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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Jan 28. 2023

양갈비와 에비앙 소주

2022 카타르 월드컵이 개막하기 몇 주 전에 절친한 후배 기자와 프로축구단에서 일을 했던 동생과 저녁 식사 자리를 했다.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카타르 얘기가 나오자 난 바로 카타르의 한 음식을 입에 올렸다.


카타르 가면 양고기 먹어.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양꼬치가 아니고, 양갈비야. 새끼 양을 먹는데 갈빗대가 성인 손가락 정도 길이야. 그 갈빗대에 고기 한 점이 딱 붙어 있어.
그렇지 않아도 같이 가는 타 사 선배들이 양갈비 한 번 먹자고 했어요. 음식점 이름도 들었는데 어디였더라?
알 카이마(Al Khaima)?
맞아요 알 카이마!


중동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식재료가 양이다. 양고기를 파는 음식점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나 카타르 도하는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도시이기에 이미 현지의 많은 양고기 전문 음식점 정보가 공유되어 있다. 그래도 방문객들이 찾는 곳은 엇비슷하기 마련인데 도하의 알 카이마나 두바이의  오토매틱 같은 양갈비 전문점이 대표적이다.


알 카이마의 양갈비 16대 도전은 언제 성공할 수 있을까?


나도 알 카이마, 오토매틱은 당연하게 가봤고, 양갈비를 실컷 먹은 기억이 난다. 알 카이마는 2011년 아시안컵 취재 관계로 한 달 가까이 도하에서 체류할 때 두 번 방문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한 번은 대한축구협회에서 출장 기자들에게 한 끼 산다면서 알 카이마에서 양갈비를 먹었고, 그 뒤에 일행들과 한 번 더 찾아 양갈비를 즐겼다.


양갈비는 성인 손가락 정도 되는 갈빗대에 살이 붙어 있다. 그래서 갈비 하나 집고 입으로 싹 뜯으면 살이 뜯겨 입안으로 들어간다. 갈빗대 하나에 고기 한 점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리고 양갈비를 총 16대 먹으면 양 한 마리를 먹은 셈이 됐다. 양의 갈빗대가 좌우 합쳐서 16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련할 수도 있지만 16대 먹기에 여러 차례 도전했다. 그리고 번번이 실패했다. 고기를 계속 먹다 보면 속이 부대끼고 느글거려서 많이 먹기 힘들었다. 소주나 맥주라도 있었으면 안주 삼아 더 먹을 수 있었겠지만, 중동 지역의 음식점에 술은 금지다. 탄산을 파트너 삼아 열심히 먹었지만 12대가 최고 기록이었던 것 같다. 에피타이저로 나온 난을 너무 많이 먹은 탓도 있었다. 헌데 양 한 마리 정도를 다 먹은 이가 있었다. 바로 기성용이다.


아시안컵에 출전했던 축구대표팀도 휴식일을 이용해 알 카이마에 들러 양고기 외식을 했었다. 그래서 누가 가장 많이 먹었는지 궁금했고, 축구협회 미디어 담당관은 ‘기성용’이라면서 정확한 개수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16대 전후였다고 귀띔했다. 그 말을 듣고 훈련이 끝난 뒤 기성용에게 양고기 먹은 양에 관해 물었다. 다소 짓궂은 질문이었다. 그 말을 들은 기성용은 “먹는 것 갖고 뭐라 해요”라며 살짝 버럭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던 한국인이 경영하는 한식당도 존재한다. 도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묵었던 라마다 호텔(현재는 래디슨 블루 호텔 도하로 바뀌었다)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한식당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구글 맵으로 검색해보니 지금은 사라진 듯 보였다.


근 한 달을 숙박했던 라마다 호텔. 도하에서 항상 저런 복장으로 다녔다


축구협회에서는 이 한식당에서도 식사를 한 번 샀었다. 그래서 단체석이 준비된 자리에 가니 테이블마다 2리터짜리 생수가 두 병씩 있었다. 하나는 아랍어가 쓰여 있는 생수였고 다른 하나는 유명한 생수 브랜드인 에비앙 제품이었다. 에비앙이 보이자 얼른 한 잔 마셔야겠다는 마음에 뚜껑을 돌렸다. 그런데 이미 누가 뚜껑을 따두었다. 속으로 “식당에서 미리 뚜껑을 딴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에비앙을 컵에 가득 채우자 내 옆에 자리했던 축구협회 임원이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조심히 마시세요”라고 했다. 무슨 뜻인가 싶어서 갸우뚱거린 뒤 한 모금 마시자 쓴맛이 확 올라왔다. ‘소주’였다.


외국인이 중동 지역에서 음주하려면 허가된 식당에서 가볍게 즐기거나 허가된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런 편법(?) 같은 일도 있었다. 점심이어서 다들 소주를 많이 마시지 않았다. 소주잔으로 1~2잔 마셨을까? 식당 사장님이 “술을 즐기시되 얼굴이 벌게지게 드시진 마세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라는 주의사항도 한몫했다.


그래서 테이블마다 에비앙은 반병 이상씩 남았고 다들 가방에 넣어 챙겨갔다. 이 에비앙은 한동안 룸메이트였던 동료 기자와 매일 일정을 마친 뒤 소맥을 만들 때 요긴하게 활용됐다. 호텔 옆에 KFC가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둘 다 걱정이 많았는지, 메이드가 청소하다 술이라는 것을 알까 봐 에비앙을 객실 냉장고가 아닌 객실 금고에 넣고 보관했다. 그리고 마실 때는 맥주와 얼음을 같이 주문했다. 상반된 문화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에피소드였다.


몰래 술을 마신 것 같지만 합법적으로 즐기기도 했다. 호텔 내 펍에서 가볍게 맥주를 즐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호텔 펍에 들어갈 때는 여권을 지참해야 했다. 외국인인지 아닌지, 위조 여권을 쓰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중동, 이슬람 문화권이 아니라면 겪어보지 않을 체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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