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눈높이를 올리지마라. 재산 탕진 킬러를 만나게 된다.
퇴근후 세남자는 먹을것을 사러 마트에 방문했다. 각자 먹을것을 구비하고 주류 코너에서 서성이고 있는 찰나 나는 와인에 눈길이 갔다. 살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사실 처음 2마트에서 8000짜리 와인을 사면서 벌벌 떨었다. 왜냐구? 무려 소주 8병 가격이였으니까. 그걸 이 한병으로 커버를 하다니, 좀 미친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와인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그 영광을 재현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와인을 장바구니에 담고 계산을 하였다.
우리 세남자는 집에 돌아와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하였다 그러다 내가 산 와인이 봉지에서 굴러나왔고 이 와인을 한번 마셔보자고 했다.
모든 와인에는 그 와인만의 고유한 맛과 향이 있는 법. 하지만 그때 당시 우리는 그런걸 잘 몰랐던 초보였기 때문에 이게 무슨 맛이지? 하고 당황해 했다. 우리가 기대했던 그런 환상적인 맛은 아니였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좋은점도 있었다. 이 와인을 시작으로 우리 세남자's 의 와인 선호도를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형 A 의 와인 라이프에 불을 붙였기 때문이였다.
개인적으로 소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와인을 마시는게 더 좋았다. 이 형이 정말 대단한건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볼때까지 한다는 것이다. 무슨 취미이든. 공부든 연애든. 와인도 그랬다. 마치 끝장을 보는것 같았다. 와인책을 사고 와인동호회를 들고 (우리 몰래) 와인 동호회에서 배운것들을 우리에게 무료로 전파 하였다. 애주가였기 때문에 우리는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와인을 즐길 수 있었다.
와인 동호회는 이 형의 눈높이를 올려주었다. 구입하는 와인의 가격대가 올라간 것이였다. 사실 나는 와인의 가격대와는 상관 없이 그저 같이 마신다는 것이 좋았고 가격대의 차이도 몰랐다. 이 형이 얼마짜리 와인이야. 얼마짜리야~ 말할때도 와~ 그렇게 비싼와인을?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나도 와인을 알아가게 되고 와인을 점점 빠지게 되면서 구매가 시작 되었다. 그런데 형이 말했을때의 그런 반응과는 달리 내가 직접 와인을 사게 되니까, 신.중.해 졌다. 그리고 그 와인을 마시게 되면 가격이 머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진짜 신기했다. 형이 공짜로 마시게 해 준 와인 가격대는 반응이 없는데 내가 산 와인은 얼마인지 뇌리에 박히다니..와인구입비가 수업료인가? 자주 와인마트에 가게 되고 가격대를 알게 되고 또 구매를 하게 되니까 뭔가 익숙해 졌다.
떼루아를 갔다. 형에게 소문으로만 들었던 떼루아였다. 나는 신나서 사진을 찍었다. 형은 그런 내가 쪽팔렸는지 "그만해..." 라고 외쳤다. 그리고 나중에 자기 폰으로 사진좀 찍어 달라고 했던건 안비밀.
"형 여기 정말 와인이 많다. 최곤데?"
"행사할때 오면 말야? 주차장에 차를 다 못세워..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 "
갑자기 C/F 의 멘트가 생각났다 '줄을 서시오~' 라는..
"그정도야? 오! 진짜 대단하다."
떼루아에는 정말 와인이 많았다. 이 와인을 보고 '흐뭇하다' 라느 느낌을 받았다. 아.. 내가 와인을 보고 흐뭇하다라고 느끼는 단계까지 오다니... 떼루아는 와인이 지역별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래서 마치 지역을 여행하는 느낌이였다. 떼루아를 방문했을 때에는 지인의 영향으로 바롤로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난 다른 와인들을 눈여겨 보지 않은체 이탈리아 구획으로 가서 바롤로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바롤로는 와인의 왕 인만큼 역시나 비쌌다. 하지만 그 지인분과 마시기 위해 한병 KEEP. 그리고 나서야 다른 와인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너무 흥미진진했다. 수만가지 와인이 내 눈앞에서 나를 유혹하고 있다니.. 아 세상에..
형 A 는 그때 한창 샤또에 빠져 있던 때였다. 역시나 샤또 와인.. 그리고 몇몇 와인을 구비 했는데 그게 총 6병.
