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도시 Zagreb
여행자에게는 여러 가지의 선택권이 있다. 숙소의 경우, 게스트하우스냐 호텔이냐. 교통의 경우, 렌터카냐 대중교통이냐. 뭐 여행하면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생각보다 자주 오는데, 가난한 학생인 내 경우에는 보통 답이 정해져 있다. 어느 쪽이 돈이 덜 드느냐. 그래서 나는 잠은 항상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고, 이동할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자그레브에서도 그랬다. 내가 자그레브에 도착한 건 오후 4시쯤, 정말 애매한 시간대이다. 브뤼셀에서 6시간 대기를 하고 어렵게 도착했다. 원래 계획은 브뤼셀에서 시간 여유를 두고 잠시 시내로 나가서 유명한 벨기에 와플도 먹어보고 주변도 한번 둘러보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오는 겄이였는데, 내가 여행하기 정확히 한 달 전, 벨기에 브뤼셀 공항에서 테러가 일어났다. 그 때문인지 브뤼셀 공항의 검문은 정말 꼼꼼하였고 또 오래 걸렸다. 테러 때문에 벨기에까지 와서 공항에만 있어야 한다는 게 조금 화가 났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절차이기도 했다. 테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다쳤다. 이런 테러는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
자그레브 공항에 도착을 해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마침 또 일요일이라 음식점들은 대부분 닫혀있었고, 시내도 굉장히 한산했다. 그래도 나는 당장 내일 아침 다른 도시로 이동을 해야 했기에 시내 곳곳을 돌아 다니기로 했다. 먼저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에 가서 짐을 두고 시내로 나왔다.
이거 기분 좋은걸, 부자가 된 느낌이야.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환전. 유로를 크로아티아 화폐인 쿠나로 환전하였다. 200유로가 1400쿠나로 바뀌었다. 숫자가 커지니 같은 가치인데도 더 큰 돈이 된 것 같았다.
천천히 둘러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준 지도를 보고 자그레브 대성당을 찾아갔다. 관광 지역이 아닌 자그레브는 자그레브 대성당과 성 마르크 성당을 빼고는 별로 볼게 없다. 언덕을 올라 성당을 찾아냈다. 그런데 이런... 성당 탑 중 하나가 공사 중이다. 얼마 전 시카고에 갔을 때도 리글리필드가 공사 중이더니, 몇 안 되는 자그레브의 볼거리가 공사 중이다. "그래도 어쩌겠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걸..."이라고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물론 성당 내부도 정말 아름다웠지만, 더 놀라웠던 건 한국인 관광객이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들고 한국어로 기도를 장면이었다. 물론 그 상황이 이해는 간다. 그런 멋진 성당에서의 기도는 누구든지 꼭 한번 해보고 싶을 것이다. 그래도 난 정말 놀랐다. 밖에 나와 보니, 아까는 성당에 눈이 팔려 보지 못한 관광객들이 보였다. 조금 과장을 해서 아마 그 중 90%가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었을 것이다.
놀라움을 뒤로하고 이번엔 성 마르크 성당에 찾아갔다. 상당히 독특한 지붕을 가진 성 마르크 성당은 마치 장난감으로 보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오전에 행사를 진행했는지, 구조물들이 입구를 가로막아 들어가 볼 수 없었다.
내가 여행을 꿈꾸며 계획할 때의 자그레브는 이러지 않았는데... 시간도 애매한 시간대에 도착해서 구경도 제대로 못해보고, 하루 종일 굶고 다녔으며, 볼 것도 즐길 것도 딱히 없었다. 자그레브 대성당은 공사 중이고, 성 마르크 성당은 못 들어가고, 내가 생각했던 자그레브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래도 여행을 이렇게 액땜으로 시작했으니 더 나쁜 일은 안 일어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