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서 E의 예쁜 집을 보았다. 인터뷰를 집에서 해도 되겠냐고 요청하자 ‘그러자’라고 E는 쿨하게 답했다. 인터뷰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느냐고 물었을 때, E는 JTBC 프로그램 <한끼줍쇼>를 즐겨 보는데, 거기서 남들은 뭐 먹고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그 집을 살펴보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한끼줍쇼>에서 강호동과 이경규는 숟가락 하나를 들고 밥 한 끼 같이하자면서 무작정 아무 곳이나 초인종을 누른다. 밥 먹는 것은 ‘인심 좋고, TV에 나오는 것에 거리낌 없으며, 아직 저녁을 먹지 않은’ 가정에서 성사가 된다.
날이 적당한 어느 토요일 주말에 나는 E에게 밥 대신 ‘인터뷰 줍쇼’ 했고, ‘인심 좋고, 인터뷰하는 것에 거리낌 없으며, 아직 점심을 먹지 않은’ E와 그녀의 남편과 함께 맛있는 점심을 했고,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한, 그런 인터뷰를 했던 것 같다.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 성경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성경은 새로 만들지 않는 책 아니에요?
- 아니에요. 성경도 신제품이 나오면 아예 ‘0’부터 시작해요. 다 쓰지 않으니까, 본문은 똑같이 있어도 판을 다시 만들고 그에 따라 편집이 아예 새롭게 시작돼요. 판형이 다르고, 글씨 크기도 다르고, 자간도 다르고, 하니까 페이지도 바뀌고 해설이나 각주 등의 위치 등도 바뀌거든요. 새롭게 책 하나를 다시 만드는 것과 같아요. 근데 이 성경의 분량이 엄청나기 때문에 쉽지 않죠. 그런데 지금 회사 사수가 육아휴직 중이라서 혼자서 이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 어쩔 때는 중공군 같아요. 쳐도쳐도 끝이 없어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66권을 언제 다하지?’ 하면서 하고 있어요.
그렇게 판 틀어진 것을 잡고, 내용의 오류가 있는 것을 잡는 건가요? 판은 어떻게 짜나요?
- 내용을 흘리는 작업은 조판하시는 분이 하세요. 그렇게 작업이 된 상태에서 원래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해설이 있는데, 그걸 선별해서 넣고, 프린트를 다 뽑아서 체제를 보는 거예요. 페이지 번호를 검수하고, 위에 창세기 3장이라고 쓰여 있는 하시라가 맞게 들어갔는지 하나씩 넘겨가면서 봐야 하죠. 본문도 어디 빠진 게 없는지 꼼꼼히 봐요. 이렇게 교정을 보고 나서 인쇄를 넘기는 프로세스에요.
텍스트가 변하지 않으니 그렇게 해설 부분, 페이지 번호, 하시라를 확인하고 자리 잡는 것을 하는 거군요.
- 전체적인 틀을 계속 잡아야 해요. 성경은 책의 특성상 정말 틀리면 난리나거든요. 제작 단가도 일반 책과 달리 높기 때문에 조심해야 해요. 부수도 많이 찍는 편이니까요.
얼마나 찍나요?
- 조금 찍으면 3천 부, 보통 1~2만 부 찍어요. 정가가 한 3만 원이고, 케이스도 하고 그러니까 너무 많이 찍어서 두지는 않지만 그래도 많은 편이죠.
성경은 가지고 있으면 10년도 쓰고, 평생 쓰는 책으로 생각해서 굉장히 오래 쓰는데, 잘 팔리는지 궁금해요.
- 저조차도 성경을 사지 않아서 ‘사람들이 과연 살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보통 선물용으로 많이 팔리는 것 같아요. 성경은 묵상을 하거나 자주 읽고 줄도 치면서 애착을 주는 책이니, 많이 낡을 수가 있어요. 그럼에도 새 것으로 바꾸지 않죠. 오히려 싫어해요. 성경은 그 ‘낡음’이 매력인 것 같아요. 대신 겉에 껍데기(표지)가 헤어져서 너무 낡으면 새로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럴 때는 우리 회사(본사)에 전화하면 제작부에서 한 권당 1~2만 원을 받고 표지만 갈아줘요.
좋은 서비스 같네요.
