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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빛 Oct 31. 2017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리뷰

출처: Daum 영화

*이 글에는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얼마 전 홀로 살아가는 사람을 인터뷰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적적함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그 사람에 관한 글을 쓸 때가 되자 가슴이 먹먹해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신경 쓰이고, 걸리적거리고, 시간 낭비 같아도 사람은 그렇게 누군가와 관계를 지으며 살아야 한다. 서로 다르지만, 함께 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 인생 아닐까. 수화로 ‘사람’을 표현하고 그 사람을 양옆으로 나란히 늘려 가면 ‘사회’를 뜻한다고 한다.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단순히 청춘 영화라고 하기엔 소녀 사쿠라가 전하는 메시지가 의미심장하다.


혼자 해도 되지만

출처: Daum 영화

스스로 외톨이가 되기로 한 극 중 주인공 하루키는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으려 한다. ‘혼밥’, ‘혼술’, ‘혼영’ 등 혼자 해도 되는 문화가 이제는 익숙하지만, 또래 문화가 인생의 중요한 축으로 작용하는 고등학생의 이러한 모습이 그냥 쉬이 넘겨지지 않는다. 그런 하루키에게 다가가는 사쿠라는 독특한 캐릭터의 소유자다. 인기가 많고 화려한 사람보다, 소외되어 혼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쏟는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지도, 관계를 이어가지도 않는 하루키에게 접근한다. 하루키의 반응에 크게 개의치 않고 조금은 멋대로 행동하는 사쿠라는 차츰 하루키 마음속 방어의 벽을 무너뜨린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지닌 하루키에게 ‘그래도 된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하는 것이다. 그렇게 부딪치고 섞이며 살아가도 괜찮다고, 그런 행동이 폐를 끼치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사쿠라가 하루키와 가깝게 지내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질투하는 사람은 사쿠라의 단짝 친구 쿄코다. “사쿠라가 없었으면 난 외톨이었을 거야.”라고 얘기하는 쿄코 역시 홀로 지내다 사쿠라의 레이더망에 들어온 사람 중 하나다. 하루키를 질투하는 쿄코와는 달리 사쿠라는 하루키와 쿄코가 서로 가깝게 지내기를 바란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또 새로운 사람이 더해지고. 공동체가 형성되는 과정이다. 그렇게 사쿠라는 소외된 사람을 사회라는 무대로 끌어올린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출처: Daum 영화

도서관의 책을 정리하는 일은 유난히 디테일에 집착하는 일본인 특유의 완벽주의를 그대로 보여준다. 하루키는 고도로 세심하고 꼼꼼한 모습으로 사서의 일을 완벽하게 해낸다. 하지만 사쿠라는 완벽주의자 하루키의 책장에 작은 티 하나를 남긴다. 책을 꼭 순서대로 꽂을 필요가 있냐며 책 한 권을 어딘가에 숨긴다. “열심히 찾아서 발견하면 기쁘잖아. 보물찾기처럼.” 

허를 찌르는 말이다. 하나라도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몸 어딘가가 가려운 느낌이 들어 집중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들에게, 완벽하지 않아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위로의 메시지를 던진다. 순서대로 질서를 만들어 지켜나가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규칙 속에 자리 잡은 불규칙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쿠라. 그냥 장난기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뒤로 물러서서 큰 그림을 바라보면 다름을 인정하는 너그러운 마음이다. 완벽하지 않은 게 흠이 아니라 세상의 일부이며, 개성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넓어질 수 있을까. 나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둘 수 있지 않을까.


죽음에 대하여

출처: Daum 영화

췌장에 문제가 있어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사쿠라는 ‘누구든 당장 사고로 죽을 수도 있다’며 죽음을 앞둔 자신의 삶이 남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쿠라는 ‘나는 몇 년 안에 죽는다’고 일기에 적는다. 그리고 하루키가 정말 죽냐고 물어봤을 때, 태연하게 웃는 표정으로 말한다. “응, 죽어.” 병인지 사고인지 모를 원인으로 길 한 가운데서 황망한 죽음을 맞이한 어떤 연예인의 뉴스가 사쿠라의 생각을 뒷받침한다. 누구든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삶에 임하는 자세가 지금과 같을까.

몇 년 전 영화 <버킷리스트>처럼 사쿠라는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를 만든다. 버킷리스트가 꼭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만 의미 있는 일은 아닌데도 영화에서는 유독 죽음을 앞둔 사람의 버킷리스트를 무게감 있게 다룬다. 세상을 살 만큼 살아본 중년 아저씨들의 버킷리스트와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 순수한 여고생의 버킷리스트에 공통점이 보인다. 아직 해 보지 않은 일에 도전하는 것.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니 누구의 버킷리스트도 사소하지 않다. 내 버킷리스트는 무엇일까. 하루하루를 오늘이 마지막일 것처럼 산다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루를 조금 더 의미 있는 활동으로 채워나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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