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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강성 Jul 21. 2024

물질의 세계 (1)

모래(Sand) <가장 오래된 것에서 탄생한 첨단의 기술>

《물질의 세계(Material World)》는 경제전문기자 겸 작가인 에드 콘웨이(Ed Conway)2023년 6월에 출간한 책이다. 이 책은 출간 직후부터 영미권 주요 언론의 찬사를 받았으며,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타임스》, 《더타임스》 등에서 2023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콘웨이는 옥스퍼드대학교 펨브로크컬리지에서 영문학 석사를, 하버드대학교 케네디 공공정책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더타임스》, 《선데이타임스》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영국 스카이그룹에서 운영하는 24시간 뉴스채널 스카이뉴스의 경제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에드 콘웨이 출처 구글 이미지]

프롤로그

-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물질세계로의 여행


오늘날 우리는 점점 물질에서 벗어난 세상에 살고 있고, 앱, 네트워크, 온라인 서비스 등 보이지 않는 품목들이 큰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물질계는 여전히 모든 것의 기저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 책은 물질들의 시장가치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그 물질들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따져보기 위해 쓴 것이라고 한다.


유리에 붕소(boron)를 첨가하여 만들며 시험관, 실험실 비커, 의료용 유리병 등에 꼭 필요한 물질인 붕규산유리(borosilicate glass)의 경우, 코로나19를 비롯한 최근의 제약 및 백신의 실험・보관・수송에 붕규산유리 용기가 이용되는데,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물질에 대해 공급 부족에 처하기 전까지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붕규산유리 제품 출처 구글 이미지]

이뿐만 아니라 팬데믹을 겪으면서 마스크, 멸균 면봉, 진단 시약, 그리고 시멘트, 강철, 목재, 화장지, 산업가스, 화학물질이 부족해졌고, 반도체로 불리기도 하는 실리콘 칩의 부족으로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은 장비를 내려놓고 공장 문을 닫아야 했으며, 컴퓨터와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주문을 제때 소화하지 못했던 상황도 발생했다.


이렇게 21세기에도 공급망이 갑작스럽게 붕괴되는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우리에게 필수불가결하지만 의식하지 못하고 지내는 수많은 일상용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점과 “이토록 복잡한 일상용품들의  제조 과정을 단 한 사람이 맡거나, 더 나아가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졌다”는 것에 대해 주목한다.

 

원자재를 세련된 상품으로 완성해서 소비자에게 유통하는 사람과 기술의 네트워크는 원자재를 구성하는 기본 물질과 함께 이 책의 주요 관심사이다. 이 책에서는 서로를 잘 모르는 인적 네트워크가 어떻게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비활성물질을 그토록 경이로운 상품으로 탈바꿈하는지 그 과정을 살펴본다.


우리는 물질 세계에서 벗어나 비물질 세계(ethereal world)에 살고 있다는 피상적인 관점에 빠져 있지만, 사실 물질 세계는 우리의 일상생황을 단단히 뒷받침하며, 물질 세계가 없다면 우리는 비물질 세계에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스마트폰이나 전기차 등을 제대로 향유할 수 없다. 물질은 문명의 뼈대이기 때문에 물질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정상적 생활은 붕괴된다.


또한 물질 세계가 있으므로써 비로소 아이디어가 현실에서 구체화될 수 있기 때문에, 물질 세계에서 중요하지만 낯설은 CATL, 바커, 코델토, 사강, TSMC, ASML 등의 회사들이 월마트, 애플, 테슬라, 구글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비물질 세계의 회사들보다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출처 구글 이미지]

이 책에서 다루는 여섯 가지 물질(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은 우리 주변의 환경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이다. 지금껏 이 물질들은 인류의 분투나 혁신 스토리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적이 없었다. 뛰어난 혁신가에 의해 마법처럼 변형된 비활성 물질 정도로만 등장할 뿐이었다. 이제 이 물질들에 빛을 비추고 그들의 관점에서 인류의 이야기를 할 때가 찾아왔다.


이 6대 광물들은 대부분의 영역에서 즉각적인 대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인간이 세상을 구축하도록 돕고 있으므로, 만약 이들이 고갈된다면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 여섯 가지 물질에 대한 추구가 지정학적 역사를 어떻게 형성했고, 또 미래를 어떻게 형성할지도 살펴볼 것이다. 또한 이 물질들에 대한 무절제한 추구가 환경에 어떤 불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밝힌다.


Part 1 모래(Sand)
<가장 오래된 것에서 탄생한 첨단의 기술>


1장 유리로 바라본 세상

- 가장 완벽한 모래알을 찾아서


호모 사피엔스가 태어나기 훨씬 전 오늘날의 이집트와 리비아 국경 어디쯤에서 2900만 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사하라 사막의 거대한 모래 바다 상공에서 유성 하나가 하늘을 찢어놓으며 폭발했다. 폭발 강도는 대격변 수준이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이 아프리카 유성 충돌이 광범위한 멸종을 유발하지는 않았다. 이 유성이 공중에서 폭발했는지 지표면에 충돌했는지 의견이 엇갈리는데 후자를 주장하는 이들은 증명을 위해 분화구를 조사하고 있다. 이 유성은 특별한 존재인데, 한 세기 동안 고고학자와 지질학자들을 괴롭혀왔던 미스터리를 풀 열쇠이기 때문이다.


투탕카멘(Tutankhamen) 석판에서 발견된 보물 중에는 태양신 라(Ra)를 형상화한 목걸이가 있다. 이 목걸이의 한가운데에는 풍뎅이를 조각한 담황색의 반투명 돌이 박혀 있다. 당시 이 노란 돌만큼은 아무도 본 적이 없었다. 대체 그 돌은 무엇이고 어디서 왔을까?