- 어떤 업체는 디자이너가 가죽표지로 아주 예쁘게 버클까지 바꿔주는 서비스도 하더라고요. 한 5만 원 정도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떤 연령층에서 많이 팔리나요? 어린이 성경책 편집은 성인 성경책과 다른가요?
- 어린이 성경책이 많이 팔려요. 교회학교를 하는 교회에서 단체로 구입해요. 편집은 해설이 다른 점 정도랄까요. 삽화가 들어가고요. 본문은 같아요.
주로 마감은 언제에요?
- 마감은 따로 없어요. 책의 특성상 마감일을 정할 수 없어요.
일 년에 몇 권정도 만드나요?
- 우리는 신간 비율은 많지 않고, 중판(재판)을 주로 해요. 비율로 따지면 신간 8, 중판 2 정도 돼요. 어떤 브랜드의 성경이 다 팔리면, 영업부에서 “이 성경책 재고가 얼마 없으니 다시 찍어주세요” 하면 중판을 찍는데, 그때 수정을 하죠. 예를 들어 표지만 바꾼다든지 그러면 이게 신간처럼 분류가 되어서 신간으로 관리를 해요. 중판을 찍어도 표지나 내지 모두 바꾸지 않기도 하기 때문에 표지 갈이 신간이 되는 거죠. 표지, 면지 갈아서, 재고 소진에 따라 제작되니 마감일을 따로 정할 수 없는 거예요. 종수는 올해 중판 합쳐서 수십 종정도 잡혀 있어요.
성경만 수십 종이요? 성경책은 하나 아닌가요?
- 브랜드 명에 따라 가지를 치면 많아져요. 우리 회사의 ‘굿데이’가 메인 브랜드인데, 굿데이에서 변형을 준 뉴굿데이, 올뉴굿데이도 있어요. 올뉴굿데이에서 사이즈가 4가지인데, 초미니, 미니, 소, 중 이렇게 있다고 치면, 초미니에서 색상 4가지가 있고, 미니에서도 4가지가 있으면 한 브랜드에서만 총 16가지가 되죠. 그러면 굿데이 브랜드의 성경은 총 48개 종이 되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하면 수십 종이 가능해요.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성경은 거의 H가 만드는 것 같네요. 지금 회사가 기독교에서는 전통과 역사가 있는 회사로 알고 있어요.
- 전쟁 직후 1953년에 미국인 선교사님들이 만든 회사에요. 근무 시간도 미국 기준으로 운영되어서 애초부터 주 5일제였어요. 지금이야 주 5일제가 당연한 거지만, 50~90년대만 해도 그렇지 않아서 근무 일수가 메리트 있는 회사였죠. 근무 시간도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이에요. 중간에 10시랑 3시에 15분씩 쉬는 시간이 있고요. 예전엔 모여서 커피를 마시거나 했다는데, 지금은 각자 쉬고 있어요.
*생명의말씀사
1953년 5월, 복음주의동맹선교회 소속 가필드(William. L. Garfield)가 문서선교의 일환으로 기독교 신앙서적을 출간하면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예수를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와 같은 소책자나 전도지를 발간하는 수준이었으나, 1962년 문공부에 출판업으로 정식 등록하면서 좀 더 체계적인 출판 작업을 시작하였다. 1996년 법인 상호를 ‘(재)한국 복음주의 동맹선교회’로부터 ‘(재)TEAM(The Evangelical Alliance Mission)선교회 생명의말씀사’로 변경하였다.
지금까지 총 3천여 종의 기독교 서적을 발간함으로써 기독교 신앙과 문화의 확산에 기여하였고, 한국 기독교에 대한 학문적 분석과 성찰을 위한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랑 나는 단행본 출판사에서 만난 사이잖아요. 혹시 단행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요?
- 그렇게 생각하는 시기가 지난 것 같아요. 처음엔 그랬었는데, 지금은 그냥 고요한 상태가 좋아요. 기획하고, 새로운 저자를 발굴하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성격상 지금의 일이 저하고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아요.
퇴근하고 뭐해요? 주말 같을 때.
