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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Sep 13. 2018

어린 시절 음식 트라우마 극복기

같이 먹어요

식빵 피자/피자토스트



엄마는 요리에 취미가 없다. 밥상 위에 음식들은 주로 아빠가 좋아하는 걸로 차려진다. 축축하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매운 김치, 마늘향이 강한 나물들, 차가운 오이소박이. 다섯 살인 동생과 일곱 살인 나는 그런 음식보다 기름에 볶은 비엔나소시지, 전분이 가득하고 영양가 없는 싸구려 분홍색 어묵 햄, 인공 조미료로 맛을 낸 꼬마 돈가스가 훨씬 맛있다.


식빵 피자

어느 날, 엄마가 처음 보는 음식을 나와 내 동생을 위해 만들었다. 양파를 잘게 다지고, 버섯을 얇게 썰고, 마트에서 산 하얀 '피자 치즈'를 올린다.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전자레인지에서 갓 꺼낸 식빵피자는 뜨겁고 치즈와 채소랑 같이 데워져서 빵은 습하고 눅눅하다. 7살이었던 나에겐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흐느적하게 녹은 싸구려 모짜렐라 치즈가 빵 위에서 늘어나는 게 어찌나 재밌고 신기했던지 동생과 같이 먹는 내내 키득키득 웃어댔다. 식빵 피자는 처음으로 내가 양파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이후 한 번도 식빵 피자를 다시 만들지 않았다. 아마도 '밥'이 아닌 다른 걸 애들에게 먹인다고 잔소리를 했을 아빠 때문일 거다.


음식 트라우마

음식과 어린 시절을 같이 떠올려보면 그조차도 집안의 분위기를 반영했다. 편식이 심해 채소란 채소는 전혀 먹지 않았던  나는 가부장적이었던 아빠에게 밥상 앞에서 종종 구박받곤 했었다. 가족들 식사가 다 끝난 뒤에도 아빠는 김치를 먹지 않으면 식탁에서 내려올 생각도 하지 말라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내게 소리를 지르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고, 내 밥그릇에 김치를 젓가락으로 집어 올려 왜 김치를 안 먹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김치를 안 먹는 것이 큰 일인 듯 가족들뿐만 아니라 주변 친척들, 이웃 아주머니들까지 혀를 차며 걱정을 해댔다. 성인이 되면 알아서 먹을 거니 놔두라는 할머니의 그나마 따뜻한 말 한마디에도 불구하고 서른이 넘은 지금도 나는 김치를 먹지 않는다. 김치는 나에게 트라우마다.


그 외에도 아빠는 소시지 야채 볶음에서 양파는 다 골라내고 소시지만 먹고 있는 나에게 소시지만 먹지 말라며 꿀밤을 때리기도 했고 혼나는 게 무서워 억지로 남은 채소들을 꾸역꾸역 먹다 구역질을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더 채소가 싫어졌고, 더더욱 채소가 들어 있지 않은 음식을 찾게 되었다. 국을 먹다가 조그만 양파 조각이 입 안에 들어와도 헛구역질이 났고 심지어 컵라면에 들어있는 건조된 버섯, 파들도 역겨워 뜨거운 물을 붓기 전에 쓰레기통에 다 버려버리고 오로지 면과 국물만 먹기도 했다. 그냥 아무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음식을 먹고 싶었다. 아직도 큼직하게 썰어진 양파는 잘 먹지 못한다. 그래서 서른이 넘은 다 큰 어른이 된 지금도 '초딩 입맛'의 소유자고 어린아이들이 야채에 대해 거부감을 덜 느끼며 먹을 수 있는 요리법에 관심이 많다.


식빵 피자 만드는 법

1. 식빵에 피자 소스를 발라준다.

2. 버섯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잘라 준다.

3. 갈릭 파우더를 그 위에 솔솔 뿌려준다.

4. 치즈를 그라인더에 잘게 갈아서 올려준다.

5. 오븐에 380도에서 15분 동안 구워 준다.

6. 예쁜 접시에 담아 맛있게 먹는다.


토핑은 얼마든지 취향에 맞게 바꿀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자주 해 먹는 토핑 콤보를 몇 가지 소개하자면,

(페스코 베지테리안이라 고기를 넣지 않는다. 더 맛있는 토핑 콤보를 알고 있다면 댓글로 알려 주시라.)

양파 + 새우 + 버섯 + 마늘가루 + 치즈

브로콜리 + 토마토 + 마늘가루 + 치즈

시금치 + 애호박+ 마늘가루 + 치즈

캔 옥수수 + 버섯 + 토마토 + 마늘가루 + 치즈

파인애플 + 양파 + 버섯 + 치즈


어린 시절 음식 트라우마는 부모님이 전혀 하지 않을 음식을 혼자 해보며 극복했다. 중국 사천요리에 들어가는 매콤 달콤한 가지, 스피나치 딥에 들어가는 고소한 시금치, 감칠맛이 도는 어니언 수프에 듬뿍 들어간 양파. 그 시작은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 줬었던 식빵 피자의 기억이었다. 건강한 식단과 음식에 든 영양소에 자발적으로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채소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사라졌다. 성인이 되면 알아서 먹을 거라던 할머니의 말씀은 어느 정도 맞는 듯하다. 어릴 땐 초록색 식재료는 쳐다도 안 봤던 내가 이렇게 알아서 찾아 먹으니까 말이다.












제가 그린 그림을 올려놓은 제 인스타그램에도 한번 놀러 오세요 :)

https://instagram.com/foodiecherryp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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