[하워드 카터의 발굴 장면과 투캉카멘 목걸아 출처 구글 이미지]

‘거대한 모래 바다(Great Sand Sea)‘는 사하라 사막의 동쪽 세이프 사구 지역에 대해 독일의 탐험가 게르하르트 롤프스(Gerhard Rohlfs)가 붙인 이름이다. 1873년 그는 파라오시대에 ’죽은 자의 땅‘이라고 불렸던 지역의 서쪽을 탐험하고 있었다. “사구들, 그리고 그 너머의 모래, 진정으로 모래 바다였다.” 그가 남긴 기록이다.


당시 탐험대는 낙타들도 지나갈 수 없어 횡단에 실패했고 오아시스로 향하던 중 수십 년 만에 갑자기 쏟아진 비 덕분에 식수를 보충하고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들의 무시무시한 경험담 때문인지 이후 50여 년간 아무도 그곳을 탐험하려 들지 않았다.

[아프리카 여행 중 롤프스와 ‘거대한 모래 바다’ 출처 구글 이미지]

‘거대한 모래 바다’를 최초로 횡단하는 데 성공한 것은 훗날 사구에 관한 세계적인 학자가 된 영국인 랠프 배그놀드(Ralph Bagnold)*이다. 그들은 세이프 사구의 비좁은 통로를 자동차로 지나갔는데, 사구 사이의 푸석푸석한 모래를 통과하기 위해 포드사의 자동차 모델 A의 타이어 바람을 모두 빼버리고 운전했다.
* 화성탐사로봇 큐리오시티가 탐사한 화성 사구에는 ‘배그놀드 사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위: 배그놀드와 화성의 ‘배그놀드 사구’ 아래: 배그놀드 탐험대 출처 구글 이미지]

1932년 12월, 세이프(Seif, 아랍어로 ‘칼’) 사구의 가장자리를 지나던 중 아일랜드인 탐험대원 패트 클레이턴(Pat Clayton)이 갑자기 자동차 바퀴 밑에서 쿵 하며 뭔가가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 차에서 내린 클레이턴은 소리가 난 곳을 찾다가 그 일대의 사막이 거대한 노란색의 유리판으로 덮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과학자들은 투탕카멘의 목걸이 한가운데에 박힌 담황색 돌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었다. 담황색 돌은 클레이튼이 ‘거대한 모래 바다’로 800여 킬로미터 들어간 지점에서 발견한 노란색 유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유리(‘리비아사막유리’)는 2900만 년 전의 유성에 의해 지각에서 모래가 열과 압력을 받으며 순식간에 탄생한 것이었다.

[탐험 중인 패트 클레이턴, 리비아 사막 유리 출처 구글 이미지]

자연에서 발생한 또 다른 유리들도 있다.  선사시대 조상들이 도구의 재료로 사용했던 흑요석(obsidian)은 마그마가 분출되면서 급격히 식어 굳어진 광물로 화산이 만들어내는 화산 유리의 일종이다.


텍타이트(tektite)는 유성이나 혜성이 지표면과 충돌할 때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반짝이는 암석이다. 섬전암(fulgurite)은 해변이나 사구에 번개가 내리쳐서 만들어지는데, 속이 비어 있는 튜브형 유리이다.

[흑요석, 텍타이트, 섬전암 출처 구글 이미지]

모래알의 주성분은 실리카(Silica)이다. 이산화규소(SiO2/Silicon Dioxide)나 석영으로 알려져 있다(산소 원자 2개와 규소원자 1개가 결합한 화학물질로, 1기압 기준 녹는점 1600도, 끓는점 2230도로 상온에서 고체로 존재하며, 이산화규소가 결정화된 것이 석영이다). 더 좋은 표현이 있으면 좋겠지만, 유리는 녹인 모래라고 할 수 있다."그러므로 실리카는 유리의 기본 요소가 된다."


유리는 종류에 따라 실리카 함량이 매우 다른데, 물컵이나 유리창에 들어가는 통상적으로 약 70%의 실리카를 포함한다. 흑요석은 65%, 텍타이트는 80%이다. 반면에 리비아사막유리의 실리카 함량은 놀랍게도 98%이다. 리비아사막유리는 자연에서 발생한 유리 중에서 가장 높은 순도를 지닌다.

[실리카의 분자 구조와 분말 출처 구글 이미지]

모래 속에 숨겨진 거대한 수수께끼


지상의 모든 것에 들러붙는 산소를 제외하고 실리콘, 즉 규소는 지상 어디서든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원소이다. 그런데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수수께끼가 하나 남는다. 어떤 형태의 모래가 가장 귀할까? 유럽연합은 가장 순수하고 근본적인 것이 핵심적인 원자재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지구는 모래로 이루어져 있는데도 모래가 부족하다는 얘기가 자주 들려온다. 실리콘 결정을 지배하기 위해 서로 싸우고 죽이는 모래 마피아도 있고, 불법 채굴업자도 있다. 모래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핵심을 놓치는 일이다. 매우 다양한 유형의 모래가 저마다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모래가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졌는가 하는 물음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지질학자들은 우덴-웬트워스 입도분석 기준(Udden-Wentworth scale)을 사용해 모래를 분석한다. 0.0625~2밀리미터 크기인 고체의 느슨한 상태의 결정을 모래로 규정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설탕과 소금도 모래가 된다. 이 책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주성분이 실리카 70퍼센트인 모래에만 집중한다.


실리카 함량이 중요한 이유는 이 수치가 모래의 용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모래 바다'의 모래를 비롯하여 어떤 모래에는 상대적으로 실리카 함량이 풍부하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밟고 다니는 모래 대부분은 실리카 함량이 매우 적고 불순물이 너무 많아서 투명한 유리나 실리콘 칩으로 만들 수 없다.


자연에서 모래를 한 움큼 집었을 때 똑같은 모래알은 없다는 점이 모래를 수수께끼로 만든다. 실리콘 또한 화학적 수수께끼를 만든다. 금속성 물질이지만 온전한 금속은 아니며, 전도성을 띠지만 일정한 조건에서만 그렇다. 고분자 물질인 플라스틱도 만들 수도 있다. 모래는 부드러운 촉감이지만 각각의 알갱이는 매우 단단하다. 그 놀라운 강도 덕분에 21세기 사회의 물리적 토대를 형성하는데 활용 됐다.