" 형 와인 많이 샀네? 이거 모두 얼마치야?"
"응 팔십만원."
"팔... 십만원?"
난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팔만원도 아니고 팔십만원이라고?
"진짜?"
"응, 근데 내가 가격을 아는데 이날 파는 와인들 정가보다 더 싼것들이야. 지금 사둬야해."
난 턱이 빠지는 줄 알았다. 사실 몇만원도 후덜덜 한데 와인을 팔십만원이나 사들이다니. 이 형은 어느 세계에 사는 건가? 유지 아들이라고 하는데 역시 스케일도 달랐다.
가장 좋았던 것은 그렇게 산 와인은 (모두는 아니지만) 우리 세남자's 와 땃다는 것이였다. 아. 진짜. 아 ..
그때는 와인에 대해 푹 빠져 있고 알아가고 있던 때였기 때문에 그리고 형 덕분에 좋은 와인에 길들여져 있던 때였기 때문에 이 와인을 제대로 즐길수 있었다.
와인을 따고 적당한 탄닌감에 입에서 돌려보고. 향도 맡아보고 아직 덜 풀린것 같아 준비운동으로 스월링도 해주고 그렇게 와인을 풀어주고.. 다시금 와인을 마셔보고 적당히 부드러워졌을때 또 한모금 해주고..
"형은 비싼 와인과 싼 와인의 차이가 뭐 인것 같아?"
"디테일이지. 얼마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냐.. 이런것 같아."
"정보?"
"응 싼 와인은 정말 쉽게 향도 사라지고 풍미도 사라져. 마치 인스턴트 스파게티와 같다면 비싼와인은 정통 레스토랑에서 먹는 진짜 토마토로 만든 그런 스파게티야. 씹을수록 아삭거리는 토마토가 느껴지며 요리하기 전까지 싱싱했던 그런 디테일한 정보가 살아있는거지."
"오! 그차이 좀 미묘한데? 뭔가 신선한 풍미가 있다는 건가?"
"신선함 보다는 뭐랄까 인스턴트 스파게티는 면도 탱탱하지 못하고 스프도 죽이 되어 있잖아. 스파게티 향 면이지. 하지만 진짜 스파게티는 아삭거리는 식감, 그리고 각종 향신료의 맛이 어우러져 수많은 정보를 우리에게전달하지.. 그런 차이야"
"좀 알것 같기도 한데?"
와인을 많이 마셔보며 느끼게 되었다. 싼 와인은 그저 알콜 보충용 같은 느낌이 들고 가격대가 올라갈 수록 그 와인이 가지는 풍미가 있었다. 맛이 맛있고 맛없고의 차이가 아니였다. 얼마나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느냐 그차이가 있는것 같았다. 그렇게 와인을 즐기게 되다보니 거짓말 안하고 눈높이가 점점 올라가더라.
다시 말하지만 비싼와인 = 좋은와인이 절대 아니다. 자신에 수준에 맞게 자신에게 적합한 와인을 사면 된다. 하지만 와인은 알콜보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마시는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풍미 더많은 함축성을 가진 그런 와인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보다 비싼 와인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가격이 차이가 있는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가장 웃겼던 것은 8000원으로 시작했던 나의 와인인생이 1~2만원대로 올라가더니 나중에는 3~4만원 나중에는 5~6만원대로 올라가 버렸고 와인 모임을 시작한 때부터 10만원 이상 와인을 즐기게 되었다.
처음부터 10만원 이상의 와인을 즐기게 된다면 가격적인 부담감, 그리고 이해를 못할 수 도 있겠다. 하지만 난 우연찬게도 좋은 사람들을 통해. 좋은 모임을 통해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점점 비싼와인을 사다보니 심리적 가격 저항선이 무너 졌나보다. 이 와인이 얼마지? 보다는 이 와인은 어떤 행복감을 줄 수 있지? 를 생각하게 되니까. 너무 비싼 와인들은 마셔 보지 못해서 모르지만 적어도 이 가격대에는 이런 맛, 이런 느낌을 주겠지? 하면서 그리게 된다. 마치 티코를 타고 다니다가 지금은 그랜져를 몰고 다니는 느낌이다. 그 승차감과 편의 시설 때문에 아무래도 그랜져를 계속 몰았으면 몰았지 티코로 돌아가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나저나, 이렇게 와인을 사 마시다간 파산 되겠다. 조금 자중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