- 퇴근하고 집에 오면 쉬어요. 좋아하는 웹툰을 보거나 티비 프로그램을 보면서요. 결혼하고 나서는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기보다 남편이랑 같이 쉬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결혼한 지 4년인데, 사실 애기가 안 생기고 있어서 요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예요. 저도 모르게 위축되는 거 같아요. 만약 친구가 결혼해서 애기가 있는 상태라면, 더 그래요. 결혼해서 이 문제로 힘들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요.
저는 요새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혼자여도 재미있고, 신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데, 정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누군가와 함께 삶을 가꾸고 싶다’라는 마음이 불쑥불쑥 이성을 뚫고 나와요. 그럴 때 누군가 옆에 없다는 사실이 정말 외로워요. E도 정말 결혼하고 싶어 했었잖아요. 결혼하고 어때요?
- 안정감, 든든함이 있어요. 하지만 남편이라고 해서 나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내 속에 들어갔다 온 것처럼 이해할 순 없어요. 정말 깊은 나의 마음속 감정은 남편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죠. 타인이 나를 이해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남편이 그러면 더 홀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죠. 그래도 결혼은 좋은 것 같아요.
남편은 어떻게 만났어요?
- 2009년에 같은 교회에서 만나서 4년 정도 연애하다가 결혼했어요. 그런데 남편이 3년 정도 해외 출장을 가서 같이 있었던 시간은 1년 정도예요.
어디가 마음에 들었어요?
- 스웨덴에서 2년 정도 있었다가 교회에 왔는데, 처음 본 사람이 있는 거예요. 이상하게 눈길이 계속 갔어요. 분명 처음 본 사람인데, 오랫동안 본 사람 같았고, 친근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남편도 똑같은 기분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를 수소문하고 다녔대요. 건너건너 ‘쟤가 너한테 호감이 있다더라’라는 얘기를 들어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교회에서 목사님이 <우리 연애할까요?>라는 청년들의 결혼을 장려하는 프로그램을 짜신 거예요. 그 소그룹 모임에 지금의 남편이 왔고, 자연스럽게 그 모임을 통해서 가까워지게 되었죠.
베란다 공간이 좋네요. 카페 같은 느낌이에요.
- 날씨 좋을 때는 앉아서 차도 마시고 컴퓨터도 하고 그래요. 카페 느낌으로 하느라 책장도 바깥으로 내놓았는데, 책등 색이 변했네요.
베란다 문이 특이하네요.
- 인테리어 중에서 가장 돈을 많이 들인 부분이에요. 베란다 확장할 때, 보통 샤시로 하는데, 문을 폴딩형으로 달았어요. 소재가 나무라서 조금 더 비싸게 주고 했어요. 저 문이 없을 때 차가운 공기가 안으로 너무 잘 들어왔었거든요. 하고 나니까 공간도 꾸며주고 보온성도 좋아서 만족스러워요.
참, 스웨덴에서 2년 정도 있었다고 했는데, 거기서는 어떤 생활을 했어요?
- 전공이 스웨덴어였어요. 아빠가 전공을 했으니 유학해서 경험해보고 오라고 얘기하셨죠. 통로를 찾다가, 기독교 단체인 예수전도단이 스웨덴에서 DTS(해외 선교하기 위해 훈련하는 프로그램)를 하고 있는 걸 발견했어요. 그래서 거기서 훈련 받으면서 유학을 했어요.
스웨덴 이민자를 위한 학교를 다니면서 어학을 공부했죠. 그런데 그때는 유학을 통해서 확고하게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못했어요. 25살에 가서 27살에 한국에 들어왔는데, 20대 중반이 되도록 부모님한테 빚을 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뭔가 확고하게 스웨덴에서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면 거기에서 계속 살았을 것 같아요. 그때 조금 더 성숙했다면 알바도 하고 싶은 것을 찾으려 더 노력했을 것 같아요.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 낭비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스웨덴에 선교라니,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 예전에는 청교도 신앙이 북유럽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개신교를 믿는 사람이 적어요. 그나마도 나이든 사람들뿐이에요. 역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북유럽에서도 선교사나 선교활동이 이뤄지고 있죠.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 사람들이 배부르고 등 따시면 (웃음) 신을 찾지 않는 거 같아요. 부유해지면서 신을 찾지 않아도 잘살 수 있고, 오히려 개신교는 하지 말라는 것만 많으니 그만두기 십상이죠. 기독교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이라, 전도를 하면 “좋죠.”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좋으면 너나 믿으세요.’라는 느낌으로 웃어요. ‘좋은 말이지만 나는 안 믿을 거니 터치하지 마라.’이란 마인드죠. 더 어려운 상황이죠.
