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니치 딥
이십 대 중반,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하나같이 다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캐나다에서 여전히 학교 과제 때문에 밤샘을 밥 먹듯 하고 있었다. 습하고 겨울이 되면 쥐도 가끔 나오는 반지하 방에 살던 가난한 유학생 시절이었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캐나다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에서 좀 더 긍정적인 마인드로 버틸 힘을 얻으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학생이었기 때문에 항상 돈이 없었다. 학교 과제 때문에 아르바이트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있는 돈에서 최대한 아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생활비와 용돈을 아끼기 위해선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게 필수인데 집에서 먹는 삼시 세끼뿐만 아니라 간식, 도시락, 심지어 술안주까지 다 만들어 먹었다. 바에 가서 맛있는 안주 시켜놓고 맥주를 마시며 친구들과 편하게 놀고 싶지만 한 푼이라도 더 아끼고 싶은 마음에 '집에서도 맛있는 거 먹으며 즐길 수 없을까' 늘 고민을 했었다. 여러 술안주를 시도했는데 그중 만들기도 쉽고 저예산으로 친구들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발견했다. 스피니치 딥 :)
내 생에 시금치를 이렇게 많이 섭취해본 적이 있을까. 이건 너무너무 맛있어서 일주일에 세 번도 넘게 만들어 먹은 적도 있다. 어릴 때 반찬투정 심한 편식 쟁이었던지라 시금치라 하면 시금치나물밖에 몰랐고 나물이란 나물은 다 싫어했었다. 그런데 캐나다에 오고 나서 시금치가 나물로만 해 먹는 음식이 아니란 걸 발견하고 신세계를 보게 되었을 때 그 놀라움이란! 사람들은 시금치를 파스타에도 넣고, 수프에도 넣고, 피자에도 올리고, 잘게 다져서 딥으로도 만들어 먹고, 어린 시금치 잎들은 샐러드로도 먹는다. 이렇게 맛있는 시금치를 왜 난 한국에서 나물로밖에 못 먹어 보았는가. 그동안 너무나 많은 걸 놓치고 살아온 것 같은 느낌이다.
스피니치 딥을 만드는 방법
1. 끓는 물에 시금치를 데친다.
2. 데친 시금치의 물기를 꼭 짜서 도마에 놓고 칼로 잘게 다진다.
3. 다진 시금치를 볼에 놓고 마요네즈, 사워크림, 크림치즈, 다진 마늘, 후추를 넣고 섞어 준다.
4. 치즈를 표면에 뿌려서 그대로 오븐에 넣고 구워도 되고 귀찮으면 전자레인지에 따뜻하게 데워줘도 된다.
(스피나치 딥은 따뜻해야 맛있다.)
5. 접시나 디핑소스 그릇에 담아 나쵸칩으로 찍어 먹어도 되고 빵에 발라 먹어도 된다.
더 고소하고 맛있게 먹고 싶으면 파마산 치즈를 추가해도 된다. 그리고 빵보다는 살짝 소금기가 밴 나쵸칩과 같이 먹는 걸 선호한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브로콜리를 삶아 으깬 걸 섞어 넣어도 엄청 맛있었다. 이렇게 완성된 스피니치 딥과 마트에서 산 나초칩이랑 맥주를 같이 먹으며 영화를 보면, 350불짜리 월세 반지하 방에서 유학하던 시절이지만 정말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순간이었다. 밤샘 과제로 피곤했던 하루를 잊을 수 있었고 또 열심히 살아갈 내일을 기다리게 만들어 주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 살아가는 데에 정말 큰 위안 된다. 다이어트는 잠시 잊고 말 나온 김에 시금치나 한 단 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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