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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빛 Feb 28. 2018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

2018년 2월 28일 (작년 이맘때를 기억하며)

밀린 일을 시작하려다 머리가 복잡해 음악을 틀었다. 그러다 1년 전에 이 음악에 관한 글을 썼던 게 떠올라 다시 찾아봤다. 그후 매일은 아니라도 집중하고 싶을 때마다 이 음악을 의식처럼 틀었다. 묘한 기운이 서려 있는 음악이다. 




취미란에 음악감상이라고 쓰는 사람들을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 일부는 진짜일 수 있지만, 딱히 쓸 게 없어서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나는 여태까지 음악감상을 취미로 적어본 적이 없다. 괜히 적었다가 음악 관련 질문이 들어오면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할 상황이 두려워서. 그 정도로 음악에 관심이 없지만, 꽂힌 음악이 하나 생기면 그때부터는 줄곧 그 음악이나 그 음악가의 음악만 반복 재생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어렸을 땐 자우림 앨범을 그렇게 들었고, 대학생 땐 티스퀘어에 꽂혔다가 직장인이 되면서 프리템포, 지금은 요한 요한슨. 늘 그랬지만 평소에 음악을 즐겨듣지 않는 편이라 꽂히는 음악과 만나게 되는 계기는 대부분 우연에 의한 것. 우연이 필연이 되기까지 나는 같은 음악을 수십 번 재생한다. 


음악을 잘 듣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음악을 틀어놓으면 자꾸 딴짓하게 되는 거다. 어느새 음악은 뒷전이고 딴짓에 집중하고 있었으니. 그래서 나에겐 눈이 심심하지 않게 해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럼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음악을 들으면 되지 않나. 화이트 노이즈라고도 하는, 약간의 소음이 있을 때 집중이 더 잘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소리 하나에도 신경이 쓰여 집중이 분산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내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한 시간을 좋아한다. 음악을 틀어놓고 일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그러고 있다면 제대로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거다.     


엄청난 양의 일을 앞에 두고 가지치기하듯 하나씩 쳐내던 중이었다. 같이 일하던 친구와 업무상 통화를 끝내자, 친구가 카톡으로 유튜브 링크를 보내왔다. Johann Johannsson – Flight From The City. “이거 들으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일해.” 다급하게 일을 쳐내느라 뒷목에 걸려있는 긴장의 끈이 팽팽해지다 못해 곧 끊어지려 할 때 별생각 없이 틀었다.  


반복되는 피아노 멜로디가 부산한 마음에 붕 떠 있는 내 머리를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생각 속 오돌토돌한 부분을 살살 긁어내며 깨끗하게 정리한다. 주 멜로디는 계속 반복되지만, 함께 깔리는 다른 음이 계속해서 변주되고 있었다. 멜로디를 강조하며 등장하는 느낌을 주다가, 현악기가 낮은음을 내며 화음을 만든다. 바이올린이 높은음을 하나 더 얹으면서 화려한 음색으로 멜로디를 이어가더니 현악 3중주쯤 될 것 같이 풍성하게 확장되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종을 치듯 울리며 똑똑 끊기는 소리가 이내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합하며 다시 현실로 돌아올 준비를 한다. 울리는 소리는 사라지고 피아노 독주와 지지직 소리가 섞이며 마무리.  


6분 39초의 음악이 나를 한순간에 진정시켰다. 팽팽했던 뒷목이 느슨해지며 머리가 맑아졌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물속에 푹 들어가 있었다. 실내 수영장의 소음이 차단된 채 꿀렁꿀렁하며 물이 움직이는 소리만 들리던 그 느낌이었다. 갑자기 ‘필’ 받아서 단숨에 글을 내리쓰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 음악을 듣고 물속에 들어가자, 키보드 위에 얹은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때부터였다. 기침으로 콜록거릴 때 더듬거리며 약을 찾듯, 집중하기 힘들 때 이 음악을 틀게 된 건. 책상 앞에 앉아 자세를 바로 하고 이 음악을 틀면 나는 이내 물속에 들어가 있었다. 반복되는 멜로디가 머리를 차분하고 맑게 정화했고,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생각의 소음을 잠재웠다. 책 <리추얼>을 보면 유명한 작가나 예술가, 철학가는 세상의 방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만의 의식을 매일같이 지켜왔다. 러시아 태생의 미국 작곡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는 작업실의 창문을 모두 닫아야만 작곡에 전념할 수 있었다. 영화감독 우디 앨런은 생각에 진전이 없을 때 샤워를 하거나 산책을 하며 “순간적인 변화를 주어 정신 에너지를 자극”했다. 영국 시인 이디스 시트웰은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관에 누워 있었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침대에 누운 채 글 쓰는 걸 좋아했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지만, 나는 커피 한 잔을 끓여 서재로 들어가 자세를 바로 하고 앉는다. 그리고 요한 요한슨의 Flight from the city를 튼다.  


https://www.youtube.com/watch?v=AlftMNmDH00&feature=youtu.be




1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음악을 다시 한번 재생한다. 그리고 이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오늘의 일을 하러 나만의 아이슬란드 서재로 발길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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