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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그림자 Aug 29. 2019

쓸쓸함에 취하지 말라   라라랜드( LALA LAND)



라라랜드.
쓸쓸한 사랑의 감정,
사랑스러운 음악들, 두 배우의 눈빛. 오묘한 보랏빛 화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촬영까지.
나도 이 영화의 분위기와 눈빛들이 사랑스럽다.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 보면
그녀는 성공한 여배우가 아니라 극작가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남자는 매번 오디션에 떨어지고 좌절하고 불안해하는 여자에게 너만의 대본을 써보라 조언하고, 연극이 망하고 도망치듯 떠나버린 여자를, 결국 그녀를 세상에 다시 끌어낸 것도 세바스찬이다. 미아와의 안정된 삶을 꿈꾸지 않았다면 남자는 밴드에 들어가 키보드를 치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실망하고, 꿈을 찾으라는 속도 모르는 철없는 말을 하는 미성숙한 캐릭터로 묘사된다.
그리고 그들은 헤어진다. 완벽한 첫사랑의 이미지. 맘속에 홀연히 들어왔다가 떠나버린 그녀.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둘은 쓸쓸한 눈빛을 교환하고, 영화는 그때 그들이 헤어지지 않고 사랑했더라면 어떤 삶이 되었을까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엔딩의 황홀한 이미지에 우리는 취하고 눈이 먼다.

쓸쓸함으로 무장하고 쓸쓸함에 취해.

하지만 쓸쓸함을 접어두고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 영화의 여성에 대한 묘사는 많은 영화에서 그러하듯 지극히 남성 위주의 시선이다. 영화는 여주인공인 미아의 캐릭터를 꽤나 의존적인 모습으로 그린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하는 존재. 과연 그녀의 성공은 스스로 이루어 낸 것일까?
반면 세바스찬은 여자를 아끼고 사랑해 결국 꿈을 버리고 희생하는 속 깊은 세상 멋진 남자로 그려진다. 여자는 그런 맘도 모르는 철부지로 그려지고. 그도 결국 꿈을 좇아갔지만. 그리고 꿈을 찾아 떠나는 연인을 응원하고 헤어지는 더 멋진 남자로 남는다. 결국에 꿈을 이루면서.

"많은 사랑이 다 저런 모습이지."
누군가 지나버린 사랑을 후회할 때, 쓸쓸해지는 감정과 감성적인 피아노 소리와 오묘하게 홀리는 보라색의 풍경들. 이런 것들로 사랑과 꿈에 관한 판타지가 완성되고, 다들 추억에 빠지지만 거기서 멈추지 말고 한번 뒤집어 이 영화의 여성에 대한 시선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너무 많은 아름다운 이미지들과 황홀한 분위기가 있어 대부분 관객들의 이성을 잠시 마비시키고 개인적 추억과 얽힌 감상에서 판단이 멈춘다.
이 영화가 위안이 되고 그 위안 하나로 좋은 영화로 기억되더라도 왜곡된 시선은 존재한다. 영화라는 매체가 갖는 정서의 강렬함은 은연중에 사람들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나중에라도 우리는 그 영화의 시선을 살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너무 익숙한 것들이라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하지만 잘못된 것들이 남자들보다 여자들에게 훨씬 많다. 남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이 몸속에 체화되어 그게 차별을 낳는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무슨 권리와 특권이 있었나. 이 세상은 여전히 여성들에게 불리하다.

이 영화처럼 은연중에 여성을 타자화시키는 많은 시선들은 보는 사람들에게 무의식 중에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심는다. 대놓고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시선을 가진 라이언킹 같은 영화보다 이런 감성으로 무장해 인식을 흐리는 영화들이 어쩌면 더 위험하다.
좀 더 성숙한 자아를 가진 주체적인 캐릭터로 미아를 묘사할 순 없었나? 여성을 묘사할 때 매드맥스의 퓨리오사 같은 캐릭터를 매번 만들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미아를, 철부지에 의존적이고 이기적인 캐릭터로 표현함에 한번 더 고민했어야지.

익숙한 것만이 늘 정답은 아니다. 남성은 여성의 구원자, 조력자라는 시선, 여성은 도움을 받아야 하고, 주체성을 갖지 못한 미성숙한 존재라는 시선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음악과 이미지로 홀려버린 영화. 남자인 감독의 똑똑함은 인정하겠다만.

뭐 영화 속의 캐릭터 하나 가지고 너무 일반화시킨다 생각할 수 있지만, 수많은 영화들에서 아직도 여성은 대상화되고,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서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언 고슬링의 애잔한 눈빛과 그의 피아노 선율을 듣고 있노라면 누군들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ㅎㅎ

201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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