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지 않지만 믿어야하는 이야기
무엇이 나를 다이빙하게 만들었을까? 과학전문기자인 룰루밀러는 분류학자이자 생물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1851~1931)에 대해 탐구하게 된다. 처음에는 종의 분류 얘기가 있는 걸 보니 과학책인가 하는 생각으로 책장을 열었다가, 누군가의 생애를 파고들어 그 사람의 업적을 되새김질하며 추적하는 위인전기의 냄새를 맡다가,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그의 어두운 면까지 밝혀내는 후반부를 보고 있자면 처음부터 이걸 드러내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독자들을 끌어온 스릴러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거기에 다윈의 진화론과 동물의 상하관계를 나누고 이를 지배하려는 인간이 가진 약간의 오만함, 그리고 그 오만함을 극단적으로 뛰어넘은 우생학까지. 날카롭고 직설적이지도 않으면서 서서히 가랑비에 옷 젖어들 듯 수긍하게 되는 비판적인 철학적 시각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다. 에세이라고 하는데 소설인지, 픽션인지 헷갈리고 담백하면서도 읊조리는 듯 독백체도 독특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데이비드라는 인물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평생을 걸쳐 어류라는 종을 분류해 가는 집념은 한 과학자로서 존경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야만 업적을 쌓고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는 것처럼. 지진으로 그간 연구한 결과가 한순간에 뒤집어지면서 혼돈에 빠지지만 그게 굴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에서는 찬사를 보내고 이런 훌륭한 과학자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런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는 믿음을 더욱 굳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존경심에 가득 찬 찬가는 들리지 않고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는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와 같은 밑바닥의 어두움을 조금씩 끌어오는데서 화창한 날씨가 계속 이어지지는 않겠다는 분위기를 조금은 감지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결말처럼 확 뒤집어질 것이라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놀랍게도 이 책이 출간된 이후로 그의 이름은 지워져가고 있다. 철학이 함께하지 않은 잘못된 신념을 가진 자가 힘과 집념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어류에 대한 집착은 생물의 우열을 가리기 시작했고 순수한 생명 그 자체의 본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광기에 가까운 우생학 이야기로 넘어간다. 강제 낙태를 시행하는 법에 찬성하는 듯 그의 악행은 그가 이룬 업적 전체에 서서히 그늘을 드리우게 만든다. 연구의 저의가 무엇이냐는 의심까지 받으면서 결국 우생학과 함께 그의 이름을 지우는 방법은 그가 쌓아 올린 업적을 지울 수밖에 없고 그게 바로 연구 결정체인 어류, 즉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그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치밀한 방법의 하나가 완성된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전반부에서 그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경악만이 남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의 매력이 여기 하나 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