모래는 가장 오래됐으나 가장 현대적인 물질이다. 인류가 실리콘을 구슬, 컵, 보석으로 변형시키면서 호모 파베르(Homo faber), 즉 도구를 만드는 인간의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이 물질이 21세기에는 스마트폰과 최신식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되고 있다.


유리로 읽는 경제사


인류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는 경제사학자들은 유리에 주목한다. 왜 산업혁명은 18세기에서 19세기 사이 유럽이라는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났는가. 유리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면, 그 말을 들은 이들은 아마 멍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유리 덕분에 우주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같은 천문학자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일정한 궤도로 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리는 사람들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여 각국의 경제력을 높였다.


안경에 들어가는 양볼록 렌즈 덕분에 수백만 명이 은퇴를 미루고 더 오래 일할 수 있었다. 글을 아는 상당히 많은 인구가 안경 덕분에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이것이 인쇄기의 발명을 촉진했다.

[갈릴레이 망원경과 최초의 안경 출처 구글 이미지]

유리 렌즈와 프리즘 덕분에 로버트 훅(Robert Hooke),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Antonie van Leeuwenhock) 같은 과학자들이 헌미경을 발명할 수 있었다.


인류는 현미경을 통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박테리아의 존재와 세포 생식에 관해 알게 됐다. 유리온실 덕분에 유럽의 원예가들은 기후를 뜻대로 부릴 수 있었다.

[로버트 훅과 처음으로 생식세포를 관찰한 레이우엔훅 출처 구글 이미지]

유리를 이용한 거울의 출현으로 르네상스 화가들은 세상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됐다. 그 전의 금속 표면은 빛의 5분의 1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같은 르네상스 초기의 대가들이 남긴 기록을 살펴보면 그들이 거울에 얼마나 만족했는지 알 수 있다. 다빈치는 사물을 그릴 때 유리 거울을 참고 도구로 활용했으며, '화가들의 스승’이라고까지 했다.


이탈리아 북부이든 네덜란드이든, 저렴하고 효율적인 거울이 불현듯 나타난 장소에서 르네상스가 발생했다는 게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유리 제조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나라들에서 계몽사상에 이어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중국과 중동같이 그 기술을 거부했던 나라들은 다음 몇 세기 동안 경제적으로 쇠퇴한 것이 우연의 일치일까?


몇  년 전 역사가 앨런 맥팔레인(Alan Macfarlane)과 게리 마틴(Gerry Martin)이 인류의 지식을 고양한 “위대한 실험 20가지”를 조사했다. 두 역사가는 “그 20가지 중 16가지가 유리 프리즘, 유리 용기,  유리 장치에 의존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달리 말해서 유리는 근본적 혁신이었다. 인류의 상상력에 더  큰 날개를 달고 더욱 과감한 발명을 시도하게 했다는 의미에서도 중요하다.

[출처 구글 이미지]

오늘날에도 유리는 이런 역할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 인터넷은 대개 광섬유를 통해서 전송되는 정보의 망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유리가 없었더라면 최첨단 컴퓨터의 두뇌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녹인 모래에 불과한 물질이 이룩한 업적 치고는 나쁘지 않다.


누가 유리를 발명했을까


최초로 유리를 발명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기에 얽힌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이야기는 로마 제국의 장군이자 지식인이며 79년의 베수비오 화산 폭발 때 사망한 대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에게서 나왔다. 플리니우스의 이야기는 이렇다.

[대플리니우스와 그의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수 세기 전에 페니키아 선원들이 어느 강가에 도착했는데 지금의 이스라엘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당시 비누로 쓰이던 나트론(natron) 덩어리들을 사갔는데,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기 전 강가에서 솥을 둘 자리가 마땅치 않자 나트론 덩어리 위에다 올려놓고 모닥불을 피웠다. "거기에 불의  열기가 닿고 해변의 모래가 더해진 순간, 지금껏 본 적이 없는 투명한  액체가 작은 시내를 이루면서 흘러내렸다. 이것이 유리의 기원이다"


사실이 어떻든 간에, 대플리니우스의 이야기는 유리 제조에서 가장 중요한 화학적 교훈을 전한다. 유리를 제조할 때 어려운 점 중 하나는 모래의 주성분인 실리카(이산화규소)가 섭씨 1,700도 이상이라는 매우 높은 온도에서만 녹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융제(flux)를 더하면 그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 녹일 수 있다.


대플리니우스의 이야기에는 몇 가지는 사실로 보인다. 먼저, 위치가 그러하다. 그 일은 베루스강 하구 근처에서 벌어졌는데 지금의 이스라엘 북서부 나아만강(Na‘man River) 유역이다. 이곳의 모래의 결정은 80퍼센트 이상의 실리카 함량을 자랑한다. 여느 해변의 모래에 비해 불순물이 매우 적은 편이다.


그러니까 페니키아인들은 유리를 만들기에 완벽한 모래를 우연히  찾아낸 셈이었다. 나트론의 주성분인 탄산나트륨(sodium carbonate)은 실리카의 융제 역할을 하고, 약간의 석회는 최종 구조의 강도를 높여준다.

[나아만강 출처 구글 이미지]

유리의 구조는 다소 혼잡스럽다. 우리 눈에는 투명하고 완벽해 보이지만, 분자 수준에서 보면 원자들이 제멋대로 뛰어노는 볼풀 같다. 어떤 과학자는 '비결정 고체(amorphous solid)'라 하고, 어떤 과학자는 '과냉각 액체(supercooled liquid)'라고 한다.


이론적으로 유리는 액체이면서 고체이지만, 유리의 실제 작용은 고체와 같다. 유리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물질 중 하나이지만, 유리의 고유한 작용에 대하여 과학자들이 아직도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1977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필립 앤더슨(Philip Anderson)은 1995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고체 이론(solid state theory)에서  가장 심오하고 흥미로운 미제는 유리의 성질과 전이에 대한 이론이다. “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미해결로 남아 있다.


