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주연 Jul 23. 2019

당신이 잠들지 못한 사이에

귀 밝은 베트남 여행


190712 15:05 

베트남의 호치민에서 무이네로 향하는 슬리핑 버스에서 남긴 메모

그리고 덧붙임





당장 일주일 뒤 비행기 표를 산 후 베트남으로 날아왔다. 여행 준비랄 것도 없이 허둥지둥 출발해서 어리둥절한 채로 도착했다. 그만큼 몸도, 마음도 아직 온전히 여행의 두근거림을 실감하지 못한 채였다.


그런데 딱 하나의 신체 기관만이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다른 반응을 보였다.


바로 '귀'였다.


귀가 무척이나 밝아졌다. 그 덕분에 한국의 땅을 날아오르는 순간부터 쉽게 잠들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평소 나는 엄마 말을 빌리자면 '자다 업어가도 모를 아이'였다. 언제 어디서나 잘 자고, 한 번 잠들면 도중에 깨어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호치민을 향하는 비행기에서부터 나는 잠들지 못했다. 


안전벨트 신호등이 켜지는 친절한 소리, 그리고 다시 꺼지는 소리, 화장실을 가기 위해 뒤척이는 사람들의 소리, 작게 속삭이는 '죄송합니다' 소리, 다시 돌아와 반복되는 소리, 잠들지 못한 승객들을 위한 승무원들의 발소리, 뒷 좌석 승객이 자세를 고치는 삐그덕 소리,...

모든 소리들이 내 귀를 놓치지 않고 빠짐없이 들어왔다. 

비행기가 다시 땅을 밟기까지 장장 5시간 내내 눈을 질끈 감아도 막지 못하는 고막으로 모든 잠을 방해받아야 했다.


숙소 도착 후 기절할 것이라 예상했다. 정신은 몽롱했고, 몸은 피로했다. 남의 집 에어컨이라는 명목 하에 적당히 시원한 온도로 맞춰놓은 채 이불을 덮었다. 이불에서는 섬유유연제 냄새가 고스란히 머물고 있었다.


세 시간밖에 잘 수 없는 일정이라 필사적으로 자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또다시 도시의 모든 소리가 내 귀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골목길 강아지들은 지나가는 모든 행인을 경계하느라 짖어댔고, 올 때는 보이지 않았던 법당에서 목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동이 트기 시작했다는 것을 직감하고 '망했다'라는 글자를 마음속에서 소리 내 읽었다. 

옆 건물에서 정체모를 소리가 1분 단위로 고막을 뚫어댔다. 30분쯤 지속됐을 때 깨달았다. 

'닭 소리구나' 

내가 알던 꼬꼬댁, 빡빡빡 소리와는 달랐다. 닭도 짖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무언가에 화가 단단히 나있는 것 같았는데, 문제는 숨 쉬듯 화를 낸다는 것이었다.

잠이 찾아오려는 모든 순간에 닭은 짖어댔다. 감히 잘 생각을 하려는 나에게 화가 났나 싶었다. 

거의 졸음과 울먹임에 함께 젖을 때쯤, 알람을 울리고 말았다. 

"안 돼"라고 나지막이 읊조려보지만 '안 되긴 뭐가 안돼'라며 알람이 또 한 번 울렸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잠을 자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또 잠을 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함이었다.

베트남에서는 유난히 '자야 할 때'가 많다. 이번에는 슬리핑 버스다. 말 그대로 자면서 가는 버스다. 대놓고 자라고 좌석도 눕혀져 있으며 담요와 물도 주고 신발 비닐도 주기 때문에 맨발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아마 나는 베트남에서 잘 수 없는 운명인가 보다. 누군가의 장난질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가 있나?

베트남 사람들은 소음에 무딘 편인 듯하다. 휴대폰 무음 모드, 이어폰 이런 정숙을 위한 문명의 이기를 모두 비웃었다. 뒷 좌석 승객이 틀어놓은 음악이 너무 생생하고 또 한 편으로 신이 나서 헛웃음이 자꾸만 나왔다. 혹시 관광버스나 디스코 버스를 슬리핑 버스로 잘못 알고 탄 건 아닐까 잠시 심각해져 본다. 차라리 케이팝이 듣고 싶은 순간이었다.

버스 바깥 풍경이 시내를 벗어났을 때쯤, 베트남 팝의 흥겨운 비트를 겨우 이겨냈는데 (베트남 비트의 디제이가 잠을 이기지 못하심) 이번에는 버스의 경적 소리가 지속되기 시작했다. 난이도가 높아졌다. 이건 신나지도 않았다. 

참고로 베트남 슬리핑 버스의 경적 소리는 '빵빵'이 아니라 '빠! 빡!!!'이었으며, 음량은 폭죽에 가까웠다.

또한, 위험을 알리기 위한 경고의 목적이 아니라 그냥 차가 지나가면 건네는 인사 정도에 가까운 빈도였다.


내가 졌다. '데이터 없이 시간을 때워야 하므로 메모장을 키는 수밖에'

잠 대신 얻은 글은 얼마나 귀할까. 그리 멋진 글이 나온 것 같지는 않아 조금 억울했다. 글이라도 남아서 다행일까?



그리고 여행이 끝나고 보니 여행 중 쓴 글은 이것 하나였고, 아무래도 간사한 나는 생각했다.

'글이라도 남아서 다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속적인 철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