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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승 Sep 06. 2022

길을 걷다.

한 길만 걸어간다는 것은....

대단하고 거창해서가 아니다.


  무언가를 오래 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다음 말을 듣기도 전에 칭찬부터 앞세워 말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다음 말에 대한 자세한 부연설명을 할 기회조차 없기 때문에 그냥 유야무야 '그냥 그렇죠 뭐~~' 하며 웃으며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내 삶도 괜스레 왜 이 일을 하는지에 관한 설명조차 없이 더없이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하는 삶이었고 다른 여러 사람들이 사는 각자의 삶 또한 대부분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하고 태연하게 자신의 삶을 집중하는 사람들을 보곤 했었다. 그래서 그들이 가고자 하는 길이 순탄할 때도 보았고 그 길에 더 이상 걷지 못하고 울고 있는 걸 보았을 때도 있었다는데 살면서 누군가가 힘들어하면 충고를 하기보단 진심 어린 위로나 따뜻한 손을 내밀어 등을 토닥토닥해주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배우게 되었고 마음에도 없는 괜한 충고가 타인에게 얼마나 독이 되는지 어른이 되고 나서 알고 나서야 더더욱 그랬다. 

  


클래식 음악이 나와 전보다 더 친한 친구가 되었을 때


  음악은 음악만으로도 완벽한 느낌이 드는 예술 장르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져 나오는 오케스트라의 합주를 듣고 있노라면 음악은 생각보다 힘이 참 세구나! 싶은 그런 마음까지 든다. 그런 음악이라는 장르가 처음부터 내게 쉽게 곁을 내준 건 아니었다. 특히나 이지 리스닝에 익숙하고 가요나 일반 대중음악에 더 익숙했던 내겐 클래식 음악이 익숙해진 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한때 내게 춤은 곧 음악이고 음악을 들으면 곧 춤이 연상되기도 했었는데 아이를 임신했을 때,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집중해서 클래식을 들어보고자 시도하려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음악을 외우듯이 들으면서 연습을 하던 시절, 돌이켜보면 음악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느꼈다기보다는 순서를 외우라는 대로 외워서 춤을 추어야 하는 도제식 교육에 훨씬 더 익숙했기 때문에 음악에게 가슴을 열고 음악을 듣고 이해 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발레의 갈라 공연처럼 하이라이트 공연을 보는 일이 훨씬 더 익숙했던 건 누구나 자신이 알고 있는 건 더 쉽고 더 편하게 느끼는 평온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임신 중의 태교를 핑계 삼아 집중해서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그 음악들이 쉽게 들리고 좋아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꽤 긴 시간이 흐른 후에 일이었다. 아마도 얼추 매일같이 들어도 10년이 넘어갈 즈음에 귀가 열리고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까탈스러운 여자 친구가 몇 년 동안 공을 들여도 눈길조차 한번 안 주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조금 열려 "자 내 손 한번 잡아볼래?" 하고 손을 내미는 느낌 같은 거였다고 말하면 될까?

  클래식 음악과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꽤 긴 시간이 걸렸고 꽤 오랫동안 문 앞에 서성이며 서 있었던 사람의 마음 같았다 해도 결국은 친구가 되고 보니 그렇게 좋은 절친이 될만한 친구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처럼 그렇게 음악은 그렇게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가끔 이유 없이 클래식을 들으면 아이한테 좋을까요? 하고 묻는 임산부들이 있다. 내 경우엔 그저 억지로 듣지 마시고 그냥 여유롭게 천천히 시도해보시면 어떻겠냐고 되물어보곤 한다. 억지스러운 감정처럼 낯간지러운 게 또 있을까? 싶기도 하고  진심으로 트롯을 좋아하면 트롯을 들으시고 가요를 좋아하는 임산부 이시면 밝고 경쾌한 음악을 자주 들으시라고 추천드리고 싶다.  아이를 갖았을 때처럼 태교 하는 마음으로 지내는 시간과 여유는  아이를 키워 보고 나서야 그때가 얼마나 자신에게 편한 시간이었는지는 뱃속의 태아도 엄마도 알지 못하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길을 오랫동안 걸어서 좋았던 이유는....


  '배우'라는 직업만 기다림을 숙명으로 안고 살아야 하는 직업인 건 아니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도, 수 도 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하는 직업이란 걸 인터뷰를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에 만난 발레리나를 만나보니 더더욱 그랬다. 그녀와 만나기로 두 달 전쯤부터 약속을 잡았고 정말 바쁜 스케줄의 그녀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내준 시간에 맞춰 나가서 그녀를 만나고 나니 내가 좋아하는 '감로주의 술잔'이라는 표현이 절로 맞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위에서 한 없이 빛나는 그녀를 무대 아래에서 볼 기회는 거의 없기 때문에 인터뷰라는 명목이 아니면 보기 힘든 그녀를 가까이에서 만나보니 어찌나 사랑스럽고 똑똑하던지... 인터뷰를 주도해야 할 내가 되려 조용히 다물어졌었다. 

  일반 관객들은 무대 위의 무용수들의 춤만 볼 수 있으니 목소리를 들을 기회조차 없는 것에 반해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이렇게 죽이 척척~~~ 맞듯 대화가 술술 풀어지는 순간이 있을 때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들을 다 저 멀리 잊힌 체 이런 순간을 위해 그렇게 지루하고 힘든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내가 얼마만큼 당신들을 사랑하는지에 열변을 토하지 않아도 그녀는 나와의 대화를 통해 "정말 우리를 아끼시는군요!!"라고 화답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 바쁜 와중에 좋은 컨디션일 때 만나기 위해 준비했다는 말은 정말 감격스럽다 못해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그녀와의 인터뷰를 하고 오는 길에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이런 걸까? 여러 번 생각했다. TV 속 댄서가 내게 나와 꿈에 나타나 주고 사라진건 아닌가? 싶어 볼까지 꼬집어 보고 싶어 졌고 그녀가 주문한 카푸치노 영수증을 보고서야 "아, 내가 꿈에서 그녀를 본 건 아니구나"싶었다. 

  마지막에 자리를 일어날 때도 "맛있는 커피 잘 마셨습니다" 하는데 여자인 나도 이렇게 마음이 설레기까지 하는 걸 보고 사람들이 하는 말들 중에 '척 보면 안다'표현은 더없이 부질없는 표현이란 걸 알게 되었다. 

  결국 겪어보고 부딪쳐봐야 아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쉽게 선입견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혀 그 누구의 장점도 우습게 묵살해버리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내가 그녀에게 진심으로 감동했던 건 나도 그녀를 잘 모를 땐 '~~ 카더라' 통신의 말에 조용히 동조했을는지도 모르는데 팬에서 안티가 되기는 쉬어도 안티팬이 진짜 팬이 되는 건 극강의 경우가 있을지라도 내가 직접 만나보니 그녀는 더없이 사람 냄새 폴폴 나는 그런 좋은 사람이었다는 걸 굉장히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직접 만나보고 나서야 알았다는 아쉬움이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하려고 했을 때, 발레리나 출신의 나의 선생님도 내게 가장 중요하게 하셨던 말씀 중에 하나가 "무용수가 말을 하려고 할 때까지 절대 보채지 말라"라고 하셨는데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왜 그 말씀을 내게 하셨는지 이제야 조금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보채지 않고 살아야 사람도 삶도 풍경도 저절로 내 눈 안에 편안하게 담을 수  있게 된다. 서두르지 않아도 가고자 하는 길이 명확하다면 돌아갈지는 몰라도 길을 걷다가 괜히 걸었다고 하면서 걸음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행운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한 길을 걷는다 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보면 누군가에겐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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