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을 오간 남아공의 이미지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에 온 뒤 나를 걱정하게 한 것은 불안한 치안이었다. 우리와 2주간의 일정을 함께했던 가이드나 요하네스버그에 위치한 한식당에서 만난 한인 교포, 루스텐버그에서 우리를 초대했던 선교사분들은 입을 모아 남아공의 치안을 지적했다.
그들이 전한 당시 남아공 사정은 현지 르포 형식으로 기사화했다. 빈번한 도난 사고, 경찰 등 공권력의 부재 등 여러 요인이 있었다. 특히 도난 사고에 대한 걱정이 있어 각자 자기 짐을 철저히 보관했다.
그래도 사람 사는 동네는 다 비슷했다. 도난이 잦다고 했지만, 실제 다녀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주로 단체로 빌린 버스를 이용해 이동했지만, 자유시간에는 택시를 타고 개별적으로 이동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머물 때는 대표팀 훈련, 경기 일정 때 외에는 쇼핑몰이나 식당 등을 다닐 때 택시를 이용해 움직였다. 마지막 일정이었던 포트 엘리자베스에서는 이동 거리가 길지가 않아 걸어 다니기도 했다.
하루 이틀 택시를 타고 다니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짬짬이 동네 구경을 다녔다. 요하네스버그에 머물던 어느 날에도 그랬다. 쇼핑몰을 갔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방에 들어와 소지품을 정리하는데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사라진 것이다.
KT에서 아이폰3GS를 처음 출시했을 때였다. 스마트폰보다는 2G폰을 더 많이 쓸 때였다. 천천히 생각해보니 호텔로 돌아올 때 탑승했던 택시에서 두고 내린 듯했다. 핸드폰을 분실했다고 동료들에게 알리자 찾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가이드도 택시 기사가 전원을 껐겠다고 생각했다.
동료의 핸드폰을 빌려 내 핸드폰에 전화했다. 한 10번 정도 했을까? 누군가가 받았다. 그 택시 기사였다. 그는 호텔로 와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30분 정도가 지나고 택시 기사가 왔다. 그는 웃으면서 내 핸드폰을 전해줬다.
저녁 시간에 동료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다들 웃으면서 다행이라고 했다. 나도 생각보다 위험하지는 않은 것 같은 생각이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이렇게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이 일 이후로 출장 기간 내내 항상 경계했던 마음도 누그러졌다. 시선이 바꾸니 이들은 낯선 곳에서 온 이방인에게 살갑고 친절하게 대했다. 분명 내가 본 것은 한 단면이지만, 그래도 내게는 남아공의 이미지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2주의 일정이 끝나고 출국하기 전날 포트 엘리자베스에서 허정무 감독과 간담회를 한 뒤 항구 쪽에 무지개가 피었다. 모두 환호했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람 냄새를 맡으며 남아공에서의 일정이 좋은 기억으로 남는 듯했다.
귀국할 때는 포트 엘리자베스에서 요하네스버그로 국내선을 타고 이동한 뒤 홍콩으로 가는 국제선을 탔다. 그리고 홍콩에서는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는 스케줄이었다. 그리고 포트 엘리자베스에서 바로 국제선으로 짐을 부쳐준다고 해서 우리는 양손 가볍게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까지 왔다.
인천공항에 온 뒤 내 캐리어를 보는데 이상했다. 지퍼 손잡이가 망가져 있는 것이다. 겨울옷을 꺼내기 위해 가방을 열었는데 헤집은 것처럼 옷들이 뒤엉켜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한 채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고 나서 얼마 안 돼 같이 갔던 동료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아공에서 산 내 옷들이 없어졌어. 넌 괜찮아?
지금 짐을 풀었는데 난 괜찮은 것 같은데?
전화를 끊은 뒤 짐들을 다시 살펴봤다. 그리고 남아공에서 샀던 남아공 축구팀 올랜도 파이어리츠의 유니폼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갑자기 열이 확 올랐다. 아니 왜 없어진 거지?!
나중에 같이 갔던 이들로부터 들었는데 남아공의 공항 직원이 캐리어를 열어 값이 나가는 옷이나 제품들을 훔쳤던 것이다. 남아공에서 느꼈던 사람 냄새도 바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