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제비는 날아가 버렸다.
공항은 늘 그렇듯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흥부를 맞으러 나오는 게 즐거운 이유에는 이런 공항 분위기도 한몫을 했다. 특히 출국장에 떠다니는 설렘이 간지러워 좋았다. 비행기가 도착하려면 어느 정도 남았지만 그냥 입국장 입구로 갔다. 플랜카드 대신 꽃다발을, 아주 잘 보이는 새빨간 장미로 들고. 며칠 전 전화에 흥부는 그걸 이제 봤냐며 그냥 만나서 얘기해도 되겠다고 웃었다. 어쩐지 얘기가 없더라. 잠깐 나오는 휴가지만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오려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누가 툭툭 말을 걸었다.
"남자친구가 오시나 봐요?"
"아뇨, 동생이에요."
남자친구가 없는지는 일 년이 좀 넘었다. 괜히 얼굴이 더워졌다. 쓸데없는 걸 물어본 젊은 남자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말을 붙이려고 했다.
"아, 동생이 오랜만에 귀국하시나 봐요."
그만 해, 그만. 성가셨다. 못 들은 척 몇 발짝 가운데를 향해 사람들을 비집고 움직였다. 문이 열리고 첫 번째 사람이 카트를 밀며 등장했다. 눈을 바쁘게 굴리며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 흥부를 찾았다.
"언니, 그런데 제비가 진짜 박씨만 놓고 가서 어째야 될질 모르겠어."
"그러니까 그 박씨가 뭔데?"
"양자역학 쪽은 아직 모르는 게 많은 거 알지? 솔직히 우리도 양자 컴퓨터를 시도해봤는데, 좀 예측 불가능하잖아, 그게. 우린 안정적인 게 필요한데. 제비가 고민을 많이 했나 봐."
"제비가 그걸 왜 고민을 해?"
커피 맛이 이상한 거 같았다. 찰랑찰랑 흔들리는 갈색 액체를 바라보며 다시 한 모금 삼켰다.
"내가 얘기 안 했나? 제비 회사 그만두고, 우리 연구 도와준다고 왔었어. 연구원 말고, 뭘 그렇게 놀라. 그냥 연구센터 매니저 같은 걸로? 생각보다 스펙이 괜찮았나 봐. 바로 됐대."
"니네 연구실은 좀 특이하다. 아무나 막 온다고 써도 돼?"
"나도 부탁을 하긴 했지. 갑자기 스팸만 덩그라니 들고 왔는데 어떻게 해. 어쨌든 제비가 도와줄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수소문했는데 마침 폴란드에 한 명이 있었던 거야. 별로 유명한 교수는 아닌데 그 분야에서 유명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그 사람이 한국인이고, 박씨, 그래서 제비가 박씨를 물고 왔지."
"물고 온다고 물어지는 거야?"
흥부는 큭큭 웃었다. 대기업 기술영업팀 대리는 생각보다 발이 넓더라, 언니한테 내가 진짜 뭘 말한 게 없구나. 기분이 이상했다. 통화도 자주 하고 그랬던 거 같은데 몸이 멀어지니 소식도 멀어지는구나 싶어서.
"그래서 반띵 하자는 대박은 뭐야? 그래서 잘 됐어?"
"그 프로젝트랑은 다른 거야. 박씨랑 둘이 같이 한 거거든. 얘기가 잘 통하더라고. 집에서 보여줄게."
"제비가 고맙네. 걔는 한국 안 들어왔어?"
"그게 참 이상하다. 급하게 휴직했는데 날짜가 지나도록 돌아오질 않았어. 연락도 안되고, 아무도 어디로 갔는지 몰라."
흥부는 장미를 만지작 거리며 커피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언뜻 창밖을 보니 오늘도 하늘이 참 파랬다. 햇볕만 조심히 피하면 되겠다. 다행히 양산을 가져왔다. 비는 언제 오련지. 이런저런 잡담을 마저 하다가 머핀을 한 개 더 먹고 나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