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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wen Mar 04. 2020

Elevator Beat

Level 2) 진짜 천재에게 들은 "천재" 소리

 진짜 10년은 된 이야기다. 젊은 시절에 열정을 한번 불태워 보겠다고 유럽을 무전여행했다. 재밌었다. 근데 죽을 뻔했다. 굶어서... 요즘에서야 젊은 시절에 유럽 여행을 무전으로 다녀왔다고 자랑하지만 무용담으로 이야기 하기에는 그리고 이력서에 쓰는 것 같이 한 줄이 경력처럼 이야기 하기에는 무전여행은 매우 힘들다. 그래도 문제는 재밌다. 정말 재밌다. 인생에 이런 경험도 없다. 나보다 나이가 젊었던 많았든 간에 다녀오기를 추천한다. 나는 참고로 올해로 37살이다. 이 나이에 무전여행이든 돈이 많아서 가는 여행이든 시간 있을 때 무조건 다녀오기를 추천한다. 왜냐하면 내가 정의하는 여행은...

"젊었을 땐 돈이 없어 못하고 나이 들면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그런 존재"
 

그러니깐 무조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가라. 그때 아니면 못 간다고 감히 이야기한다.  


 그날도 여지없이 문제가 터졌다. 아르바이트로 돈 좀 벌었다고 겸손치 못하게 독일 베를린에서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히드로로 날아갔다. (그냥  독일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내 짐이 사라졌다. 젠장... 도착을 안 했단다. 지금이야 글로벌 회사 다닌답시고 영어로 몇 마디 컴플레인이라도 걸어봤겠지만 당시에는 열정과 꿈만 많았던 20대가 아니던가...


"유어 러기지 해즌트 어라이브드, 쏴리"

"왓, 하우큐쥬..?"

"컴, 파인드 미 투모로. 이프 유 원트 위 윌 센드 잇 유어 홈"

"...(새꺄......알아들었다.)"

"왓 두유 원투 두"

"...(닥쳐... 죽일 거야 널...)"


 집이 없어서 결국 내일 찾으러 온다는 굴욕적인 대답을 하고 만들어 놓은 서비스도 이용하지 못함과 동시에 소중한 권리까지 상실한 나는 편의점에서 초콜릿과 함께 득템한 소중한 푸른색의  "인빌롭"을 들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다행인 건 게임기가 들어있던 내 작은 백팩은 하늘의 선물이었다.




 갑작스럽고 매일 일어나는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에 나는 2일이라는 시간이 비었다. 그래서 그곳에 가기로 했다. 그 잘난 녀석들.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천재"들을 한번 보기 위해 나는 분연히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철도 패스는 이러라고 사는 것 아니겠냐면서 그놈의 케임브리지로 나는 갔다. 찾아보니 "영국 유일의 참다운 대학 도시" 란다. 당시 유치하게도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럼 우리 학교는...? (어우 촌시러...)

 도착을 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저녁 9 시 정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에게는 아름다운 유럽인 동시에 영국에서 처음 돌아본 도시, 딱 그 정도였다. 나의 기념적인 '인빌롭'과 함께... 한국에 돌아가면 친구들과 술 마시며 안주할 이야기 소재가 생겼다며 숙소 걱정이나 하고 있었다. 그러다 20대의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그런 펍이 눈에 들어왔다. 또 겸손치 못하게 "영국인데 이런데 가 줘야지... "라는 생각과 동시에 분연히 가게 문을 열었다. 역시 내가 생각했던 그 그림. 머리 노랗고 나보다 키가 훨씬 큰 남성들, 나랑 키가 비슷하거나 조금 더 큰 머리 노란 누나들이 빼곡히 가게를 채우고 있었고 미드에서 나올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그렇게 내 생각대로 쫌~ 있어 보이게  혼자 바 앉았고서 나는 외쳤다.

"기네스 원 보틀 플리즈"

"오케이, 서~"

.

.

.

.

.

 그렇게 정~말 재미없는 한 시간이 지났고 드디어 그 순간이 나에게 찾아왔다.

한 친구가 다가왔다.(젠장... 남자네...)

"웨어 아 유 프럼?"

"사우스 코리아, 하우 어바우 츄?(여기 영국이야... 제발.... 정신차리자...)”

"아임 프럼 웨일스(어라...?), 왓 아유 두잉 히어 인 캠브리지?"

"비코즈 오브 유, 잉글리시(좋았어... 자연스러웠어, 센스 보소)"

"ㅋㅋㅋ(빵 터짐...)"

