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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짓는 사람 Aug 03. 2020

관점을 바꾸는 책임감 있는 사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남자 주인공의 안티가 되다

내 최애 영화 중의 하나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이다. 

스물 초반에 보았던 이 영화는 내용도, 영상의 감각도, 주인공들도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영화였다. 

오늘 아주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보았다. 분명 아름다운 영화였고, 여자 주인공을 비롯해 남자 주인공도 너무나 사랑스러웠는데, 왜인지 남자 주인공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가 다르게 보였다. 


츠네오는 책을 많이 읽어 해박한 조제에게 끌렸을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의 남자 주인공은 좋아하는 여자 카나에(우에노 주리)가 있으면서 또 조제에게 끌려서 마음을 줘버리는 한없이 사랑에 쉽게 빠지는 남자다. 심지어 섹스파트너까지 있다. 

(예전엔 왜 이렇게 문어 발적으로 사랑을 하는 남자를 불편하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츠네오는 무슨 복인지 학교에서 인기 많은 카나에와도 좋은 감정을 주고받는다.


다리가 불편한 조제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츠네오는 조제를 찾아간다. 하지만 조제는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며 처음에는 츠네오를 밀쳐내려 한다. 

조제로부터 가버리라는 말을 듣자마자 츠네오는 냉큼 뒤돌아서 가려고 신발을 신는다. 이 장면에서 조제를 감당할 수 없으면 조제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할머니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처음 조제를 만난 날, 할머니를 도와 유모차를 밀고 있는 츠네오


예전에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츠네오는 다리가 불편한 조제를 사랑하고 바깥세상으로 꺼내 준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세상 비겁하고 지질한 캐릭터였다. 

게다가 정조관념도 별로 없는, 자신에게 조금의 관심을 주는 여자라면 바로 일(?)을 내버리는 그런 호색한 말이다. 조제에게 관심과 애정이 있었지만, 결국엔 책임지지 않는 딱 그만큼의 관계를 가졌던 인물. 


과연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은 무엇을 말해줄까. 

젊음, 싱그러움, 처음, 풋풋함, 아름다움, 호기심 그런 것들을 아름답게 포장한, 영화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까. 

둘이 떠난 여행에서 찍은 사진으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영화 속 장면이었다.


이 영화가 30대에 들어서 불편하게 느껴지고, 남자 주인공을 다시 보게 된 이유는 이성과의 관계에서 책임을 지어야 하는 존재가 되고 난 뒤부터다. 

'결혼'은 정말 슬프게도 '연애의 종말'이다. 결혼하고 배우자와 진짜 연애를 시작하게 되는 축복이 생길 수도 있지만, 어쨌든 연인과의 연애는 끝이고 그걸 반드시 끝내야 하는 책임이 따른다.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약속'하고 '책임'을 져야 하며, 자유연애에서 주지 못하는 또 다른 사랑을 키워가는 재미를 만들어야 한다. 


어쨌든 영화를 영화로써 단순히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 사라졌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그리고 츠네오가 불편해지고, 싫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조제에게서 도망치고 카나에의 곁에서 우는 츠네오를 어찌할까.


P.s 하지만 이 영화는 여전히 내 최애 영화다. 

용기 있게 사랑하고, 그 사랑이 떠나갔을 때도 묵묵히 일상을 살아내는 강인한 캐릭터 조제가 있기 때문이다. 


조제는 명석하고 매력적이며 사랑스러운 캐릭터로서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요소다.
츠네오가 떠나가도 평소대로 조제는 생선을 구워 밥을 먹고 원래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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