유리 제품은 신비롭게도 모래알에서부터 시작된다. 다들 멋진 유리를 만들어낸 무라노섬의 장인들을 칭송하지만, 그 유리를 만드는 원료를 얻기에 최적의 장소였던 베네치아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래는 베네치아 근처 리도섬의 모래언덕과 해안의 다른 부지에서 가져온다.

[무라노섬의 유리공예와 리도섬 해변 출처 구글 이미지]

장인들은 '코고리(cogoli)'라는 이름의 석영자갈을 구워서 갈면 순도가 더 높은 모래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최상의 석영자갈은 스위스 알프스에서 이탈리아 북부로 흐르는 티치노강의 바닥에서 구할 수 있었다. 석영을 잘 갈아내면 실리카의 순도가 98퍼센트까지 올라갔다. 이 모래가 없었더라면 베네치아의 유리 산업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티치노강 출처 구글 이미지]

이 모래는 결코 흔한 모래가 아니기에 오늘날에 어디서 이런 모래를 얻을 수 있을까? 완벽한 모래인 실리카 모래는 유리 제조의 핵심 원료이다. 아주 깨끗하고 투명한 유리를 원한다면 순도가 가장 높은 실리카 모래, 이른바 백사를 구해야 한다.


완벽한 모래알을 찾아서


로칼린(Lochaline)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외딴 마을은 아니지만, 글래스고에서 3~4시간 차로 이동한 후 페리를 타고 린네호(Loch Linhe)를 건넌 다음에는 다시 차를 타고 계곡과 계곡 사이를 지나는 길고 구불구불한 1차선 도로를 곡예 운전하듯 가야 한다. 그 주변에는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멀(Mull) 섬이 있다. 화산 폭발의 잔해로, 섬 대부분이 모번 반도를 뒤덮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로칼린 출처 구글 맵, 구글 이미지]

실리카 함량이 95퍼센트인 실리카 모래는 용도가 매우 다양하다. 물을 정수하거나 금속을 녹여 붓는 주조 금형을 만들 때 사용한다. 열차 제어 장치에 실리카 모래가 사용된다. 무엇보다도 실리카 모래는 유리 제조의 핵심 원료이다. 아주 깨끗하고 투명한 유리를 원한다면 순도가 가장 높은 실리카 모래, 이른바 백사(silver sand)를 구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백사는 파리 남쪽 퐁텐블로숲의 백사인데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가 퐁텐블로 모래로 만들어졌다. 벨기에의 몰,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흐트, 독일의 리페, 캐나다, 미국, 브라질 등지에 백사가 존재한다. 백사가 전혀 없는 나라도 있는데, 영국은 한 세기 전에야 로칼린에서 백사가 발견됐다.

[테오도르 루소의 퐁텐블로 숲과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 출처 구글 이미지]

반도를 흐르는 몇몇 시냇물은 현무암 표층을 깎아내면서 악마의 발톱으로 덮인 하얀 사암을 드러냈다. 용암밑에 갇힌 보물은 이것만이 아니다. 화산암의 바로 밑에는 깊고 두꺼운 백사층이 숨어 있다. 산화철은 거의 없고 실리카 함량이 99퍼센트나 된다. 로칼린 모래의 결정은 둥근 구형인데, 수백만 년에 걸친 부식과 압축으로 이런 형태가 됐다. 바로 이 모래로 아주 투명한 유리를 만든다.


로칼린에서는 모래를 채취하는 대신 갱도를 파서 채굴하기 때문에 모번 반도 아래로 깊숙이 파고든다. 이 갱도는 320킬로미터 이상이다. 유리의 투명도는 광학 유리를 만들 때 엄청난 차이를 결정한다. 이 이야기는 1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칼린 모래 광산과 모래 출처 구글 이미지]

1차 세계 대전과 쌍안경 전쟁


1915년 늦여름, 연합군이 서부 전선에서 독일을 상대로 지루한 참호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보다 남쪽인 오스만 제국에서는 영국군과 호주, 뉴질랜드 연합군이 다르다넬스 해협을 장악하기 위해 작전을 벌이고 있었으나 난관에 부딪힌 상태였다.


전투가 점점 치열해지던 중 영국은 군수부 소속 요원을 스위스로 비밀리에 파견했다. 요원에게 주어진 임무는 영국군에 절실히 필요한 군수품이었던 쌍안경을 실은 배를 안전하게 지키는 일이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무기가 크게 발달해 포탄이 수십 킬로미터까지 날아갈 수 있게 되자 정밀한 조준경이 필수품으로 떠올랐다. 당시 독일은 수십 년간 쌍안경, 망원경, 잠망경, 거리계 과학용 렌즈 등 정밀 광학 분야에서 전 세계 공급망을 완전히 틀어진 상태였다.


소총의 망원 조준경은 독일이 독점했으므로 전쟁 초기에 독일 저격병들은 굉장한 우위에 있었다. 이 조준경의 측면은 자이스(Zeiss)라는 상표명이 새겨져 있었는데, 장비 안에 들어간 유리는 쇼트(SCHOTT)라는 회사가 만들었다.

[자이스 조준경(ZF-41)을 장착한 Kar98k 총으로 사격하는 독일병사 출처 구글 이미지]
[자이스 공장과 쇼프 출처 구글 이미지]

독일의 화학자 오토 쇼트는 유리의 품질을 높이는데 평생을 헌신한 인물이다. 그는 주기율표의 원소들을 하나씩 첨가해서 효과가 어떤지 살펴보는 식으로 유리의 품질을 개선하려 했다.


주방의 오븐용기나 코로나19 백신용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붕규산유리를 발명한 이가 바로 쇼트이다. 튀링겐주의 예나에서 함께 했던 오토 쇼트(Otto Schott), 카를 자이스(Carl Zeiss), 과학자 에른스트 아베(Ernst Abbe)는 정밀 유리 제조 분야의 핵심 인물로 손꼽힌다.