어디 지역에 위치해 있어요?
- 융실레(Ljungskile)라는 아주 작은 도시에서 더 작은 마을에 있어요. 예떼보리(=고덴버그Gothenburg)이라는 두 번째로 큰 도시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에요. 공기도 자연도 너무 좋은 곳이었어요.
스웨덴은 공기가 정말 좋았겠어요.
- 정말 좋았어요. 완전 시골이여서 집만 있고, 달이 정말 크게 떠요. 별은 쏟아질 것처럼 있고요. 스웨덴 애들은 길가다 별이 있으면 바로 길에 드러누워요. 나무도 잘 타고 올라가요. 집 옆의 계곡에도 다이빙하고. 자연이 정말 좋은 나라예요. 제가 있던 곳이 시골이여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요.
그렇게 한국에 와서, 기독교 출판사에 들어간 거예요?
- 돌아와서 1년 동안 공무원 준비를 했어요. 시험을 보러 갔는데, 작은 책상에 머리를 상투 튼 커다란 몸집의 아저씨가 자기 몸을 구겨 넣고 시험을 보려고 앉아 있더라고요. 개성이 강해 보였는데, 그런 사람도 공무원이 되고자 앉아 있고, 적성이 다 다른 사람들이 한 교실에 모여 공무원이 되겠다고 시험을 치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시험에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때 그 교실에서 그 느낌 때문에 다시 시험 볼 생각을 하지 않고, 공무원이 되는 걸 포기했어요. 그때 나이가 28살인가 29살이었는데, 남들에 비해 취업시기가 늦은 나이였죠.
그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20대 후반 나이를 아침 7시로 표현했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어 기독교 출판사에 지원을 했죠. 그리고 스웨덴어학과로 편입하기 전에 전공이 문예창작과였어요. 글을 쓰고 싶고, 좋아했지만 재주는 없고 책은 좋아하니 ‘아, 나는 편집자가 되면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출판사에서 일하려고 지원했죠. 분야는 제 종교와 관련 있는 곳으로요. 신입이지만 이러한 경험이 있고, 이러한 각오가 있다고 진지하게 어필했더니 뽑혔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다른 분야 출판사는 생각 안 해봤어요?
- 분야는 나와 딱 맞아요. 일반 출판물이었으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살아온 환경과 관심사가 맞기 때문에 저는 지금 업계 분위기와 만드는 책 분야가 좋아요.
저는 처음에 일을 시작한 계기가, 성경이 없다면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문서/글의 힘이 정말 크기 때문에, 제가 믿는 신을 계속 증명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나 처음 시작한 계기가 어쨌든 그 업계에서 많은 실망을 했고, 상처만 남았어요. 자본주의 앞에서 무릎 꿇으면 신의 존엄성은 훨씬 쉽게, 추하게 망가지는 것 같아요.
- 저도 그런 생각이었으나 오히려 그 회사에서 환상을 깬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돈이 있는 곳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교회에서 직분이 있는 사람들도 회사에서는 직급으로 움직이는 거잖아요.
시간이 빠르네요. 우리가 거기서 만난 게 엊그제인 것 같은데, 어느새 7년이 지났어요.
- 회사 갔다가 집에 오고 일과가 반복되니까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아요. 요새는 날짜 개념이 사라졌어요.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고 그래요.
우리 30대 맞이하고 서로 일하느라 바빠서 연락을 자주 못했던 것 같아요. H가 결혼하고 나서 더 그랬던 것 같고. 30대, 어떻게 보내고 있어요?
- 지금 30대 중반을 보내고 있는데, 작년에 원래 이민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이를 만들고 나가고 싶어서 잠시 미뤄둔 상태예요. 결혼한 지 4년이 지났는데, 아이가 안 생겨서 난임치료를 받고 있거든요. 아이를 낳은 뒤에 캐나다 어딘가로 이민을 갈 예정이에요. 제 40대는 한국이 아니라 해외에서 보내고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