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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초상

자연의 초상을 사진과 오브제로 담는 브랜드, 카인드오브썸머

by sw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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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사진 작업자이자, 사진 기반 브랜드 ‘카인드오브썸머(KIND OF SUMMER)’를 운영하고 있는 황선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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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Sarah Moon, (우) Sarah Moon - Monette pour COMME DES GARÇONS



Q. 선하님은 '카인드오브썸머'를 통해 자연의 초상을 담은 사진과 오브제를 선보이고 계신데요. 사진이 선하님의 작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사진에 처음 관심 갖게 된 계기부터 묻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저희들을 찍어주셨어요. 그 모습을 보고 자라온 저도 자연스럽게 집에 있는 카메라로 친구들을 찍어주곤 했고요. 사진은 제게 늘 익숙한 존재였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 진로를 결정해야 할 시기에, 우연히 신문에서 패션 포토그래퍼 '사라 문'의 전시 소식을 접하게 됐는데요. 한창 사진에 관심 있었던 저는 직접 전시를 보러 갔고, 그날 본 사라 문의 사진들은 어린 시절의 저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죠. 자기만의 색채가 굉장히 뚜렷했고, 사진이 마치 그림 같았거든요. 그 전시 이후로 저도 언젠가 그런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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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카인드오브썸머 공식 홈페이지



Q. 사진을 찍으면서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 운영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을까요? 특히 '자연'을 주제로 한 브랜드를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어요. 패션 스튜디오나 전시장에서도 일해봤지만 제 성향과는 맞지 않았고요. 답답한 마음에 생각 정리도 할 겸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어요. 사려니 숲을 걸으며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들을 속에서 괜찮은 흐름이 하나 보이더라고요. 한 편의 사진집을 만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래서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고, 그렇게 탄생하게 된 게 바로 카인드오브썸머의 첫 시작, 'FLORESTA' 시리즈예요. 사진집에 수록된 사진들을 엽서와 노트로 만들어 주변 분들께 선물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고, 본격적으로 브랜드를 준비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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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브랜드를 대표하는 이름을 짓는다는 건 정말 깊은 고민이 필요한 일이죠. 선하님은 ‘KIND OF SUMMER’라는 브랜드명을 택하셨는데, 어떤 의미를 담으셨나요?


제 한자 이름이 ‘착할 선(善)’에 ‘여름 하(夏)’예요. 본명을 그대로 쓰긴 부끄러워서, 영어로 의역하듯 '카인드오브썸머'라고 지었어요. 처음엔 입에 잘 붙지 않아 다른 이름으로 바꿔볼까 고민도 했는데, 시간이 꽤 지나버려서 그냥 이대로 쓰게 됐죠. 지금은 제3의 자아 같은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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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카인드오브썸머 공식 홈페이지



Q. 선하님은 주로 자연의 모습을 담은 작업에 ‘자연 초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계시죠. 보통 인물에 쓰이는 ‘초상’이라는 단어를 자연에 붙인 이유와, 어떤 의미를 담으셨는지 궁금해요.


처음엔 그냥 눈에 들어오는 대로 사진을 찍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연이 마치 주인공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괜히 마음에 걸리거나 자꾸 눈에 밟히는 것들을 찍다 보니, 인물 사진을 ‘초상’ 사진이라 부르듯 자연은 왜 ‘초상’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은 자연을 하나의 주체로 바라보는 그 시선이 제 작업이 핵심이 되었어요.



출처: 카인드오브썸머 공식 홈페이지



Q. 선하님께서는 주로 숲 속 깊은 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듯한 짙은 자연의 초상들을 자주 담으시는 것 같아요. 다양한 자연의 모습 중에서도 특히 이런 장면들을 담으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처음부터 숲에 관심 있었던 건 아니에요. 인생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에서 우연히 숲에 가게 되었는데, 오롯이 저만의 속도로 걸을 수 있는 그 공간이 너무 좋았어요. 그 이후로도 꾸준히 사려니숲을 찾게 되었고, 다양한 계절의 숲을 기록하고 있어요.



Q. 선하님의 자연 초상을 보고 있으면, 무심코 스쳐 지나간 숲 속 풍경들이 새삼 아름답게 느껴지곤 해요. 선하님의 애정 어린 시선이 담겨 있어 더욱 그런 거겠지요. 선하님은 주로 자연을 기록할 때 특별히 어떤 모습을 담으려고 하시는 것 같나요? 어떤 순간에 셔터를 누르시는지 궁금해요.


제 작업의 시작은 '눈에 밟히는 것들'이에요. 지나치지 못하고, 자꾸 시선이 머무는 대상을 찍게 돼요. 무시하고 지나가다가도, 저게 왜 자꾸 시선을 빼앗지라는 생각이 들면 다시 돌아와서 보게 되죠. 그 대상을 중심으로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결국 사진으로 남기게 되고요.



출처: 카인드오브썸머 공식 홈페이지



Q. 다양한 자연의 초상을 기록하기 위해 여러 장소를 직접 찾아다니는 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지금껏 다녀온 곳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장소는 어느 곳인가요?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장면을 마주하셨는지도 궁금해요.


치앙마이 국립공원이 정말 좋았어요. 한국의 식물은 곧고 직선적인 느낌이 있다면, 동남아는 곡선이 많고 되게 자유로운 느낌이 있어요. 울창한 숲 속에서 하나하나 개성 있게 살아 있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죠.