[오토 쇼트, 카를 자이스, 에른스트 아베 출처 구글 이미지]

1914년 무렵, 영국은 정밀 유리의 60퍼센트를 독일의 자이스 사에  의존하고 있었다. 나머지 30퍼센트는 프랑스에서 수입했고, 겨우 10퍼센트를 웨스트미들랜드주 스메디크에서 챈스(Chance) 형제가 운영하는 국내 업체로부터 조달했다. 그해 6월, 페르디난트 대공이 암살되기 직전에 영국 과학협회(The British Science Guild)는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영국은 광학 제조 분야에서 많이 뒤처져 있다. 과학적.산업적 필수품들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할 편만 아니라. 현시점에서 외부의 도움이 없으면 현대 전쟁의 필수품인 광학 기구들을 육군과 해군을 위해 충분히 생산할 수 없다."


전쟁이 선포되자 독일 기업들은 즉시 정밀 유리의 공급을 중단했다. 1914년 9월, 영국 육군을 이끌던 원수 로버츠 경(Field Marshal Lord Roberts)은 대중에게 집에 있는 쌍안경, 오페라 안경, 망원경을 전선으로 떠나는 부대에 기증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간절한 호소문을 발표했다. 몇 주 사이에 2,000건의 기종이 이어졌지만 영국군이 필요로 하는 수 만, 아니 수십만의 수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물량이었다.


1915년 영국 군수부가 중립국 스위스로 파견한 비밀 요원에게 아주 비범한 임무가 주어졌다. 군수부 공식 역사에 나오는 기록에 따르면, 그의 임무는 적국으로부터 쌍안경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독일이 ‘예스'라고 대답한 것이다.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 그리고 그 식민지 국가들은 거대한 고무 생산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발발하자 독일의 고무 수입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그래서 독일은 자동차의  타이어, 엔진의 팬벨트 등에 들어가는 고무 라텍스를 구하지  못한 채 고무 기근을 않고 있었고, 영국에 쌍안경을 제공하는 대신 고무를 요구했던 것이다. 그 후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


영국은 왜 유리 경쟁에서 뒤처졌을까


19세기에 영국의 유리 제조업은 품질 면에서 세계적으로 최선두에 서 있었다. 전자기 유도에 관한 패러데이 법칙으로 유명한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는 쇼트가 그 유명한 붕규산유리를 발명하기 수십 년 전에 납붕규산유리를 발명하기도 했다.

[마이클 패러데이 출처 구글 이미지]

17세기에 영국의 조지 레이븐스크로프트(George Ravenscroft)는 납이 함유된 크리스털유리를 만든 뒤 영국 남동부에서 자주 발견되는 석영암 부싯돌(quartzite flint)의 이름을 따서 플린트유리(flint glass)라고 불렀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데려온 무라노 섬의 장인들이 만들었겠지만, 그 후 유리의 주성분이 플린트에서 실리카로 바뀌어도 그 이름은 그대로 남았다.

[레이븐스크로프트와 플린트유리잔 출처 구글 이미지]

당시 렌즈 제작자들은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물이 든 컵에 빨대를 꽂았을 때 물컵을 내려다보면 빨대가 물속에서 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빛이 공기나 진공을 통과할 때보다 물을 통과할 때 속도가 더 느려지기 때문이다. 정확히 1.33배 더 오래 걸린다. 이 수치를 '굴절률'이라고 하는데, 과학 분야에서 굉장히 중요한 숫자이다.


플린트유리는 이따금 크라운유리(crown glass)라고도 불리는 소다석회 유리보다 굴절률이 높다. 플린트유리 한 면에다 크라운유리 한 면을 결합하면 수정처럼 투명한 렌즈를 얻을 수 있는데, 이 렌즈는 이미지들을 굴절시키지 않고 확대해서 보여준다. 굴절률이 서로 다른 유리를  결합하는 이 원리는 현대 광학의 핵심이다.


[크라운유리 위스키잔과 광학의 원리 출처 구글 이미지]

영국이 17~18세기에 상업용 유리 생산과 고급 광학 분야에서 선두 주자였음에도 19세기에 뒤처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예나에서 실험을 무수히 거듭하면서 현대 광학 산업의 문을 연 오토 쇼트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지만 동시에 그보다 훨씬 세속적인 문제인 조세 정책도 한몫 톡톡히 거들었다.


윌리엄 3세가 통치하던 1696년 영국에는 창문세(window tax)라는 고상한 조세 정책이 도입되었다. 거주자가 잘살수록 그 집에는 창문이  많을 것이라며 주택의 창문 숫자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정책이었다  그 결과, 많은 주택이 세금을 줄이기 위해 창문을 벽돌로 막아버렸다. 유리 제품 자체에도 다양한 세금이 부과됐다.


영국의 유리 산업은 조세 정책에 의해 직격탄을 맞았다. 영국에서 '윌리엄 비넌 하코트' 같은 아마추어가 오토 쇼트보다 먼저 주기율표의 원소를 하나씩 첨가하며 새로운 유리 제조법을 실험하던 시기에 유리 제조 회사들은 사업상의 어려움으로 합병되기 시작했다. 유리세가 폐지된 1845년 무렵 영국의 유리 산업은 이미 치명적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한편, 프로이센 왕국에서는 신생 부문인 유리 제조업에 재정을 지원했고 주문량도 보장해줬다. 이러한 19세기 산업 전략은 시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주도했다. 쇼트, 아베, 자이스는 실험에 필요한 시간과 자금을 국가로부터 충분히 지원받았다. 그렇게 독일은 정밀 광학 분야의 선도국이 됐고,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는 이미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독일을 재빠르게 따라잡았다. 1915년에 저점을 찍고 은밀한 유리-고무 거래를 끝낸 뒤, 군수부는 유리 제조업에 자금과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쏟아부었다. 과학자들이 몇 달간 독일의 유리 제품들을 해체하고 분석한 끝에 종전 무렵에는 영국군은 물론이고 연합군에까지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유리 제품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나치의 점령지에는 영국 광학 산업의 주원료를 공급하던 프랑스 퐁텐블로의 모래 채석장도 포함됐다. 영국의 광학 공장들은 이제 충분한 기술을 갖추고 있었지반, 렌즈를 만들기 위해 녹일 모래가 없으니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번 반도의 로칼린으로 관리들이 파견됐다.


