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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Dec 28. 2018

할머니

참치 김치찌개

 

참치 김치찌개


할머니 집에 가면 늘 오래된 식용유 냄새가 났다. 갈 때마다 늘 부엌에선 제사음식이나 명절 음식이 만들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냄새가 떠올리게 해주는 할머니 집 내부의 모습은 사진처럼 선명해서 보지 않고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듯하다. 아들이 여섯이나 되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부엌에는 주로 할머니와 우리 엄마, 큰엄마만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몇 가지 고기반찬들과 온갖 나물반찬들이 그릇에 가지런히 담겨 제사상과 밥상에 올라왔다. 나물을 정말 싫어했던 어린 나에겐 맛없는 풀때기들이 잔뜩 올라와있는 할머니 집 밥상이 입에 맞지 않았다. 오래된 양옥 주택이었던 할머니 집은 햇볕도 잘 들지 않고 공기의 움직임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방마다 항상 물건들이 쌓여었있다. 낡아서 더 이상 쓰진 않지만 버리긴 아까워 내팽겨 쳐둔 도구들, 오래전에 선물 받아 유통기한이 이미 다 지나버린 음료 세트들, 검은 봉지에 쌓여 냉장고에 꽉꽉 들어찬 정체모를 식재료들. 어렸을 땐 온 집안에 물건이 많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부자인 줄 알았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음식은 김치찌개이다. 양은냄비에 검붉은 색을 띄던 할머니의 김치찌개는 꾸덕꾸덕했다. 국물은 자작하게 있지 않고 짜고 매웠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할머니는 김치찌개를 끓일 때 물을 따로 넣지 않는다고 하셨다. 끓이다 보면 김치에서 물이 나오고 두부에서도 물이 나온다고. 그렇게 꾸덕하게 끓이셨다. 자취를 시작하면서 할머니처럼 김치찌개를 끓여보려고 몇 번 시도해보았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할머니 외에 그 누구도 그렇게 김치찌개를 끓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반면 우리 엄마는 아주 정석적인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인다. 엄마의 김치찌개는 국물이 넉넉하고 지방이 많이 붙은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내가 집적 김치찌개를 끓이려고 하면 엄마가 만들어준 맛있는 김치찌개보다 할머니의 김치찌개가 더 빨리 떠오른다. 할머니의 꾸덕한 김치찌개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왜 종종 생각이 나는 걸까. 


참치 김치찌개 끓이기

1. 냄비에 김치와 양파를 썰어 넣고 기름을 조금 부어 볶는다.

2. 물을 넣고 팔팔 끓인다.

3. 참치 한 캔을 따서 넣는다. 간장도 두 숟갈 넣는다.

4. 총총 썬 파를 넣고 조금 더 끓인다. 

5. 그릇에 담아 갓 지은 하얀 쌀밥과 같이 먹는다. 


할머니는 자식이 일곱이다. 평생 남편과 자식들, 심지어 손자들 뒷바라지까지 하셨고 거기다 젊으셨을 땐 시어머니인 증조할머니까지도 모셨었다. 아빠와 삼촌들, 고모 그리고 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를 위해 꾸덕한 김치찌개를 수 십 년 동안 아무 말 없이 끓이셨을 것이다. 그리고 반세기가 넘도록 지내왔던 제사 때는 나물반찬을 만들어 그릇에 곱게 담아 말없이 제사상에 올리셨을 것이고. 그렇게 할머니는 구십이 넘으셨다. 몇 해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햇볕이 조금 더 잘 드는 집으로 이사를 하셨고 제사는 큰아버지 집으로 옮겼다. 그리고 할머니는 제사에 더 이상 오시지 않는다. 절대로 오시지 않는다.










제가 그린 그림을 올려놓은 제 인스타그램에도 한번 놀러 오세요 :)

https://instagram.com/eunji.illust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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