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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그림자 Jul 12. 2019

촬영감독과 카메라맨.  그 사이 어딘가.


카메라맨과 촬영감독. 그 사이 어딘가.

촬영감독은 이미지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책임지고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나는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다.

영화를 찍을 때 촬영감독을 절대 카메라맨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단순히 카메라맨이라고 부르기에는 그들이 관여하는 영역이 너무도 넓다. 카메라맨은 말 그대로다. 카메라맨이다.
영화일을 관두고 방송국에 들어온 이후 나는 스스로  카메라맨과 촬영감독 사이 어딘가에서 줄타기 중이다.

방송 프로그램은 드라마건 다큐건 간에 철저하게 시스템 하에서 이루어진다. 일은 철저히 분업화돼있으며 방송 프로그램 만드는걸 옆에서 보노라면 거의 제품 찍어내는 공장과 비슷하다.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고 현장 여건은 늘 아쉽다. 하지만 거기서 뭔가를 찍어야 하고 그게 방송에 보여진다. 중요한 건 그런 시스템 안에서 끝장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적당히 방송에 나갈 정도가 되면 그 정도에서 마무리되는 게 내가 겪은 대부분이다. 물론 ‘적당히’라는 모호한 말은 사람마다 체감이 다 다르다. 처음에는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게 너무나도 이상했고 또 이상했다. 십년이 지난 지금도 참으로 이상하다
나 역시도 어느 순간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한다.
십년이 지나도 그게 제일 어렵다. 언제가 멈춰야 할 때인가? 나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카메라맨 정도의 역할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맞추자니 그건 나 스스로가 싫고. 나 스스로 100퍼센트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부끄럽지는 않아야 하고. 그러려면 방법은 하나. 시스템 그 안에서 두배 세배 더 노력해야 한다. 되는 만큼. 시스템 자체가 후진 곳에서 거기에 동화되는 순간 같이 후져지게 된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작품을 만든다는 건 방송국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 안에서 후다닥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건 놀라운 경험이기도 하지만 많은걸 포기하면 또 그만큼 쉬운 게 없다.

대부분의 피디들은 촬영감독에게 카메라맨 정도의 역할을 바라고 카메라맨 (촬영감독과 다른 의미에서) 역시 그 정도의 수준에서 일이 진행된다. 그건 말 그대로 일일뿐이다. 난 매일매일 카메라맨으로 불리기도 하고 촬영감독으로도 불린다. 특별히 '난 카메라맨이 아니야'라고 말할 필요도 없다. 시스템 하에서 두 개가 같은 말이 되기도 한다는 걸 나 역시 이제는 알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개가 같은 말 아니야?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나에게 있어 저 두 단어의 간극은 엄청나다.

촬영감독과 카메라맨.  그 사이 어딘가.

카메라맨 정도의 역할을 바라는 사람들과 일할 때 늘 딜레마에 빠진다. 그들이 원하는 수준에서 일을 진행하면 되는가? 그 정도의 작업이 괜찮은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리고 대부분 그 정도에 만족한다. 그 정도만 하면 되나? 그럼 나도 심신이 편할 텐데.
그래도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해선 안된다. 언제나 그 정도 이상을 해야 하고 그래야 그들의 존중이 나온다. 아니, 존중이라니! 이건 헛된 바람이고 그냥 내 스스로가 그래야 한다. 존중은 대부분 없다. 바라지도 말라.

나의 노력과 역할이 폄훼되지 않고 스스로를 존중하고 자존감을 갖고 일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연출자나 다른 스탭들에게 촬영감독이라는 역할의 의미를 정확하게, 또 정확하게 심어주어야 한다.
방송국에서 그러고 있으니 결국 힘든 건 내 몫이다.
이러고 사는 거 나도 피곤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늘 나와의 투쟁이다. 적당한 선 그건 말장난에 불과하다. 착각 속에 사는지도 모르지만 예술가의 마음을 언제나 잊지 않고 끝까지 간직해야 한다.



나는 촬영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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