로칼린 석영모래 광산은 1940년 여름에 문을 연 뒤 몇 년간 영국 군수 산업의 핵심지였다. 이곳에서 생산한 모래는 남쪽의 광학 공장들로 선적되고 녹여져 쌍안경, 잠망경, 조준경의 렌즈로 들어갔다. 과학자들이 핵심 광물의 개념을 재정의하기 훨씬 전부터 로칼린은 국가적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최근 로칼린 백사의 일부는 노르웨이로 운반되어 탄화규소(SiC)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탄화규소는 전기차 인버터에 들어가 직류를 전력을 교류 전력으로 변환하면서, 주행거리를 길게 해 주고, 충전속도를 빠르게 하며, 전력 소비량을 줄어주었다. "이 마법의 물질은 지구를 구하는데 엄청난 역할을 할 것이다."


인터넷은 유리선을 타고 흐른다


1934년 뉴욕주 북부 “코닝”의 연구실에서 일하는 미국의 젊은 화학자 제임스 프랭클린 하이드(James Frunklin Hyde)는 여러 화학 성분을 합성하여 유리를 만드는 새로운 제조법을 고안했다. 그는 용접 토치의 화염에 사염화규소를 분사하는 방식을 채택했는데, 사염화규소는 실리카 모래를 염화물 혼합물에 녹여서 만든 액체이다. 하이드는 이 방법으로 리비아사막유리보다 순도가 더 높은 완벽한 석영유리를 만들어냈다.

[제임스 프랭클린 하이드 출처 다우코닝]

용융실리카(Fused Silica)는 고온에도 잘 견디기 때문에 미사일 앞부분인 노즈콘, 우주  왕복선과 국제우주정거장의 유리창에도 사용됐다. 그러나 진정한 유레카의 순간은 런던 교외 통근권의 외곽에 있는 콘크리트 오피스 단지에서 찾아왔다. 궁극적 의미에서는 디지털 세상이 탄생한 순간이기도 했다  


STL(Standard Telecommunication Laboratories)은 이제 존재하지 않지만, 에식스주의 할로(Harlow) 외곽에 있는 그 볼품없는 사무실은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과학 연구의 요람이었다. 상하이 출신의 전기공학자 찰스 가오(Charles Kao)가 바로 이곳에서 획기적인 발견을 했다.


1870년대에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를 발명한 이래로, 정보는 대부분 구리선을 통해 전달됐다. 이는 매우 멋진 해결책이었으나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전화 신호가 약해져 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 들어 찰스 가오가 장거리 통신을 새롭게 바꾸는 획기적인 발견에 성공함으로써 오늘날의 광섬유 시대가 열렸다.


가오는 1930년대에 제임스 프랭클린 하이드가 개발한 초순도 용융유리에서 마침내 답을 찾았다. 코닝의 석영유리를 사용하면 아주 작은 광섬유의 대역폭이 구리선보다 훨씬 컸으므로 놀라울 정도로 가느다란 광섬유 가닥이 두꺼운 구리선보다 몇  배나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는 2009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2010년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서 기사 작위를 받았다. STL 연구소가 철거된 뒤에 할로에 조성된 사무 지구는 그의 이름을 따서 가오파크(Kaopark)라고 지었다.

[광섬유를 발명한 찰스 가오와 노벨상 수상식 출처 구글 이미지]

2장 콘크리트의 빛과 그림자

- 모래 위에 세워진 세계


그러나 지금 내가 한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큰 물이 밀려오고 또 바람이 불어 들이치면 그 집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마태복음> 7장 26~27절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와 모래 위에 지은 자, <마태복음> 산상수훈(山上垂訓)의 비유는 무시할 수 없는 매우 분명한 교훈을 제시한다. 만약 이 비유를 글자 그대로 믿는다면, 모래알 위에 집을 짓는 건 미친 짓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자체로는 잘못된 구석이 없다. 우리가 현재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엉뚱한 종류의 모래 위에 집을 지었다는 점이다. 사막 모래는 결정의 가장자리가 둥글어서 단단히 결속되지 않는다. 어쩌기 충적토 위에 집을 지었을 수도 있다. 충적토 속의 모래는 건기에는 표면이 고르고 단단하지만, 비가 오거나 강물이 갑자기 범람하면 결속이 매우 느슨하고 불안정해진다.


그러나 단단하지 못한 모래라고 해도 그 위에 집을 지을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를 떠올려 보자. 부르즈 할리파는 글자 그대로 움직이는 사막 모래 위에 세워졌는데, 모래와 사암 암반의 마찰력을 이용하여 건물을 제자리에 단단히 고정하고 있다.

[부르즈 할리파 출처 구글 이미지]

부르즈 할리파에서 해변을 따라가면 인공섬 팜 주메이라(Palm Jumeirah)가 있다. 팜 주메이라는 페르시아만의 해저에서 수백만 톤의 모래를  준설하여 만들었다. 모래들을 한 곳에 살포한 뒤 고도의 압축 기술로  표면을 평평하고 단단하게 다졌다. 하지만 최고의 압축 기술도 사막 모래를 새로운 땅으로 변모시키지는 못한다. 인공섬들은 완공된 순간부터 자연의 작용에 끊임없이 맞서 싸워야 하는 운명을 부여받는다.

[팜 주메이라 출처 구글 이미지]

모래밭을 따라 요동치는 국경선


네덜란드는 이미 14세기부터 간척 사업을 통해 자국 영토를 늘리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간척을 가장 열성적으로 하는 지역은 아시아이다. 일본은 19세기 이래로 바다를 꾸준히 매립하여 250제곱킬로미터의 신규 토지를 얻었다. 중국은 신구 해안 도시들을 꾸준히 확장하고 있다.


