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메이커의 생활과 여행하고 일하는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였는데, 코로나와 함께 저의 2년도 순식간에 지나갔네요. 더 늦기 전에 지난 2년간의 일상을 기록해 보겠습니다!!
기존에도 NomadWallet의 유저 수는 아주 작고 소중 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었는데, 코로나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여행을 안 하기 시작하면서 앱 다운로드와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었어요.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보고, 디자인도 수정해 봤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아서, (마케팅 능력이 없는 저는) 새로운 아이템으로 제품을 만드는 방향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면서 ‘아하' 아이디어를 발견하기 전까지 용돈벌이 삼아 외주 작업 1개 정도만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프리랜서 커뮤니티를 기웃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에도 개발 프리랜서 일을 한적은 있었지만, 기존 앱에 기능 추가 또는 버그 수정 정도의 간단한 작업 정도여서 이왕이면 앱을 A-Z까지 만들 수 있는 프로젝트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 한국에 계시는 백엔드 개발자 분과 함께 협업하면서 처음부터 MVP 앱을 만드는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원래는 1개의 모바일 앱만 만들고 다시 내 개인 프로젝트로 돌아올 계획이었는데, 하다 보니 의외로 프리랜서 생활이 너무 재미있고, 특히나 백엔드 개발자분이랑 매일 하루 한 시간씩 통화하고 대화하다 보니 절친이 되가지고(와이프랑도 그렇게 수다를 안 떠는데..) 둘이서 재밌게 일을 좀 더 해보자 하다 보니 얼떨결에 몇 개의 프로젝트를 더 진행하게 되었어요. (인디 메이커 생활 안녕...)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발견한 가장 긍정적인 요소는 프리랜서 일도 지속성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였어요. 외주 초창기에 MVP를 개발했던 회사에서 지속적인 유지/보수를 원했는데 회사 입장에서 풀타임 채용은 부담스러워해서 주당 10시간 정도 유지/보수 일을 해주기로 하고 월급을 받는 식으로 계약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시간과 장소의 자유를 가지고 주당 10시간 정도만 일하면 되니까 이런 식으로 2-3개 정도만 유지/보수 계약을 맺고, 나머지 시간에는 내 제품을 만들면서도 살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와중에 예전에 등록해 놓았던 해외 프리랜서 사이트를 통해서 미국 스타트업의 모바일 개발 의뢰가 들어왔고 (역시 일은 한꺼번에 몰리나 봐요..), 미국 회사와 언제 한번 일 해보겠냐는 생각 + 나쁘지 않은 시급에 외주 투잡을 동시에 진행하게 되었어요. 대략 주 30시간(모바일 유지/보수 개발(10시간) + 미국 스타트업 모바일 개발(20시간)) 정도를 일 했는데, 생각보다 일도 재밌고, 정규적으로 들어오는 수입도 괜찮아서 인디 메이커 생활은 잊은 채 프리랜서 생활을 6개월 정도 더하기 시작했습니다. (돈의 힘..)
프리랜서 생활은 솔직히 적성에도 잘 맞고 재밌었어요. 원격으로 일했고, 데드라인 (1주일 단위 스프린트) 안에만 개발을 완료하면 되었기 때문에 시간/장소의 자율성이 컸거든요. 때마침 당시 베트남은 코로나 확진자 0명 기록이 몇 달 동안 이어지고 있었고, 또 정부에서 국내여행을 장려한다고 여행 산업에 돈을 풀기 시작했었는데, 그중 하나로 숙소비 50% 보조 정책을 지원하고 있었어요. 원래 10만 원짜리 호텔을 5만 원에 머물 수 있는 숙소 반값 세일 같은 거였는데, 숙소 반값 + 원격근무가 저희 부부의 억눌렸던 여행 본능을 자극해서 이 기간 동안 베트남 국내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일도 하는 노마드 생활을 하게 됐어요. 국내 여행도 재밌었지만 의외로 저희가 살고 있는 다낭에 이쁜 카페들이 진짜 많더라고요. 그래서 코워킹 스페이스를 연장 안 하고 오전/오후 이렇게 2번씩 카페 가서 일하는 패턴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놀라웠던 건 코로나 때문에 디지털노마드/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이 남아있어서 일하기 좋은 카페에 가면 어김없이 노마드들이 일하고 있더라고요. 덕분에 네트워킹도 많이 하고 발리나 치앙마이에 가지 않고도 다낭에서 디지털 노마드 삶을 살기 시작했어요.
