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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ia Nov 09. 2019

토요일 오전에 만난 책

오롯이 나를 위한 글, 오랜만에


토요일 오전, 값비싼 필라테스 1:1 수업에 늦었다. 50분짜리 수업은 20분 만에 칼같이 끝났다. 아쉬움으로 시작한 주말, 기분 전환을 위해 동네 서점에 들렀다. 


그렇게 찾은 서점에 사람이 많지 않아 좋다. 눈이 가는 책을 들춰보고, 한 권은 목적을 갖고 빠르게 읽고 (사지 않을 작정), 그러다 떠오르는 책이 있어 찾아본다. 며칠 전 독서모임에서 책이라면 믿을 만한 구루가 추천한 책.



그렇게 이 책과 함께 오늘의 감정을 들여다본다. 오랜만에 글로 옮겨 본다. 


 #1

어떤 책을 사는 결정까지 꽤 분명한 이유가 있는 편이다. 

주로 어떤 한 문장이 결정을 자극하곤 한다. 이 책을 사기로 결심한 문장은 


사람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줘야
더 나은 사람이 된다. 
- 안톤 체호프


마음에 드는 문장이 책장을 열자마자 나왔을 때, 이 문장을 읽고 며칠 전 회사에서 경험한 어떤 순간이 머리를 스쳤을 때, 이 책에서 만나게 될 문장들이 내 실생활에 힘을 줄 수 있겠구나 싶을 때. 그리고 
읽으며 말한다. "사길 잘했다."


#2

유독 서점에서 즉흥성이 커지곤 한다. 

책뿐만 아니라 책을 자유롭게 읽기 위해 주변에도. 이 책을 처음 읽고 만나게 될 몇 문장이 갑자기 궁금하고, 놓치고 싶지 않아 책을 산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을 적기 위해 샤프를 사고 (때마침 핸드폰에 배터리가 없다), 앉아서 읽을 공간을 위해 커피를 산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은 이 순간, 토요일 오전이 행복하다. 




#3

매주 목요일 회사 동료들과 퇴근 후 러닝을 한다. 

러닝도 좋지만, 더 좋은 건 러닝 후 다 같이 이야기하며 먹는 샐러드 저녁. 이번 주는 서로의 취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꽤 멋진 한 분이 매주 책을 읽고, 읽은 페이지를 기록하는 습관에 대해 말을 꺼냈다. 놀랍게도 "어 저도 그래 본 적 있어요." "저도 책 읽는 거 좋아해요."의 반응 (멋진 분들). 이쯤 되면 서로에게 나올법한 질문 "가장 좋아하는 책이 뭐예요? 재미있게 읽었던 책 추천해주세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책은 '니체의 말'이었다. 


그 날 이후로 종종 생각했다. 심리학 서적을 추천해달라면 어떤 책을 말할까. 당분간은, 이 책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참지 못하고 공유했다. 



#4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가는 요즘이 꽤 좋다. 

평일엔 인공지능 기술을 간접적이나마 다루고, 주말이 되면 한껏 게으름을 부리며 마음과 머리가 편안하게 인문학 책을 읽는다. 주말의 독서는 꾸준히 비슷했지만 기술을 다루지 않는 평일의 삶(업)이 언제부턴가 불안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플랫폼을 키워드로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 속에서 나는 과거에 머무르는 게 아닌가. 평일의 나는 곧 대체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두려움으로 엄습했다. 이제는 그 방향과 판 안으로 들어와 인공지능 기술을 체험하고, 활용하고, 개선하며 불안감을 줄이고 있다. 기술 사회에 좀 더 적극적으로 적응하고 있다. 그 대가로 주말에는 더욱 마음 편히 '인간 본성'에 대한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참 좋다. 속한 판은 중요하다.  



돌고 돌아서,


#5

이런 책을 지인에게서 추천받을 수 있는 건, 그리고 빠르게 사서 읽어보는 사람들 옆에 있는 건 특혜지 싶다.

지금 읽고 싶었다. 지금 이 공간에서 이 책을 만난 이 기분으로 읽고 싶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토요일 오전이 참 따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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