한 국가의 영해는 해안선이 규정하므로, 모래로 쌓은 포좌는 21세기 외교의 새로운 국경선이 되었다. 영해가 크면 클수록 바다에서  어로, 시추, 채광할 수 있는 범위 역시 넓어진다. 이 문제는 군사적  쟁점으로도 이어진다.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등 여러 아시아 국가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난사 군도(‘스프래틀리 군도’)는  한때 새들만 사는 암초였다. 오늘날 난사 군도는 콘크리트 활주로와 군사기지가 들어서면서 영토를 늘려가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에 건설한 인공섬인 융수자오(永署礁, Fiery Cross Reef) 출처 구글 이미지]

21세기 내내 해수면이 상승하면 물밑으로 가라앉으리라고 과학자들이 예측하는 몰디브는 수도 말레 주위에 거대한 장벽을 세우기 위해 엄청난 양의 모래와 바위를 사용하고 있다.

[몰디브 수도 말레와 산호초 위에 새로 만들고 있는 인공섬 출처 구글 이미지]

싱가포르는 간척이야말로 기후변화, 해수면 상승, 수자원 고갈에 대비한 최선의 방어책이라고 선언했고 그리하여 세계 최대 모래 수입국의 자리에 올랐다. 싱가포르는 2000년에서 2020년까지 약 6억 톤의 모래를 수입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싱가포르에 모래를 수출하는 국가들은 2억 8000만 톤을 수출했다고 했다. 나머지 3억 2000만 톤의 모래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신이 했다고 나서지 않고 있다.


천연자원에서 전략적 광물로


이것은 좀 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모래를 거의 무제한으로 존재하는 흔한 물질로 생각한다. 만약 모든 모래가 똑같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사막 국가 두바이가 벨기에, 네덜란드, 심지어는 영국 같은 나라에서 모래를 수입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에 대해 가장 간단한 답은 어떤 모래가 다른 모래보다 더 유용하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일부 지질학자들이 관련 자료들을 섭렵한 결과 인류가 해마다 채광하고 채석하고 준설하는 모래, 흙, 암석의 양이 지구의 자연적인 침식과정(강물이 모래를 갈아서 바다로 내보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양보다 약 24배 더 많다고 추산했다. 지난 세기 동안 인류가 땅에서 파낸 물질의 양은 정확히 6.7테라톤인데,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사물의 총무게는 1.1테라톤이다.


그 많은 모래가 어디서 오는가 하는 문제는 절대 사소하지 않다. 선진국의 경우 모래를 이동시키고 토지를 매립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화석 퇴적층에서 모래를 채취한다. 그러나 그 외 국가들에서는 생태계 내 모래를 채취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아시아의 경우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건설용 모래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로 인해 지역 생태계가 엄청난 피해를  보았는데, 이 현상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곳이 메콩강 삼각주 지역이다.


모래를 불법으로 너무 많이 파낸 나머지 과거에 강둑이 있던 곳에는 이제 깎아지른 절벽이 남아 있을 뿐이다. 날마다 축구장 1.5개 면적이 바다에 침식되고 있다.

[메콩강 불법 모래 채취로 인해 생긴 절벽 출처 구글 이미지]

또한 중국 정부는 수십 년째 양쯔강 유역 불법 모래 채취자들과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양쯔강 일대의 배수 유역은 중국 국토의 5분의 1을 차지하며, 인구의 3분의 1이 살고 있다. 그러나 과도한 모래 채취  때문에 강둑이 무너져 강의 생태계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위로 놓인 다리들마저 안정성을 위협받고 있다.

[2022년 양쯔강 가뭄 출처 구글 이미지]

모래는 중요한 비즈니스다. 유엔환경계획에 따르면, '모래 위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모래를 흔해 빠진 천연자원이 아니라 전략적 광물로 여겨야 한다. 그러니까 리튬 같은 배터리 원료 또는 구리 등과 비슷한 수준의 광물 취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물질 중에서 가장 저평가된 물질


이것은 마법 같은 물질이지만 대체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 지상으로 머리를 내밀면 조롱이나 무시를 받는다. 프랑스 건축가 조르주 그로모르(Georges Gromort)"콘크리트? 그건 진흙에 불과하잖아!"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비난받고 무시당하고 또 오해되더라도(그건 절대 진흙이  아니다) 모래와 자갈, 시멘트의 혼합물인 콘크리트는 아주 비상한 물질이다.


이 질문을 던지면 가장 좋은 출발점이 될 것 같다. 개발도상국의  빈민가에 사는 수많은 저소득 가구의 사정을 개선하려면 다음 세 가지 중 무엇을 제공해야 할까? 현금 한 다발? 영양제? 시멘트 한 포대?  답이 무엇인지 아마 짐작했겠지만 그래도 계속 설명해 보겠다.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가 겪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체내 기생충이다. 기생충은 주로 사람들의 분변에 기생하는데, 그러다가 누군가의 발바닥에 달라붙어서 집 안으로 들어온다. 만약 집이 흙바닥에 판잣집이라면 기생충은 오랫동안 발견되지 못하고 활개를 치다가 더 많은 아이들이 감염된다.

 

몇 년 전, 멕시코는 빈민가에 흙바닥을 포장할 수 있도록 시멘트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기생충 감염률이 78퍼센트나 떨어졌다. 어린이들은 학교생활에 더 잘 적응했고, 부모들도 전보다 더 행복하고 덜 우울해했다. 이 모든 것이 값싼 시멘트 포대 덕분이었다니.  


시멘트의 이로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흙길을 콘크리트 포장도로로 대체했더니 도로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이 4분의 1 이상 증가했고, 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이들의 비율도 높아졌다.


