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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Jun 15. 2024

맡겨진 소녀

음미하다 잠들어 버렸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묻고 있지만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만큼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자랐다. 입을 다물기  좋은 기회다. P.96


    클레어 키건의 중편 소설, 맡겨진 소녀 (Foster). 1980년대 초, 아일랜드 시골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집의 소녀가 출산을 앞둔 엄마와 잠시 떨어져 먼 친척의 집, 킨셀라 부부의 집에 잠시 맡겨진다. 맡겨진 소녀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자신의 짐가방도 내려놓는 걸 잊어버리고 서둘러 돌아가는 무심한 아빠와 다정하게 나는 맡아주는 가정의 대비가 소설 여기저기에 묻어 있다. 어른들의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의미, 때로는 불편한 감정들을 감지해 내고 어떻게 처신하는지를 배워나가는 성장소설의 한 토막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녀는 순수하지 않았다. 순수함이 무지함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버렸다는 의미로 순수함을 잃어버린 아이의 이야기다. 차라리 '아빠가 해준 게 뭐 있어!'라고 소리치면 독자들의 마음은 좀 더 위안을 가질지도 모르겠지만 속 깊은 소녀는 그런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다. 말이 없다. 할 말만 한다. 할 말을 고르고 골랐을 것이다. 그래서 소설도 짧다. 너무 성숙해 버린 아이의 생각을 읽다 보면 누가 이 소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 어른들은 아이에게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저주하고 싶어진다. 이렇게나 마음이 깊은 아이에서 어떤 부침의 가정사가 있었기에 조용히 숨죽이며 세상에 맞춰 살아가는 아이가 되었는지 애환섞인 눈길로 바뀌어간다. 애당초 순수함을 무기로 아이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을 보이는 그대로 까발렸다면 반성의 소설이 되었을텐데 안타깝게도 그 짐을 소녀가 짊어진 채로 애잔함만 잔뜩 남긴 소설이 되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면서도 바로  애잔한 감정들만큼은 여울물처럼 굽이치며 바로 마음속에서 빠져나가지를 못한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첫 번째 '아빠'는 소리 높여 아빠! 제발 그러지 마라고 경고하듯 소리쳐 보고, 두 번째 '아빠'는 품에 안긴 채 귀속말로 진짜 아빠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어라며 속삭이는 아빠...로 다시 읽어 본다.


    착한 부모, 그렇지 않은 부모가 있다. 착하지 못한 부모인지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인지 세상은 아직 그 부모들의 얘기를 들어볼 기회를 주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에 대한 소녀의 메마른 감정에 대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야'라는 용서를 대신 구해보려는 생각이 떠오르는 건 아마도 네가 세상을 하나씩 이해해 나간다고 하는 건 기특하지만 아직 알 수 없는 게 많다는 것과 부모도 너희들에게 말할 다 하며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까지도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 딸아이의 아빠가 소녀에게 하고 싶은 얘기이다.


     모든 목매임이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듯 머뭇거리는 건 소설의 간결함이 주는 또다른 분위기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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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데 동의할 수 없다. 간결하면서 이 보다 더 깊은 좋은 글들을 브런치에서 많이 봐 왔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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