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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란 Dec 02. 2020

집 사려고 사는 것도 아닌데

무주택자의 유리멘탈

무주택자의 마음은 굉장히 이중적이다. 무주택자이지만 낙오자는 아니라고, 우리는 미래의 집을 향해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집 마련'이 어떤 느낌일지를 상상하곤 한다. 속마음을 좀 들켜도 되는 사람들에게는 가끔 묻기도 한다. 집을 사기 전과 집을 산 후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타인이 가진 것에 대해 시샘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최대한 겸손한 태도로, 혹은 무주택자인 나를 배려해서 다들 은행 빚에 대해서 푸념하며 손사레를 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이 든다고 했다. 가끔 현타올 때 '지금 당장 때려치더라도, 내 집 하나는 남아있다'라는 생각이 들어 위안을 삼기도 한다고.


이미 집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건 왜 내 남편은 조인성이 아니냐고 하는 것과 똑같다. 하지만 무주택자일수록 멘탈관리는 필요하다. 도무지 현실감 없는 부동산 시장 상황에 감정기복이 매우 심하며, 끊임없이 '집'에 대해 탐구하는 쪽은 아무래도 우리 '무주택자들'일테니까.


이런 생각도 해본다. 우리 세대는 부모님 세대가 너무 많은 것을 누렸다며 신경질을 부리면서도, 그들이 평생에 걸쳐 이룬 것을 당장 갖지 못해 조바심을 내고 있는 건 아닌지. 물론 부의 대물림으로 타고난 경제적 격차가 커 우리 세대가 느끼는 박탈감과 좌절감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나도 부모님이 도와주셔서 집을 마련했다는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면 내심 부럽다.


부모님 세대에는 결혼을 하면 자력으로, 대게는 외벌이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이 당연했다. 아빠는 대학을 졸업한 후, 먼 친척의 도움으로 축협의 우유 대리점 하나를 얻어 거기 딸린 방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몇 년을 더부살이 하다 동생이 태어나 네 식구가 되자 주택으로 이사갔지만, 방 3개 중에 1개는 세를 주어야 했을만큼 빠듯한 살림이었다. TV는 MBC 밖에 나오지 않고, 수돗가가 마당에 있어 겨울에는 아침마다 엄마가 식구들을 위해 물을 데워야 하는 집이었다.


주말, 밤낮없이 일한 아빠는 당시 조합장에게 발탁되어 대리점장에서 축협(은행)의 계장님이 되었다. 운좋게 은행원이 된 덕에 부족한 금액을 대출로 마련하고, 90년대 초반 대단지 아파트에 생애 첫 집을 갖게 된다. 그때 아빠의 나이가 서른 여덟살이었다.


좋은 스펙과 치열한 경쟁없이 은행원이 된 것, 30대에 새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것 지금은 어려운 일이다. 다만, 그 시절에 비하면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 게 분명한데 왜 우리는 '집을 사는 일'에만 골몰해 있을까? 일년에 한번씩 해외여행을 가고, 외국인 친구들과 어렵지 않게 소통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왜 우리는 겨우 '내 집 마련'이라는 부모님 세대의 목표에 멈춰져 있을까? 내 집을 갖게 되면 그 다음은 뭘까?


그때의 아빠처럼 10년을 일하면 집을 살 수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못한다. 아빠는 주말에도 고객들과 등산이나 낚시를 갔고, 일주일에 서너번은 아빠의 회사 동료라는 삼촌들이 집에 와서 잠든 나와 동생을 깨워 용돈을 주곤 했다. 아빠 개인의 취향은 잊고, 회사에 맞춰 산 세월과 맞바꾼 아파트다.


'집 사려고 사는 것도 아닌데...'


세상은 사람을 유주택자와 무주택자로만 구분짓는 듯 하다. 얼마 전, 시집 잘 가려고 교사가 된 것 아니라는 어떤 글처럼 나는 집을 사려고 취직을 하고, 집을 사려고 결혼을 한 것이 아니다. 사내부부인 우리에게 집을 사라는 사람, 아직도 집을 안 샀냐는 사람이 한 오조오억명쯤 된다.


졸업했더니 취업하라고 하고, 취업했더니 결혼하라 하고, 결혼했다니 애 낳으라 하고, 애 낳았더니 집 사라고 하고, 그 다음은요? 오지랖 레퍼토리가 죽을 때까지 준비되어 있는 듯하다.


대학 안가도 된다고, 취직하지 말고 프리랜서 하라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이지 말라고, 애도 낳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은 있는데 왜 집 사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없는걸까. 집에 얽매여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

 

세입자지만, 그럭저럭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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