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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Nov 22. 2022

프로젝트, 프로덕트, 그리고 기술

프로젝트를 하지 말고 프로덕트나 기술을 좀 했으면 해 ~~~

내가 이끄는 연구소 사람들은 본인이 연구원인 것에 만족스러워 한다. 선두에서 앞선 기술을 개발한다는 자부감도 있을 것이고, 연구원이라는 타이틀이 뭔가 근사해서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일하는 방식을 들여다 보면, 그들이 가진 자긍심 만큼 근사하게 일하고 있지는 못하다. 내가 아는 많은 회사들 또한 그들 나름으로 연구를 한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연구과정 또한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 만큼.


그 미심쩍은 구석이 뭔가 하면, 그들이 문제를 푸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연구원이나 개발자들은 그 차이를 잘 알지 못한 채로 자기 일에만 열중한다. 그 미묘한 차이점 때문에 어떤 이들은 좋은 연구원으로, 어떤 이들은 일 못하는 연구원으로 영문도 모른 채 살아간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란, 제한된 시간 내에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목표한 일을 완수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연구 업무에서도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수행한다. 그런데 이런 프로젝트가 중장기적으로 추진되기 보다는 단기성으로 수행되고 그친다는 점이 문제가 되곤 한다. 기술을 개발하고 완성도를 높인다는 관점에서 몇차에 걸쳐서 프로젝트를 운영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인식하는 프로젝트는 요구수준을 만족하면 딱 그것 까지만 하고 끝내는, 밀린 숙제같은 느낌의 성격이다.


그러다 보니, 프로젝트는 요구수준이 85% 라고 하면 95% 이상을 넘기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는 경우는 좀처럼 흔하게 벌어지지는 않는다. 기술의 수준이라는 것이 수치나 기능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끝을 내기 때문에 뭔가 더 숭고하고 높은 가치의 의미를 부여하기가 모호해 진다.


만약, 만약에, 우리의 목표가 프로젝트가 아니라 프로덕트나 프로덕트를 위한 기술이라면 어떨까?

제품이라면, 고객들은 끊임 없이 더 좋은 품질, 더 값싼 제품을 원할 것이다. 그들의 욕심이나 욕망은 멈추지 않고, 한계도 없이 계속 자라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목표가 프로덕트라면, 우리는 쉴 겨를이 없고 스스로 자족할 여유가 없을 것이다. (너무나 가혹한가? 아니다. 고객이 돈을 내어주고, 우리는 그 돈으로 야자수 나무 아래서 주스를 마시며 쉬어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의 목표를 프로덕트로 인지하고 연구한다고 생각해 보자. 제일 먼저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고객이라는 대상이 느끼는 가치가 모든 연구 행위의 중심이 된다. 기초과학을 하는 분들이 아닌 응용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치면,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기술의 응용을 통해서 우리가 혜택을 받는 것이 기술이 우리에게 주는 미덕으로 믿기 때문이고, 이는 종교적 신념에 견줄 수 있는 강한 과학적 신념이라 할 수 있다.

(기초과학을 하는 사람들도, 근본적으로는 사람을 감싸고 있는 세상, 생각을 채우는 관념, 개념적 세계에 대한 탐구를 통해 미지의 것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고, 더 완벽한 삶과 앎을 얻으려 한다. 그래서 그들 또한 욕망에 충실한 것 쯤으로 이해하면 될거 같다. 기초과학자들도 결국은 그들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을 깨달으며 좀 더 완벽한 앎의 길을 걷겠다는 욕망을 가진 것이다.) 


프로덕트를 생각 하는 순간, 우리는 안주하기도 어렵고 부담스럽다. 한번에 만족하지 않고, 그 다음은 더 근사한 것이 나올거라고 기대하는 것이 소비자 아닌가. 그래서 조금 더, 조금 더, 더더더를 외치면서 끊임 없이 혁신하고 개선해 나가도록 등떠밀리게 된다. 이는 프로젝트라는 업무와는 전혀 다른 열기와 압박감이 수반된다.


그럼 기술을 연구하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굳이 프로덕트를 생각하지 안더라도 기술개발은 할수 있지 않겠는가? 라고 말할 수 있다. 반은 맞고 반은 맞지 않다. 그 중 절반은 우리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기술을 연구할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기술을 개발 할 것이다.


그럼, 응용 기술은? 사람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 될 것이다.


5G, 6G 통신 기술을 개발 할 때는 그 기술에 투자되는 천문학적 비용 만큼 신중하게 접근한다. 앞으로 30년 후의 미래 인구학적, 지정학적 특징들과 그 시기의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을 예측하고, 그에 걸맞는 생활 속 제품들이나 서비스를 떠올려야 한다. 그리고 그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성하는 기술을 떠올리고, 그 기술의 스펙이나 성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예측해 보아야 한다.


한 예로, 예전에 있었던 회사에서는 2011년 정도에 클라우드 게임에 대한 기술을 검증해 본 적이 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요즘은 클라우드 게임이 대중화 추세에 있다. 통신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클라우드 환경이 가속화 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고성능의 무거운 기기를 싫어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래 기술을 제대로 개발 하려면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인사이트가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원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성하기 위해 어떤 기술이 어떤 수준으로 필요한지 알아 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연한 기회에 연구하다가 얻어 걸린 기술보다는 훨씬 생산적이고 오래간다.


기술은 하나의 부품과도 같다. 부품을 대충 만들어 놓고 높은 품질과 높은 성능의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해 봐야 좋은 제품을 기대할 수는 없다. 부품은 태생적 쓰임새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부품은 제품의 컨셉에 부합해야 하고, 제품은 사람의 욕구나 욕망에 부합해야 한다.


혜안을 가진 과학자는 미래를 정확하게 상상해서 그려내고, 그 상상도를 바탕으로 기술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런 혜안을 연구원 모두가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나는 단지, 그런 사람 한 둘 더 있었으면 하고 아쉬울 따름이고, 많은 기술 기업들이 그런 혜안을 가진 직원들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서 다분히 소모적인 프로젝트에 자원과 열정을 낭비할 뿐이다.


사용자를 생각하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각하고, 그리고 나서 기술의 수준이나 스펙을 고찰해 본다면 20년 이상 오래 가는 기술이 될 가능성이 좀 더 높을 것이다.

프로젝트 하지 말란 소리는 절대로 아니다.


척 하면 탁 하고 알아 들으시기 바란다.

그냥, 늦은 밤 약간의 현타가 찾아와서 한번 끄적여 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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