Q.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지독한 관찰자’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어요. 스스로를 그렇게 표현하신 이유와, 요즘 유독 오랜 시간 들여다보고 있는 대상이나 장면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려요.


아마 니콘 인터뷰에서 그런 표현을 썼을 거예요. 저는 사람도 오래 관찰하고, 그 사람에게 질문이 생겼을 때 만남을 요청하는 편인거든요. 최근엔 홍제천을 자주 걸었는데, 매일 같은 길을 걷다 보니 돌과 식물 하나하나가 눈에 계속 밟히더라고요. 물가에 있는 돌이 어떻게 생겼는지, 폭설로 꺾였던 식물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계속 관찰하게 되고요. 오래 본 친구에게서도 새로운 면을 보게 되듯, 자연도 그래요. 계속 관찰하다 보면 새로운 게 자꾸만 보이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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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문구와 사진 기반의 브랜드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오래 사랑받는 브랜드는 '자기다움'을 갖춰야 한다고들 말하죠. 자연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수많은 사진작가들과 브랜드가 있을 수 있지만, ‘카인드오브썸머’만의 차별점, 카오썸다운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연을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자연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풍경을 감상하는 건 익숙한 일이지만, 자연을 하나의 ‘존재’로 인식하고 바라보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카인드오브썸머는 그런 점에서 자연을 대상이 아닌 주체로 바라보고 있어요. 자연의 초상이라는 표현도 그런 의미에서 시작됐고요.


그리고 저는 본질적으로 사진 작업자이고, 촬영한 작업물들이 하나의 시리즈가 되어 다양한 오브제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사진이 단순히 수단이 아니라 브랜드의 중심이자 출발점이라는 점도 카인드오브썸머의 차별점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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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브랜드를 벌써 8년 넘게 운영하고 계신데요.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더라도 때론 지치거나 방향을 잃게 되기 마련이잖아요. 선하님께서 브랜드를 오랫동안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사실 이 일만 해온 건 아니에요. 늘 다른 일들과 병행하면서 지내왔죠.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늘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혼자 계속 작업하다 보면 어딘가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자극과 환기를 줄 수 있는 요소들을 계속 찾아가며 일하고 있어요.


브랜드도 처음엔 취미처럼 시작했어요. 그런데 점점 규모가 커지고, 저를 지켜봐 주시는 분들이 생기면서 쉽게 그만둘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무엇보다 물리적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쉽게 사라지는 존재로 남고 싶지 않았어요. 언젠가 끝내더라도 후회나 미련이 남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데까지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졌던 것 같아요.


힘들긴 해도 지치진 않았어요. 저는 계단식 성장을 하는 사람이라, 한 번에 확 오르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사람마다 속도는 다르고, 저는 그걸 비교적 일찍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나에겐 요행이 없고, 꾸준함이 길이다'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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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문득 선하님의 꿈이 궁금해졌어요. 현재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예전에는 카메라 회사와의 협업이나, 큰 전시를 해보는 게 꿈이었어요. 그런데 작년에 그런 꿈들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나니, 문득 ‘그다음은 뭐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팀'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오랫동안 혼자 일해왔는데,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경험이 필요하다 느끼고 있거든요. 제 작업이 늘 신선하고 새롭기를 바라요.



Q.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좌절했던 순간이 분명 있으셨을 텐데, 이를 어떻게 극복하셨는지도 궁금해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걸 묵묵히 해왔던 것 같아요. 정말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던 시기에도, 버티고 나니 기회는 오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사람인 걸 잘 알아요. 자아실현을 꼭 해야만 하는 사람이고, 이 일을 그만두고 회사에 들어가도 결국 새로운 꿈을 꿨을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힘들어도 계속하게 되고, 지금 겪는 힘듦이 견뎌지니까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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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연을 오랜 시간 관찰하고 기록하다 보면 삶 속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찾아올 것 같아요. 선하님이 자연으로부터 배운 것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지 궁금해요.


우리는 종종 '나는 지금 뭘 이루고 있지?', '나는 잘 성장하고 있나?' 하는 불안에 휩싸일 때가 많잖아요. 그런데 식물을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어요. 식물도 매일 그대로인 것 같고, 제자리걸음 하는 것 같다가도, 어느 날 새순이 나 있거나 잎이 피어있는 걸 발견하거든요.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도 눈에 보이지 않게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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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의 카인드오브썸머는 어떤 브랜드가 되길 바라나요? 또한 선하님의 작업이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길 바라시는지 궁금해요.


'마음의 여백'을 줄 수 있는 브랜드요. 가끔 어떤 공간에 가면 이유 없이 마음 편해지고 가벼워지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카인드오브썸머도 그런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어떤 분은 제 엽서를 책상 앞에 붙여두면, 일하는 중간에 멍하니 바라보게 된대요. 그 짧은 순간, 스위치를 껐다 켜는 것처럼 환기되는 느낌이 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카인드오브썸머는 '시간을 쌓아가는 브랜드'에요. 많은 분들이 카인드오브썸머의 단편적인 모습만 볼 때가 많은데, 작업물들의 서사를 알면 더 흥미롭게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 저와 브랜드의 성장 스토리,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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