제가 모바일 외주 개발을 하고 있던 미국 회사는 창업자 2명이 막 창업한 신생회사였는데, 당시 외주 프로젝트를 하나 받아서 백엔드 개발은 창업자 중 한 명이 담당하고, 디자이너와 모바일 개발자(나)를 프리랜서로 채용해서 진행하고 있었어요. 모바일 개발이 거의 마무리 단계로 가고 있어서 다음 프로젝트 뭐 받아온 거 있냐? 웹이든 모바일이든 개발 가능하다고 막 어필을 하고 있었거든요. 시급이 꽤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주 20-30 시간 정도만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하고, 나머지 시간에 다시 제 프로젝트를 키우면 되겠다 생각해서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회사에서 역으로 오퍼를 줬어요. 앞으로 회사에서 외주 개발은 더 이상 안 하고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풀타임 프런트엔드 개발자를 구하려고 한다고요. 그러면서 저한테 함께 하자고 제안을 해줬어요.
함께 일하면 좋은 팀이란 거는 외주를 진행하면서 이미 충분히 느꼈기 때문에, 너무 감사하고 솔깃한 오퍼였는데, 솔직히 저는 인디 개발자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거든요. 그때 당시에 저와 함께 인디 개발자 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은 벌써 월 2-3000불씩 벌기 시작했고, 그런 이야기들을 트위터와 커뮤니티에서 계속 접하다 보니까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더 심하게 뒤쳐질 것 같은 불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거든요. 고민은 많이 했는데 인디 메이커 생활은 나중에 시간이 지난 후에도 할 수 있지만, 미국 회사에서 풀타임 원격근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내 인생에서 몇 번이나 찾아올까라고 생각하니까, 다시 취업하는 걸로 마음이 기울었어요.
특히 또 같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예전에 제가 부트캠프 수료하고 1년 정도를 국내 스타트업에서 원격으로 근무를 했었는데, 당시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같이 일하면서 친해진 친구가 호주 스타트업에서 일해 볼 생각 없냐고 제안을 줘서 면접을 봤었어요. 그때 작은 팀이긴 했지만 수익을 이미 많이 내고 있던 회사였고, CTO가 베트남에서 장기 체류하면서 개발을 하고 있었는데, 베트남에 개발 팀을 꾸리기를 원했거든요. 그래서 면접도 보고, 연봉협상도 진행하다가 제가 당시 다니던 국내 스타트업을 배신한다는 죄책감(세상 물정 몰랐죠...)에 결국 호주 회사 이직은 거절했었어요. 솔직히 그런 기회가 절대 쉽게 오는 게 아니었는데 저는 당시 그 기회를 잡지 못했어요.. 그때 그 회사에 조인해서 일을 했더라면 물론 노마드 월렛은 만들지 못했겠지만, 커리어도 더 좋게 쌓고 취업 비자를 받아서 호주로 넘어가서 일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는데, 나중에 생각하니까 너무너무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에 오퍼를 수락하고, 인디 메이커 생활은 잠시 접어둔 채 풀타임 원격근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회사에서 일한 지는 벌써 1년이 넘었어요. 팀원이 총 4명인 작은 팀이지만 재밌게 일하고 있어요. 저를 제외한 3명은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주에 살고 있어서 팀원 전부다 원격으로 일을 하는 나름 글로벌(?) 리모트 퍼스트 회사입니다 :)
가장 큰 이벤트는 뭐니 뭐니 해도 아빠가 된 거예요!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와이프가 임신을 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너무나 감사하게도 망고가 건강하게 저희 품으로 와줬어요. 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였는데, 그런 저를 완전히 바꿀 만큼 망고는 너무 사랑스럽고 완벽해요.
하지만 아기 키우는 거는 진짜 너무너무 너무 힘들어요. 사랑스러움과 힘듦은 별걔예요. 특히 망고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망고 임신 중이었을 때에는 회사일을 하면서 외주 모바일 유지보수도 주 10시간씩 하는 투잡을 뛰고 있었는데, 망고 출산 이후에는 절대 시간을 확보하기가 힘들어서 아쉽지만 유지보수는 그만두기로 했어요.
당분간은 외주도, 제 개인 프로젝트도 잠시 멈추겠지만, 프리랜서/인디 메이커 대신에 사랑하는 망고와 시간을 좀 더 보내면서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고, 망고가 조금 더 크면 그때 다시 ‘아하' 아이디어를 가지고 제 개인 프로젝트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