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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승 Dec 28. 2016

한동인의 서울발레단 이야기 (3)

그는 서울발레단의 제 5회 정기공연 프로그램에서 한동인의 노고를 치하하는 글을 올렸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의 발레를 말할 때에도 근본적으로는 역시 세계발레의 전통이라는 크나 큰 흐름에 입각해서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소위 서양무용이라는 것이 수입되어 삼십년은 넘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그 중에서 발레의 분야가 차지하는 역사는 10년도 못 되는 6,7년의 짧은 년 수가 아닌가 한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해방년 2년)에 일본에서 발레를 공부하던  두 사람의 무용가  정지수씨와 한동인씨  그리고 그들의 발레운동에 좋은 협력자인 김종훈씨 등의 노력과 그 뒤를 이어 조익환씨 구원민씨 등이 적으나마 우리 발레운동의 제창자로 본다. 특히 한동인씨가 그동안 사회적인 제약이 많은 가운데  고군분투(孤軍奮鬪)하여 오늘날 서울발레단 이라는 형태를 갖게 된 것은 그 노고를 높이 평가하는 바이며...........(생략)

   




하지만 이 글이 발표되었을 당시 정지수는 이미 월북한 상태 였고 조익환과 구원민 등은 행방이 묘연했으니 전적으로 한국발레의 운명은 거의 전적으로 한동인이 이끄는 서울발레단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정지수의 경우는 이북출신의 무용가 이석예와 이미 결혼을 염두에 두고  미리 월북한 케이스 였고 조익환이나 구원민의 경우 그 활동이 너무나 미비하여 그 영역이 어디까지 인지 확인이 불가능한관계로 이 글이 프로그램에 올렸을 당시 백성규의 안목에서 본 시각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어진다. 게다가 백성규의 지적대로 우리나라에 발레가 들어온 지 10여년도 채 안되는 사이에  한동인의 이루어 놓은 업적은 짧지 않은 시간에 폭넓게 이루어놓은 것만 봐서도 분명히 그가 월북만 하지 않았더라도 우리 발레의 역사는 지금보다 더 진일보 하였으리라는 추측도 조심스레 해 본다.

  한동인이 무대에 올렸던 작품들을 살펴보면《레실피드》,《호두까기인형》외에는 주로 창작발레를 발표하였는데 그 작품들의 공통점을 중에는《꿩》,《매》,《뱀》등 조류 과의 동물들을 모방한 작품들을 선 보였고 이런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먼저 한동인의 신체조건과 기질은 무대에 올리는 안무자로서 먼저 잘 파악해서 나온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서울발레단의 레파토리로는 전통발레와 창작발레의 비중을 놓고 봤을 때 전반적으로 한국적 스타일의 창작발레가 대부분 이었다. 물론 전통발레를 무대에 옮긴 일 역시 발레라는 장르의 특성상 음악과 조명, 의 상 기타 등등의 보조적 여건이 협조되지 않으면 무대에 올릴 수 없기 때문에 이 역시 서울발레단의 역사적 요인을 배가 시키는 요소 중에 하나로 손꼽히기도 한다. 물론 전반적인 안무는 대개 한동인이 하였는데 전해오는 자료에 의하면 안무자 자신의 개성과 독창성이 살아있었다고 전해진다.

  작품《매》는 솔로로 구성된 작품으로 상의를 벗은 채 추어지는 이 작품은 두 팔을 높이 들어 새의 날갯짓을 사실적으로 형상화 하는 것이 특징이다. 드높은 상공을 마치 비상하는 것 같이 몸짓이 이 작품의 포인트인데 이러한 표현을 위해서두 팔에는 날개를 연상하는 천을 달아 표현 하였는데 이 작품은 서울발레단의 공연소품으로 무대에 올려지기도 하였지만 때론 다른 무용가들의 공연이나  각 문화단체 주관의 행사에도 자주 공연 되어진 작품으로  소요시간은 5분정도 걸렸다고 한다.

이 작품이 호평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먼저 한동인이 갖은 신체적 스타일 즉, 작은 키에 다부진 몸체를 잘 이용하여 단점을 장점으로 교묘히 성공한 작품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이후에도 한동인은《꿩》,《솔개》등 주로 새로 연관된 모방된 작품들을 올렸고 그 중에는 곤충이라고 하기엔 좀 징그럽지만《뱀》을 작품에 묘사하여 눈길을 끌었다. 그 외에도 남녀 2인무로 이루어진 작품《사신과 소녀》에서는 병이 든 가냘픈 소녀와 이어 등장하는 사신의 출연으로 죽음을 관장하는 저승사자가 나타나 폭압적 분위기로 극의 내용은 전개되는데 이 때 소녀는 흰색 로맨틱 튜튜에 토슈즈를 신었고 사신의 경우는 단순하게 의상은 입었지만 대신 얼굴분장을 무섭게 하여 저승사자의 분위기를 연출하였다고 한다.또한 작품《사신과 소녀》는 매 공연 때마다  파트너가 바뀌긴 하였지만 사신 역은 주로 한동인 맡고  소녀 역은 천완순이 자주 연기하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서울발레단의 대표작은 1950년 비극적 역사의 정점이었던 당시에 발표된《인어공주》라고 할 수 있는데 2막 6경으로 된 구성의 이 작품은 안데르센에 나오는 인어공주 내용을 춤으로 만든 발레작품으로 주요 등장인물을 보면 인어대왕, 왕비, 그 외에는 공주는 제 1공주에서 제 5공주까지 세분화하여 출연하였고 그밖에 등장인물로는 시녀(侍女), 해어(海魚), 꽃의 정(情), 나비, 태풍우(颱風雨),  백조, 귀공자, 귀공자의 부(父), 귀공자의 연인 (戀人), 귀공자의 친구들에 동리처녀와 동리아동 등 각종 방대한 배역들의 출연으로 짜여져 있었기에  한 사람이 각 장마다 중복출연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였다. 게다가 당시에 보기 드물게 김생여의 지휘로 서울심포니의 현장연주에 의한 공연이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서울발레단의 대표작이 되기 충분한 셈이다.  시대적 상황 역시 척박했던 현실에 대한 안무자와 단원들의 일치단결된 모습으로 이 당시의 한동인의  예술적 여정은 거의 절정에 이른 듯 보였다. 물론 그 외에도 한동인의 안무작 중에는 《민족의 피》,《장열》등 상당히 민족적인 색채와 급진적 인상을 풍기는 작품들도 내 놓았지만 그에 대한 기록과 사진 또한 전무한 관계로 이는 확인 할 길이 없었다.. 다만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그가 평소에 원하는 대로 무용의 고급화와 발레의 대중화를 이론적으로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한 예술가 이었다는 사실과 관객들이 알기 쉽게 무용을 감상할 수 있게 작품을 만든 사실은 그의 올바른 인식과 예술에 대한 열의로 이루어진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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