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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주연 Oct 09. 2019

나만 아는 효도


화장실을 간다. 깨닫는다.

또 그때가 오고야 말았다. 화장실 청소의 날.

독립을 하고, 자취를 하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들 중 하나는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할 때가 굉장히 자주 찾아온다는 것이다. 물때라는 것은 물인 듯 투명망토를 쓰고 있다가도, 어느 날 문득 보면 망토를 벗고 '사실은 나 때야' 하고 나타난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꼬박꼬박 이 때들을 벗겨내야 한다. 방심하면 '때 망토'를 벗고 '사실은 나 곰팡이였어!' 하는 수가 있다. 


어릴 때 엄마가 샤워를 할 때마다 왜 화장실에서 폭풍우 소리가 들렸는지 알게 되었다. 대야에 가득 채운 물로 바닥을 내리 치고, 타일이 뚫리도록 솔질을 해대며 매번 물때에게 겁을 줬던 것이다. 


하지만 화장실 청소는 어쩐지 방 청소보다 번거롭고, 힘이 든다. 피곤하고 귀찮을 땐 물의 자정 능력을 믿어보고 싶고, 물때 정도야 이끼같이 자연적인 것 아니냐며 갑자기 친한 척하고 싶어 진다.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가니 아마 엄마는 자연의 힘을 믿는 쪽으로 결정한 듯싶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화장실의 물때가 안경을 처음 맞췄던 날처럼 훤히 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새파랗게 젊은 나도 허리를 숙였다 폈다 하며 물때를 혹독하게 혼내 주는 일이 힘든데, 삭신이 쑤시는 우리 엄마는 오죽했을까 싶었다.


"여행 가는 것보다 집에서 일하는 게 더 좋아"라는 망언으로 (나에게만) 유명한 우리 엄마가 게을러진 건 아닌 것 같은데 이유가 뭘까. 샤워기가 힘없이 털어내는 물줄기를 맞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새 바닥에 물이 흥건하여 찰랑거렸다.

'유레카!'가 아닌, '수도세!'를 외치며 샤워 호스를 서둘러 잠갔다.

그리고 마음먹었다. 엄마의 이유가 어찌 됐든 그냥 내가 화장실 청소를 해버리자고. 



청소용 세제는 보이지 않았지만, 솔은 있었다. 일한 지 오래돼 게을러 보이긴 했지만, 유일한 청소 도구였다.

바닥은 바디 워시로 닦아내기로 했다. 솔은 워밍업 할 시간도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됐다. 내 목표는 청소가 아니라 타일을 뚫는 것인 양 온 힘을 다했다. 마트 최저가 바디 워시의 꽃 향기가 깨끗함의 향기처럼 느껴져 꽤나 기분이 괜찮았다.

세면대는 바닥보다 난이도가 높았다. 그래서 고상한 바디워시보다는 강렬한 치약을 선택했다. 민트향은 꽃향을 단숨에 제압했다. 난 '민초파'이지만, 당분간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은 안 먹어도 될 것 같았다. 

우리 집 세면대 앞 타일에는 엄마 취향의 커다란 백합 그림의 시트지가 붙어있다. 솔이 그 백합을 거칠게 때릴 때마다 백합은 점차 살아났다. 시멘트 같던 수도꼭지는 이제야 반짝이는 은색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의 메스, 아니 솔로 화장실의 여럿 생명을 살려냈다.



그러고 다음 날, 엄마의 반응을 기다렸다. 할 말 있는 사람처럼 엄마를 지긋이 쳐다도 보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엄마를 눈으로 졸졸 따라다녀도 봤다.

그런데 엄마는 몰랐다. 눈치도 못 챈 듯했다. 도저히 모를 수가 없는 깨끗함인데도, 엄마는 몰랐다. 순간 나는 이걸 생색을 내야 하나 고민했다. 화장실 청소가 대단한 일인 건 아닌데, 칭찬받고 싶은 일이긴 했다.


하지만 그냥 잠자코 있기로 했다. 화장실 물때에 대해 말을 하는 순간, 엄마는 청소에 대한 압박을 느낄지도 모른다. 내가 벗어놓은 옷만 보면 나무꾼처럼 가져가서 빨래하는 엄마니까 말이다. 

엄마에게 집안일은 늘 생색낼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아빠가 빨래를 갤 때만 빨래 개는 일은 아빠 것이라며 대신 생색 내줄 뿐이었다. 엄마의 생색은 내가 좀 내줄 걸 그랬다. 

'그래, 엄마. 빨래 개는 일은 아빠 것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엄마 것이지.'



엄마는 종종 내가 자고 있는 새벽에 방문을 조심히 열어 만세하고 있는 두 팔을 내려 이불속에 넣어 주었었다. 엄마 표현에 의하면 '자다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자는' 내가 가끔씩 툭하고 잠에서 1.5초 정도 깰 때가 있어 알게 된 사실이었다. 매일 딸의 팔을 내려주기 위해 조심스럽게 방 문을 열곤 했다. 나는 엄마의 그 몰래 오는 새벽 방문이 좋았다. 사랑에는 역시 생색이 없어야 더욱 사랑스러워지는 걸까.


앞으로도 본가에 내려갈 때마다 우렁각시처럼 나만 아는 효도를 할 셈이다. 

하지만 난 엄마가 아니라서 언젠가 알아주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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