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라는 작가, 룰루 밀러의 물음으로 시작된 이야기. 한 번의 실수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삶을 잊게 된 룰루 밀러. 어릴 적 인생의 의미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버지는 인생은 혼돈이고,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니 너의 인생을 즐겨라.라고 대답하고 밀러는 오랫동안 그 의미를 곱씹게 된다. 하지만 혼돈이라는 자연의 진리와 엔트로피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질서를 다시 쌓아 올렸던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발견하고 착실히 그의 삶의 궤적을 추적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어류학자이자 분류학자이자 과학자였으며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을 사랑하고 탐구했던 과학도였다. 그는 물고기 즉 어류를 분류하고 카테고리징하고 일련의 특징과 룰에 의거하여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에 일생을 바쳤다. 앞에서 언급한 혼돈이라는 진리와 엔트로피가 그의 일생에 내도록 태풍처럼 불어닥쳐도 말이다. 지진으로 인한 학문적 성과의 소멸,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등과 같은 일련의 비극 앞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았다. 룰루 밀러가 그토록 알고 싶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다시 삶에서 발을 내딛을 수 있는 근거에 대해 책은 '낙천성의 방패', '파괴되지 않는 것', '자신에 대해 가당치 않게 커다란 믿음을 가지고 있던'등과 같은 것들로 규정한다.
그래서일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에세이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불에 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그 지진과 화재가 준 교훈이다. 그가 지은 집은 무너지기 쉬운 카드로 지은 집이지만, 그는 집 밖에 서 있고 다시 집을 지을 수 있다. 위대한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그보다 더 경이로운 일은 도시가 되는 것이다. 도시란 사람들로 이루어지며, 사람은 영원히 자신이 창조한 것들보다 높이 올라가야 한다.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보다 더 위대하다.' 이런 대목들은 숨가쁘게 빌드업되어 후반부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개인적인 스캔들(제인 스탠퍼드의 타살의혹과 관련된 일), 우생학자로서의 행보들을 뒷받침하게 해 준다.
결국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통해서 그토록 찾고 싶어 했던 삶의 의미라는 물음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도달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가 우생학자로서 저질렀던 추악한 범죄(열등한 유전자로 분류된 사람들에게 자행한 불임 시술 등)의 피해자들을 수소문하고, 수십년의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낸 그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한다.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라고. 자연의 혼돈과 엔트로피 속에서 스스로 질서를,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던 데이비드로 인해 '부적합자'라고 명명되어진 사람들은 어떻게 계속 살아가고 있었을까. 어떻게 계속 삶을 일궈내고 있었을까. 룰루 밀러는 그 둘을 통해 관점과 태도, 혼돈를 맞이하는 반응의 상이함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렇게 언급한다. '... 거기 앉아 있을 때는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두 여인 사이(부적합자로 규정되어 불임시술을 받은 애나와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구였던 메리는 서로 의지하여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내고 있다)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실들이. 그들이 얼마나 서로를 빈틈없이 돌보는지, 서로의 슬픔을 찰싹 때려 쫓아버리고, 모든 농담을 재빨리 받아주고, 분위기를 밝게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 해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들 뿐이라고 룰루 밀러는 이야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본인 또한 자연의 재해 앞에 무력함을 실물하였음에도 데이비드는 자기기만이 그대로 유지되어 그에 반응했다. 마치 땅에서 하늘로 역행하는 분수처럼 자연에 대응해 '더 경이로운 도시'가 되기로 택한 것이다. 결국 생을 마감하는 그 날까지 그의 억접들은 자연과학계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사실에 작가는 개탄했지만 후에 캐럴 계숙 윤이라는 생물학자에 의해 '물고기,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평단의 명제가 인정받게 되며, 그간의 데이비드의 업적과 이해관계가 충돌함에 조금은 위안을 얻는다.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지 않는 것', 고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애나와 메리처럼, 밀러처럼 진실을 인정하고 각자가 서로에게 필요한 사랑을 주고 일상을 살아갈 힘을 채워주는 것.
과거 코페르니쿠스가 별을 포기할 때 우주를 얻은 것처럼. 우리도 물고기를 포기하고 바다를 얻을 수 있다. 이제 밀러는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라고 이야기한다. 무수히 많은 것들을 명명하고 정의내리려 할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진실을 놓치고 있는지.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