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표현불능증? 로봇 같은 아몬드, 윤재도 내 안에 있고,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곤이도 내 안에 있다.그건 분명하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는데 움찔 놀란다. 어느 하나는 적당히 어딘가에 묻어놓고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그렇다고 뭔가 손해 보고 억울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 신경 쓸 건 없다. 아.. 물론 사랑도 있다.
소설에 많은 기시감을 느꼈다. 그건 내가 초등학교시절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6학년에 전학 간 학교에 꽤나 폭력적인 반 녀석이 있었다. (친구가 아니었으니 친구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음) 다들 쟤는 '깡패'이니 가까이 가지 말라고. 친구들 학용품을 아무렇지도 않게 눈앞에서 가져다 쓴다거나 점심시간 반찬을 털어가는 일은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 녀석이 이 학교에서 그간 어떤 생활을 했고 얼마나 사고를 치며 친구들을 괴롭혔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누군가가 걔는 '깡패'라고 낙인 짓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걸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게다가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나에게 어떤 피해도 준 적이 없었던 녀석인데 (반찬 뺏어간 거 빼고) 내가 딱히 벽을 둘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하여 다른 친구들에게도 그러지 말라고 한 소리칠 용기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냥 눈앞에서 내 학용품을 가져가는 친구들의 마음이 어떤지 너도 한 번 느껴보라고 생각하며 학용품을 집어간 일이 있었다. 불쑥 집어가며 살짝 꼬리를 내리고는 '좀 빌려줘'라고 가져갔던 것 같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말을 걸어 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내가 먼저 마음을 열면 분명 통하리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에게 그렇게 서슴없이 다가가서 그런 지극히 평범한 말조차 건넸던 다른 친구들이 없었기에 내 행동이 낯설었던 것일까? 딱히 그 녀석이 놀라고 당황했었다는 기억도 없지만 난 그 녀석의 학용품을 빌려 쓰는 유일한 반 또래가 되었다. 정말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가끔 다른 친구들을 귀찮게 하고 괴롭힌다는 얘기가 종종 들렸지만 졸업 때까지 그 녀석이 나에게 어떤 불편한 행동도 한 기억은 없다. 심지어 교실에서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때 서로 마주치며 씩 웃기도 했다. (나 스스로 칭찬해!)
132p 할멈의 표현대로라면,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 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까진 죽어 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 낸다. 조곤조곤. 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
한동안 아이 책장에 꽂혀있었고 지나칠 때마다 저 아이는 왜 저렇게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하는 희미한, 그래서 바로 증발해 버리는 호기심만 갖고 있었다. 그렇게 수개월을 스쳐 지나가다 내가 딱 그 표정일 때 책을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