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wen Feb 27. 2020

Elevator Beat

Level 1) 나는 이미 거기 가있으니깐  괜찮다. 

 한 사람이 있다. 좀 잘 나간다. 월급이 980만 원을 받았고 1년에 이것저것 다 합치면 한 1억에서 1억 5천 정도 회사에서 버는 40대 초반의 남자다. 아이도 둘이 있고 와이프 분도 아주 미인이시다. 차도 좋다. 여하튼 부족함보다는 풍족함에 가까운 사람이다. 아니 그런 사람이었다. 어제 그 사람과 나는 술을 마셨다. 잠원역 4번 출구 앞 한 군데가 있는데 내가 아는 가장 Art 한 포장마차다. 가족과 같은 이모가 계신다. 


" 형, 안 힘들어?" 

"아나. 죽겠다." 

"어떻길래?"

"뒤질 거 같다니까?"(형은 짜증을 부리지 않았다. 웃었다. )


 내가 아는 이 형은 이제 월급이 없다. 즉 수입이 제로라는 이야기다. 잘 다니던 회사를 뛰쳐나와 창업을 시작하였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벌써 판권에 수입에 국내 승인까지 꽤 멀리 와있다. 이제 발을 뺄 수도 없다. 근데 아직 매출이 없어서 이 형의 수입은 제로다. 그러니깐 힘들지 않냐는 질문은 초등학교를 넘어 유치원 생이 하는 질문보다 더 유치한 거다. 그걸 내가 했다. 촌스럽게...


" 근데 왜 그런 거야?"

"나는 거기 가있으니깐"

"뭐?" 

"나는 이 사업으로 날 찾는 사람들한테 올바른 서비스 하고 그걸로 사람들이 만족하는 만큼 나도 보람찬 거고 그런 걸로 성공하는 그곳에 나는 이미 가있으니깐" 

"그럼 안 힘들어?"

"아니 뒤질 거 같다니깐. 근데 괜찮아"

"왜 괜찮아? 형수님 머라 안 해?"

"해. 그래서 이사하잖아. 나 담배도 끊었어. 5천 원이 없어서 근데 건강해졌어."

"미쳤어?" (진짜 미친놈인 줄 알았다.) 


형은 강남 한복판에서 20년을 살다가 오늘 밤 나랑 함께 짐을 쌌다. 그리고 내일 아침 서울 외곽으로 이사한다.  오늘 우리는 형의 집 앞에서 먹는 마지막 술자리일지도 모른다. 


"내가 해보고 싶은 거 하고 잘되면 선택 잘한 거고 잘 안되면 내가 진짜 능력이 없는 거고, 난 이거 하려고 편의점 아르바이트하고 대리 운전해도 괜찮아. 이 정도는 솔직히 간지럽다고 생각하려고" 


 물론 성공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현실에서의 안정감을 찾는 것은 누구나에게나 있을 것이고 내가 가장 존경해 마지않는 이 형 역시 그런 생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형이 바라는 성공의 형태는 항상 완전히 달랐다. 최소한 내 앞에서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사업이 성공해서 유명해지는 그런 류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난 그렇게 그를 나만의 방식으로 믿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나는 이미 거기에 갈 거고 어차피 거기 갈 거니깐, 솔직히 힘든 거는 참아지더라. 회사 다닐 때는 매일 대기업의 사장, 회장님들과 몇십억짜리 계약만 하다가 최근에는 거래처 한 군데에서 나보다 한 10살 어려 보이는 친구가 자기 전화번호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는데 등에서 식은땀이 나더라."

"뭐 그런 놈이 다 있냐?"

"아니, 그 사람이 내 목숨줄 지고 있어."

"....."


"나도 그때 알았어. 내가 쩡쩡한 회사 다니고 있었는데 그게 다른 의미로 나는 20년 동안 온실 속의 화초로 살았다는 거라고 근데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내가 생각한 미래에 가있으니깐 아니 지금 거기에 가는 길이니깐 다 괜찮더라고"


 술 먹고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를 계속했고 같은 말을 몇 번 반복해나가는 우리의 유치 찬란한 술버릇에도 불구하고 3시간이 지난 후, 어제에서 오늘로 넘어오는 그 시간에 나는 나를 형이 말한 비슷한 그곳으로 보냈다. 나도 형이 말한 거기에서 살고 싶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우리 주변에서 받는다. 그리고 좌절한다.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아들, 딸인 우리는 정말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아니 왜 사는 걸까? 왜 이일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이런 방식으로 사는 걸까?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일까? 무슨 죽을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힘든 걸까? 


 웬만한 대한민국의 사람들에게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 필요하고 그 이름값에 걸맞은 연봉의 수치가 필요하며 인간적으로 성숙하고 동시에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삼국지에서나 이야기될 제갈공명 급의 인재가 되어야 한다. 게다가 결코 나의 동지가 될 수 없는 적당히 믿고 적절한 선을 지키면서 때로는 서로에게 도움까지 줄 수 있는 관계까지 만들어 줘야 하는 회사 선임, 후임, 정말 훌~륭하신 우리의 매니저님들에게 나는 훌륭한 동료로 남아야 한다. 그래야 이직이 되니깐. 신기한 건 이놈의 한국시장은 다 좁단다. 그래서 다 안단다. 지랄이다.(세상에 좁지 않는 시장은 이제 보니 없는 것 같다.) 


세상을 사는데 하루는 24시간이고 1년은 365일인데 우리는 할 일들이 기본적으로 많다. 거기다 성공도 해야 한다. 더 웃긴 건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인데 말이다. 보이지도 않고 실체도 없는 사회적인 기준에 충족된 무언가를 직업이라는 이름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한번 우리 자신을 거기에 보내보자. 어차피 나는 이런 인생을 살 거니깐, 어차피 이러한 목표를 이룰 거니깐 시간이 지나면 나는 거기에 가있을 거니깐 지금 일어나는 힘든 일들을 무시하고 그냥 "네~"라는 단어로 넘겨 버리자. 어차피 나를 진정하게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챙기는 것도 힘들다. 혹시 나를 너무 날 괴롭히는 훌륭한 누군가가 있다면 어차피 나는 저 훌륭하신 분보다 잘 살 것이고 나는 내가 생각하는 거기에 가있을 것이니깐 다시 한번 "네~" 하고 말아 버리자.

 

  나는 어제 부로 나를 거기에 보냈다. 그리고 오늘 내 앞에 있는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이형과 앞으로도 거기에서 만나서 내가 좋아하는 요즘 가장 뜨겁게 유행하는 돌아온 투명한 하얀 병에 담긴 그 녀석을 마실 것이다. 솔직히 진짜 맛있다. 미치겠다. 이러다 알코올 중독될 거 같아 두렵다.

 무엇이 걱정인가. 어차피 계속 마실 알코올인데 그리고 이 글을 빌려 내가 사랑하지 마지않는 형에게 약속한다. 매출 나올 때까지 알코올 (1병에 5천 원 이하)은 무제한으로 제공하겠다. 사랑한다. 진심으로


 모두 거기에서 만납시다. 그리고 자주 들리세요 거기로. 
시간과 자리는 차고 넘치니깐.  


* 참고로 이형은 나보다 7살이 많다. 그렇다. 나도 4가지는 진짜 없는가 보다. 요즘 매일 느낀다. 미안~

작가의 이전글 Elevator bea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