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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Jan 29. 2024

먹을까 말까 고민만 세 시간

비 오는 월요일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단골 카페에 왔다. 내가 첫 손님. 아니, 두 번째인가. 들어올 때는 아무도 없었던 것 같은데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다른 손님이 앉아 있네. 그리고 노트북을 열어 와이파이를 연결하는 동안 무슬림 여자 손님 두 명이, 그리고 막 일을 시작하려는데 차이니스 한 커플이 들어왔다. 


진작 나온 라테는 그새 바닥이 보일 듯 말 듯. 아침에 꼬르륵거리던 뱃속에 우유 거품을 넣어주면 조금 진정이 된다. 주말에 푹 놀았더니 할 일이 쌓여서 아침부터 마음이 바빠 카페로 출근했지만 사실 속셈은 따로 있었다.


어제 심심해서 아이와 드라이브를 하다 물었다. 

‘우리 딸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뭐지?’ 

‘자두인가?’라는 나의 물음과 ‘자두’라는 아이의 대답이 거의 동시였다.  

‘그럼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뭐지?’ 내가 묻자 아이가 재깍 대답한다. ‘무화과’ 

‘그럼 아빠는?’ 그는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과일을 먹은 날은 달력에 적어 놓고 기념해야 할 정도다. ‘아빠는 과일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하나를 꼽으라면, 수박?’ ‘맞아. 아빠는 수박.’ 


그런 대화를 나눈 이유는 바로 무화과 타르트가 먹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른한 일요일 오후, 소파에 반쯤 누워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는데,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단골 카페에서 무화과 타르트를 구웠다고 나를 유혹하는 게 아닌가! 당장 주문 배달 앱을 켰는데 갓 구워 그런지 아직 주문 목록에는 없었다. 그럼 얼른 가서 사 올까 했는데 그러기엔 또 몹시 귀찮았던 것이다. 하지만 무화과 타르트는 이미 내 머릿속에 들어왔고. 드라이브를 하며 훌쩍 다녀오면 되었는데 결국 가지 못했고. 


그래서 그런가 다음 날 아침, 다시 말해 월요일 아침이 되니 자연스럽게 내 발이 여기로 향하는 게 아닌가. 아니, 무화과 때문이 아니라 할 일이 많았다니까. 글도 써야 하고 번역도 해야 하고. 그럴 때는 카페에 가야 일이 잘 되니까. 그러니까 무화과 때문이 아니라고. 그런데 케이크 진열장이 하필 출입문 바로 앞에 있는 걸 어째. 세상에! 무화과 케이크가 한 조각 밖에 남지 않았다. 그 커다란 케이크가 어제 하루 만에 다 팔렸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오전 아홉 시도되기 전, 아침부터 저렇게 단 타르트로 속을 어지럽히고 싶진 않았다. 점심 먹고 디저트로 먹으면 딱 좋겠고만. 그런데 자꾸 카페에 손님들이 들어와 케이크 진열장을 쳐다본다. 아니, 하나 남은 무화과 타르트는 내 건데 저걸 주문하면 어쩌지? 그래서 마음이 급해진다. 할 일도 많으니 어느 정도 끝내놓고 맛난 점심을 먹고 디저트로 먹으면 좋겠는데, 혹시 팔려버릴까 불안하다면 할 일을 번개 같은 속도로 끝내고 오전 열 시쯤 무화과 타르트를 먹는 건 어떨까? 혼자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보니 저 멀리 무화과 타르트의 자태가 영, 시커멓다. 아주 진한 초콜릿이 틀림없다. 분명 첫 입에는 맛있을 것이다. 두 번째 입도 그럭저럭 먹을만할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 입부터는… 결국 나 혼자서는 저걸 다 먹지 못할 정도로 다디 달 것이다. 아니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요즘은 단 게 별로다. 저게 무화과 타르트가 아니라 무화과 생크림 케이크였다면 그래도 크림을 살살 긁어내며 먹었을 텐데. 시커먼 타르트라니. 그 위에 얹힌 무화과 4분의 1쪽에 눈이 멀어 타르트를 시켰다가는 분명 후회할 것이다. 이런 잡생각을 하고 있다. 일해야 하는데. 


마트에 가면 터키에서 온 무화과를 판다. 애기 주먹보다 작은 무화과 네 개에 육천 원 정도 한다. 한국에서도 무화과가 싼 과일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큰맘 먹고 주문하면 ‘와, 정말 맛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여기서 파는 무화과는, 정말 맛이 없다. 아니, 터키 농부님들! 무화과 좀 더 맛있게 안 되겠습니까?


내가 처음 먹었던 무화과는 어릴 적 시골 고모네 집 마당의 무화과나무에서 갓 딴 무화과였다. 그때는 그 과일의 이름도 몰랐다. 그저 어른들이 따서, 쪼개서, 입에 넣어주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물오물, 이렇게 맛있는 건 뭔가 하며 먹었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그 맛을 찾아 한국에만 가면 홀린 듯 무화과를 주문하고, 이 먼 이국 땅에서도 마트 진열대에 볼품없이 쪼그라들어 있는 무화과를 보면 살까 말까 고민하며 그 앞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 저 무화과 타르트 위에 얹힌 무화과 4분의 1쪽도 결국 터키에서 왔겠지. 그렇다면 맛은 분명 없을 거야. 시럽을 잔뜩 발라 맛있어 보이게 만든 것일 뿐이야. 이렇게 마음을 다잡는다. 다행스러운 건, 내가 언젠가부터 눈으로 먹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빵순이답게 한 번씩 빵을 몸속에 넣어줘야 할 때가 있는데, 그리고 단 것이 몹시 당길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씩씩한 걸음으로 빵집에 가서 진열대를 쭉 살핀다. 이걸 먹어볼까? 저걸 먹어볼까? 왔다 갔다 고민하다 보면, 절로 속이 느끼해지고, 아 잘 먹었다 싶은 생각이 든다. 빈 손으로 그냥 나온다. 눈으로 먹는 능력이다. 하지만 다 뻥이다. 사실은 맛있어 보이는 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나라다.