 

 확실히 나보다는 잘생긴 영국인 친구가 와서 나에게 이야기를 걸었다. 지금 보니 *헤리케인을 많이 닮은 듯하다. 이렇게 이야기하다가 그 친구가 던진 별 의미 없는 몇 마디 말에 나는 유치하고 아~주 촌스러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 헤리케인은 토트넘에서 골 잘 넣는 손흥민 친구다.


"소, 유아 스튜던트, 왓 이즈 유어 메이저?"

"아임 스터디 비즈니스 어드미니스트레이션(경영), 메이저 이즈 파이낸스(회계)"

"오 마이 갓, 유아 지니어스"

"(취했냐?)... 응?"

"아임 소 위크 인 넘버스, 유아 어메이징"

"(뭘... 이 정도로...) 땡스, 하우 어바우 츄?"

"아임 로이어"

"... 캠브리찌?"

"예스. 히어 에브리바디 인 캠브리찌 로이어"

"...(여기가 캠브리지였지,,,?) 오우 이즈 잇?"


 그렇다. 거기에 모인 일부가 캠브리지 로우 스쿨 졸업생들이었고 그중에 일부였던 웨일스 출신의 이 친구는 거지꼴로 들어온 나에게 어떻게 보면 아주 당연한 편견이 없는 인사를 건네었던 것이다. 지금도 후회가 되는 게 그 친구 이메일 주소라도 받아둘걸이라는 후회가 너무 밀려온다. 눈이 파랗고 키가 큰 토트넘의 헤리케인을 닮은 그 친구는 처음 본 나에게 '지니어스'라는 말과 '어메이징'이라는 말을 연신 날려주었다.

 그는 아마 나보다 숫자에 훨씬 강한 친구였을 것이다.(캠브리지잖아..) 그리고 교육기관에서 요구하는 점수는 웬만하면 나보다 강했을 거라고 추정한다.(캠브리지니깐...) 근데 이 친구는 나에게 쿨~ 하게 '지니어스' '어메이징'을 날려주었다.

 여하튼 나는 쿨~하게 다시 보지 못할 걸 알면서도 "굿바이, 씨유순~"을 날리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는 캠브리지 거리를 계속 걸었다. 귀 속에 Toy노래 "거짓말 같은 시간"에 무한 반복으로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없을 귀중한 시간들을 맡겼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우리 조국에서의 질문은 좀 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도 "학교 어디 나오셨어요?"부터가 첫 질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못난 놈일 수도 있다. 인정해야지. 그런데 과거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때 캠브리지 거리를 걸으면서 부끄럽게도 그렇게 생각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오랜 사회생활을 했다는 먹히지도 않을 이유를 대면서 괜히 잘난 어른인 척을 한건 아닐까? 그렇게 질문을 한적도 있을 것이다."어디 학교 나왔니?"라고 그리고 그 출신에 누군가를 쉽게 판단해버린 건 아닐까? 어쩌면 나보다 훨씬 뛰어나고 대단한 천재를 몰라보고 말이다. 다시 반성한다...


나를 처음 본 (지금의 내 나이에서 본) 헤리케인을 닮은 그 어린 친구는 나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보며 나를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는 표현력까지 갖춘 내가 이제껏 보지 못한....

 

괜찮은 젊은 어른이었다. 나보다 훨씬 성숙한...

 

 사실 나는 그때, '천재'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 봤다. 가족들에게서도 주변의 친구들에게서도 오히려 작은 사회라 불리는 대학에서 서로의 질투와 경쟁에 휩싸여 비난을 더 많이 들어 보았지 '천재' 혹은 '놀라워~'등의 아주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그런 단어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에도 낯설었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천재는 아니고 놀라운 능력을 지닌 사람도 아니지만 거지꼴로 펍에 들어온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던 헤리케인을 닮은 캠브리지 법대 출신의 진짜 천재에게 그냥 지금은 고맙다는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이제는 그러지 못한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은 분명 나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심어주게 되었고 내 무전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혹시 운이 없어 이 재미없는 글을 읽는 하루 평균 1~3명의 아주 감사한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오늘 하루는 아니 앞으로의 하루는 주위 사람에게 기분 좋은 말로 시간을 보냅시다. 그 헤리케인 닮은 캠브리지 다니는 진짜 천재 법학도처럼... 어차피 좋은 말 해주기도 부족한 시간과 인생 아닐까요?


Story with Soon.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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