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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Feb 06. 2023

장보기, 아직은 할만합니다만

60 되니 알게 되는 것

오랜만에 창고형 대형마트에 갈 일이 있었다. 계산을 마친 후 1층 로비에서 남편이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다. 그곳은 지하에서 계산을 마치고 3-4층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길목이라 카트들의 행진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넘쳐난 카트를 밀며 올라오는 가족을 보면서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생각이 났다. 박스단위로 파는데 객단가를 따져보면 낱개로 살 때보다 훨씬 저렴했다. 낱개 만 원짜리가 여기서는 다섯 개 이만 원에 파는 식이다. 방금 만들어져 나온 빵도 16개 20개씩 판다. 핵가족인 우리는 일주일은 먹어야 할 양이다. 망설이지만 간식을 좋아해 결국 손을 뻗고야 만다. 이렇게 두고두고 먹으면 된다는 심산으로 구입하지만 반도 먹지 못하고 냉동실 어딘가, 냉장고 어딘가에서 잊힌 경우가 많았다. 



마트에 차 가지고 가서 일주일치 식재료를 바리바리 사 오던 풍습을 지양한 지는 몇 년 되었다. 동네 식료품 가게에서 과일 한 봉지와 채소 한 두 가지를 사면 며칠은 먹는다. 일주일에 한 번쯤은 동네 만두가게에서 김이 펄펄 나는 왕만두를 사서 저녁을 대신한다. 고기를 살 때는 이마트에서 4만 원 단위로 생필품과 함께 담아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에 문 앞에 딱 갖다 준다. 생수와 커피는 각 브랜드의 앱으로, 생선이 먹고 싶을 땐 네이버 쇼핑에서 현지 생산자가 판매하는 것을 주문해 먹는다. 


이렇게 주문하는 식재료가 어떨 땐 성공하고 어떨 땐 실패한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엄마다. 엄마는 어떨 때는 반가워하고 어떨 때는 화를 낸다. 반가운 감정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잘 드시면 마음에 드는 거고, 젓가락이 가지 않으면 아닌 거다. 배달되어 온 물건을 보고 화를 낼 때는 그게 식품이 아니어서이다. 식재료가 아닌 물건을 사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 뭐든 사들여 쌓아놓지 말라는 얘기다. 하긴 실패한 물건들이 구석에 놓여있는 것을 볼 때마다 속상하긴 하다. 


엄마세대는 장을 어떻게 봤더라. 동네시장에 가서 샀겠지. 동네에 트럭이 와서 과일이나 두부, 달걀, 배추 같은 것을 샀던 것도 같다. 지금은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톡톡 두드리면 다음날 아침 현관 앞에서 식재료가 딱딱 놓인다. 분명 감탄스러울 텐데 엄마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옆집 할머니가 그거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는데 여기다가 그 가게 이름 좀 적어봐라" 하면 아하, 다른 분들한테는 자랑을 하긴 하나보다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마트 가자면 따라나서던 엄마다. 어깨도 아프고 다리도 아파서 혼자는 뭘 사 오지 못하지만 우리가 간다고 하면 무조건이다. 사람 구경도 하고 물건 구경도 한다고. 그런데 대형마트이다 보니 그것도 중노동인 게다. 걷는 게 힘들어서 이젠 그나마도 어렵게 되었다. 엄마는 그나마 젊은 우리와 같이 살아서 장 보는 게 어렵지 않은 셈이다. 우리가 그 나이가 되고 그 환경에 놓이게 되면 어떻게 장을 보게 될까. 세상이 하도 빨리 변화하니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아침 TV 방송에서 문어가 제철이고 기력 회복에도 좋다며 요리 축제를 했다. 데쳐먹고 죽 끓여 먹으면 노인들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아버지 기력 회복에 철 지난 낙지 구할 생각만 했지 문어 생각은 못 했네. 네이버 쇼핑에서 검색하니 강원도 고성의 피문어가 뜬다. 남쪽 문어는 두껍고 쫄깃한데 고성 남방한계선 근처에서 잡히는 피문어는 얇고 부드럽단다. 가격이 꽤 돼서 한참 망설였는데 지금 아니면 언제 사드릴까 생각이 드니 마음이 급해져서 결제를 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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