며칠 전, 남편이 한국에 가면서 물었다. 

“한국 가서 뭐가 제일 먹고 싶어?” 

“맛있는 빵이나 케이크”

빵을 좋아하지 않는 그와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맛있는 짜장면 혹은 짬뽕?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한정식? 탱글탱글 회? 등을 말했다면 그는 ‘내가 먹어주고 올게!’라고 신이 나서 외쳤겠지만, ‘빵’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아무 말없이 짐만 쌌다.  


아, 한국에 간다면 나는 눈으로 먹는 그 능력을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없는 동안 부지런한 한국 사람들이 새로운 맛의 빵들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 놓았을까. 그러니 다 먹어 보아야지. 눈으로 먹는 능력은 그다음에 사용해도 괜찮을 거야. 하지만 부지런한 한국 사람들은 늘 새로운 맛을 만들 텐데? 그럼 어떡하지? 아, 모르겠다. 미래의 일은 미래에 생각하자. 지금은 저 무화과 케이크나 먹을지 말지 고민하고. 저건 분명 내가 아는 맛이겠지? 하지만 먹어본 지 오래된 맛이기도 하겠지? 게다가 무화가도 한 조각 있잖아? 아, 이렇게 무화과에 대해 떠들면서 눈앞에 있는 무화과 타르트를 먹지 않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는 글로 먹는 능력도 생긴 것 같다. 이렇게 주절주절 떠들고 나니 더 이상 무화과 타르트가 당기지 않는다. 역시 글쓰기의 힘은 위대하다. 


앗, 단체 손님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케이크 진열대 앞에 섰다. 다른 사람이 먹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글로 먹는 능력이 바로 사라진 것 같다. 아, 어쩌지. 저 무화과 타르트는 과연 누구의 입으로 들어갈 것인가. 혹시 내가 오늘 저 무화과 타르트를 먹지 못한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저, 혹시 무화과 타르트 또 언제 만드실 건가요?’ 하지만 답은 뻔하지 않을까.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인데, 정체 모를 저 커튼 뒤의 주방장, 아니 파티시에가 무화과 타르트를 언제 또 구울지는 아무도 모르겠지. 인생이란 그런 것. 

한 번 지나간 무화과 케이크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것. 

그 예측 불가능성의 안타까움으로 눈앞에 있는 무화과 케이크 맛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는 것. 

어쩌면 눈앞의 무화과 타르트를 두고 과감히 돌아서는 것. 

그리고 그렇게 과감하게 돌아서는 나를 조금 더 좋아하는 것. 

혹시 아침부터 무화과 케이크를 먹고 금방 후회하더라도, 나를 좋아하는 마음은 버리지 않는 것. 

쿨하게 돌아서는 나도, 맛있게 먹는 나도, 조금 먹다가 후회하는 나도 다 좋아하는 것. 


역시 중요한 건 무화과 타르트가 아니다. 먹을까 말까 고민하며 월요일 오전 내내 카페에 앉아 마음을 동동거리는 나를 예쁘게 보아주는 것. 그 동동거리는 마음을 이렇게 실로 꿰듯 줄줄이 엮어 늘어놓는 나를 좋아하는 것. 오늘도 맛있게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사실 무화과 타르트의 맛보다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더 좋은지 확인해 보고 싶네? 그런 의미에서 무화과 타르트 한 입? 


앗, 케이크 진열대 앞의 아줌마. 혹시 무화과 타르트 드실 건가요? 그거 말고 레몬 머랭 파이, 다크 초콜릿 치즈케이크, 베이크드 치즈케이크, 고구마 치즈케이크, 망고 생크림 케이크,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 에클레어, 브라우니 등등이 저렇게 많은데 굳이 한 조각 남은 무화과 케이크를? 그건 저에게 양보하시죠? 다행히 그녀는 다른 것들만 바리바리 포장해 빗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공은 나에게 넘어왔다. 


또 한 커플이 들어왔다. 아, 저들은 옷차림만 봐도 분명 한국 사람들이다. 역시 한국어로 대화한다. 여보세요들. 맛있는 무화과 많은 한국에서 오셨으니 무화과 타르트는 제게 양보하시지요? 그들 역시 크루아상만 포장해 나갔다. 역시 공은 또 내게. 


아,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것도 사실 피곤한 일. 누군가 와서 확 먹어버리면 나의 이 고민도 끝이 날 텐데. 하지만 내 삶의 결정을 남에게 맡길 수는 없지. 먹을까 말까는 내가 결정해야지. 하지만 아직도 오전 열 시. 점심 먹고 디저트 먹을 시간이 될 때까지는 꼼짝없이 고민해야 할 판. 


아, 월요일 아침, 무화과 타르트를 향한 이 분주한 내 마음. 이제 그만하자! 너무 많이 떠들었어. 이쯤에서 합죽이가 됩시다! 합! 



사진: UnsplashAnna Kum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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