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실제 신문기사를 스캔받아 전시자료로 재구성한 것이라 했다. 곳곳에 사진 찍기 좋은 곳도 많고, 근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커피 문화를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물론 서울역사와 내부 인테리어도 구경하는 데 한몫했다.    

 


정동길, 역사의 흔적을 좇다


카페 다락에서 바라본 풍경


다음으로 찾은 곳은 카페 다락. 서울특별시청 서소문별관 13층에 위치한 정동 전망대다. 이곳에 올라가면 덕수궁과 정동길의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했다. 생각보다는 사람이 많아서 구경만 하고 바로 내려왔지만, 사람 없는 평일 낮이라면 사색에 잠기기 좋은 곳이었다.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카페를 찾아 쫄래쫄래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루쏘랩. 빨간 벽돌이 인상적이었고 커피와 브런치 메뉴 모두 훌륭하다는 평을 봤기 때문. 그런데 말입니다. 정동전망대에서 5분쯤 걷기 시작했을까, 눈앞에 유적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고 홀린 듯 방향을 틀어 그곳으로 들어가게 됐다. 알고 보니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 바로 ‘중명전’이었다.     


덕수궁 중명전

중명전

1899년에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진 곳. 원래는 1층 건물이었으나 1901년 화재 이후 지금과 같은 2층 건물로 재건되었다 한다. 고종이 1904년 경운궁 화재 이후 1907년 강제 퇴위될 때까지 머물렀던 장소이자,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 그리고 1907년 4월 20일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 장소이기도 하다.

입장시간 : 09:30~17:00, 매주 월요일 휴무

관람료 : 무료     


슬픔이 어린 공간이라 그런지 무거운 마음이었다. 입구 앞에서 실내화로 갈아 신고 내부로 입장했다. 입장하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첫 번째 전시실에는 을사늑약이 체결된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놓았다. 이토 히로부미와 을사오적을 중심으로 대화를 구성해 그 날의 모습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무장한 일본군의 위협 속에서도 끝끝내 반대를 외친 참정대신 한규설과 탁지부대신 민영기 두 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어지는 전시장에서는 대한제국이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를 다룬다. 특히 헤이그 특사에 대해 자세히 다뤄서 세 분 특사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었다.     

  

중명전 내부와 외부

이렇게 역사적인 공간이 제대로 홍보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까웠고, 전시장 내부에 한국어 설명만 있는 점도 무척 아쉬웠다. 물론 중명전 입구에 외국어 설명서가 있기는 했지만, 각 전시실 내부마다 한국어 설명과 함께 영어가 적혀 있었다면 이곳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다시 카페로 향하려는데, 바로 눈앞에 또 무언가가 보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을 다룬 이화박물관이었다. 입장 마감은 오후 5시였지만 마침 4시 40분이었기에 서둘러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최초의 여학교, 이화학당

이화박물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의 건물로 사용된 곳. 1915년에 준공되었으며 2006년 5월 31일 이화학당 창립 120주년을 맞아 개관했다.

이화학당은 미국 선교사 메리 스크랜턴에 의해 설립된 여학교로, 1886년 개교 당시에는 한식 기와집을 교실로 사용했다.

입장시간 : 10:00~17:00, 매주 월요일·일요일 휴무

관람료 : 무료     


얼마 전 종영한 미스터 선샤인의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예스러운 모습을 흥미롭게 보다가 유관순 열사와 마주하게 됐다. 이화학당에서 학습하고,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가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대단하신 분. 고국에 바칠 목숨이 하나밖에 없음이 유일한 슬픔이라 말하신 분. 어린 시절 처음 봤을 때도 그렇고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렇고. 과연 저 시절의 나라면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지, 숭고해지는 마음이었다.


기획 전시관에서는 <“그때 우리는...” 회상 60/70 사진전>이 개최 중이었다. 당시의 교복, 사진, 영상, 교실 모습 등 부모님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은 전시였다. 오는 5월 31일까지 진행된다고 하니 그전에 부모님께도 꼭 소개드리고 싶은 코스였다.   

  


오늘을 생각하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배고픔이 몰려오길래 가려던 카페 대신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서대문으로 나가는 길에는 박물관이 아주 많았다. 국토 발전 박물관, 쌀 박물관, 농업 박물관, 돈의문 박물관 마을 등등. 아침부터 저녁까지 훑어도 다 돌아보지 못할 것 같은 규모였다.

     

가벼운 나들이를 생각했었는데 하루 끝에서 돌아보니 무척이나 유익했다. 뜻밖의 역사 기행이랄까. 그러니 혹 기회가 닿는다면, 정동길에서 꼭 그 날의 순간들과 만났으면 좋겠다.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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