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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빛 Jan 02. 2018

사라지는 것들

2018년 1월 2일

집 앞 우체국이 문을 닫는단다. 12월 초 번역을 마무리하고 원서를 돌려보내려 집 앞 우체국에 들렀다가 들은 소식이었다. 어떤 할아버지가 지나가다 붙어있는 플래카드를 보고 들어왔다며 묻는다. 문을 닫는 이유가 있냐고. 그러자 특별한 이유는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자 그 할아버지가 인사를 전했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개인적으로는 집 앞에 있는 우체국이 사라져 조금 불편해졌다. 올해부터는 우체국에 갈 일이 있으면 버스 한 정거장 거리를 걸어가거나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버스를 탈 거면 차라리 택배 아저씨를 불러서 보내는 편이 낫겠다.


사실 재건축을 앞둔 이 동네에서 무언가 하나둘 사라지는 건 그다지 이상한 광경은 아니다. 작년 봄 미세먼지가 걷히고 오랜만에 하늘이 청청한 날, 오래되어 낡을 대로 낡은 이 아파트가 뭐가 그리 예뻐 보였는지 사진을 찍어대던 그때도 조금은 그런 마음이 있었다. 이 풍경을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없겠구나. 가끔 생각한다. 동네 상가에 오랫동안 자리 잡았던 치킨집, 떡볶이집, 참치 횟집은 이주가 시작되면 어디로 갈까. 이 맛이 그리울 땐 어디로 가야 할까. 


가끔 저녁에 남편과 손을 잡고 산책 삼아 동네 한 바퀴를 돈다. 이 동네에서 자란 남편은 추억이 서린 곳을 지날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내가 공을 던졌는데, 저 집 유리창에 맞아 다 깨진 적이 있었어." "형이랑 음식물 쓰레기 버린다고 차 보닛 위에 쓰레기봉투를 올려놓고 살살 몰아서 쓰레기장까지 갔다니까." "어렸을 땐 이 슈퍼에서 맨날 아이스크림 사 먹고 그랬는데. 아직도 그대로네." 이곳이 다 허물어지고 나면 이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일도 없겠지. 그리고 우리 둘이 이 동네에서 지내며 만들었던 기억을 추억할 일도 없겠지.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문득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해 두기로 했다. 사라지는 것들은 우체국처럼 내가 가끔 찾아가던 곳일 수도, 집에서 잘 쓰다가 존재가치를 잃어 버려지는 것일 수도, 아주 평범한 날 느꼈던 흘러가는 감정일 수도, 새롭게 곱씹어보는 단어의 의미일 수도 있다. 아마 지나간 사진을 꺼내 한 해를 추억하듯 지나간 글을 꺼내 사라지는 것들을 되새겨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그때 그게 뭐였지, 하며 다시 들춰보기도 하는 그런 저장 공간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이곳을 채워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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