우리는 건축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곤 한다. 주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구 중 하나이다. 그러나 머리 위에 지붕이 있고 발밑에 단단한  바닥이 있으면 이 사실을 잊기 쉽다. 건축의 세계에서 시멘트만큼이나 엄청난 차이를 만든 물질은 없었다.

 

벽돌을 쓸 때는 며칠에서 몇 주까지도 걸리던 공사를 소수 인력으로 몇 시간 만에 해치울 수 있다. 몇 세기 전만 해도 거의 모든 건물이 벽돌 혹은 목재로 지어졌지만, 오늘날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는 자재의 80퍼센트를 콘크리트가 차지한다.


시멘트 자체는 진흙,  모래, 때때로 산화철 같은 첨가제에다가 석회석 또는 백악(chalk)을 넣은  뒤 구워서 으깨어 만든 가루인데, 콘크리트가 서로 단단히 달라붙도록 돕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마법 성분이다. 이 가루에 물을 부으면 칼슘과 실리콘이 반응하여 걸쭉한 회색 젤이 만들어지는데, 그 안에서 돌로 된 가느다란 덩굴손이 수백만 개 생겨난다.


이 덩굴손은 칼슘실리콘 하이드레이트(calcium silicon hydrate)의 결정체인데, 젤 속에서 점점 자라면서 줄기를 얻어서 일종의 뼈대가 돌 같은 구조물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골재를 더하면, 덩굴손들이 자갈과 모래에 단단히 들러붙으면서 콘크리트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콘크리트는 물처럼 부을 수 있는 액체 상태의 돌이다.


콘크리트의 세계에서 현세는 종종 신비롭고 경이로운 것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박물관에 전시된 털북숭이 코뿔소의 이빨, 구석기 손도끼는 건설용 모래를  준설하는 과정에서 발굴된 것이다. 콘크리트에 들어가는 모래와 돌을 얻기 위한 만족할 줄 모르는 여정에서 인류는 선사시대에 대한 많은 지식을 얻었다.


콘크리트의 역사


물성에 관한 한, 콘크리트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매우 오래된 것일 수도 있고 놀라울 정도로 새로울 수도 있다. 인간은 수천 년간 석회를 구워서 건물을 짓는 데 사용해 왔다. 튀르키에에서 발견된 신석기 유적의 바닥과 기둥에 시멘트를 사용한 흔적은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의 일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로마인들이 많은 건축물에 사용했던 콘크리트의 일종이다. 그 콘크리트는 로마 콜로세움의 기초를 구성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로마 판테온의 거대한 돌이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비강화 콘크리트 돔이라는 것이다.


콘크리트 제조법은 로마 제국 멸망 후 수백 년간 사라진 상태였으나, 로마인 건축가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Marcus vitruvius Pollio)가 집필한 ⟪건축10서(De Architectura)⟫의 원고가 15세기에 발견되면서 관심이 되살아났다. 비트루비우스의 책은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역되었고, 콘크리트의 비밀을 발견하려는 과학적 탐구심에 불을 붙였다.

[출처 구글 이미지]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발명가와 사업가들은 로마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새로운 콘크리트 제조법을 만들기 위해 경쟁했다. 오늘날에도 원래의 로마식 제조법을 역공학으로 알아내려고 애쓰는 과학자들이 있는데, 2023년 MIT 연구자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오늘날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시멘트 제조법은 1824년에 조지프 애스프딘(Joseph Aspdin)이 특허를 낸 방법이다. 애스프딘은 ‘포틀랜드 시멘트’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시멘트의 색이 도짓주에서 채석하는 포틀랜드석(Portland stone)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출처 구글 이미지]

초창기의 시멘트 제조법은 너무 제각각이어서 품질이 일관되지 않고 포대마다 달랐다. 유리 종류를 결정지었던 공식처럼, 이번에도 독일인들이 시멘트를 재고 섞고 마무리하는 엄격한 과학적 공정을 밟았다. 그리하여 19세기말, 독일 시멘트가 영국의 시멘트보다 훨씬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게 되었다.  


콘크리트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여러 분야에서 혁신을 창출한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이다. 오늘날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그의 기여는 콘크리트의 대량생산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에디슨은 세계에서 가장 긴 원통형 회전 가마인 로터리 킬른(rotary kilon)을 만듦으로써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했다. 에디슨의 가마는 전체 길이가 46미터 정도였는데. 이는 현재 시멘트 공장들에서 돌아가는 가마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는 독일식 시멘트 제조법에 나름의 개선안을 몇 가지 추가한 다음에 이를 특허 출원했다.

[로터리 킬른 출처 구글 이미지]

에디슨이 시멘트 산업에 도입한 것은 규모(scale)라는 아주 중요한 개념이었다. 그가 발명한 거대한 로터리 킬른을 사용하면, 공장들은 하루에 약 16만 리터의 시멘트를 생산할 수 있었다. 시멘트가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건 시멘트 자체의 마법적 성질도 있지만, 값싸코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널리 공급될 수 있었던 영향이 더 크다.


빛과 그림자


콘크리트가 어디에나 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모래, 골재, 시멘트를 혼합하여 콘크리트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한 때가 겨우 한 세기 전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지구상에는 1인당 80톤이 넘는 콘크리트가 존재하는데, 이를 전부 합하면 총 650기가톤에 이른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을 전부 합한 무게보다도 더 무거운 무게이다.


2014년 텐진은 ‘세계 고층 빌딩의 수도'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해에만 신규 고층 빌딩들의 높이를 모두 합하면 무려 1.25킬로미터가 된다. 중국의 시멘트 생산력은 10년마다 두 배씩 증가하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텐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골딘파이낸스 117’이다. 일명 '지팡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는데, 꼭대기가 지팡이 손잡이 모양으로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골딘파이낸스 117이 건설되는 동안 이를 가능케 한 절묘한 엔지니어링에 대한 논문들이 여럿 발표되기도 했다. 하지만 계획했던 완공 시점으로부터 현재까지 미완공 상태로 방치되어 '유령 마천루'라는 오명을 얻었다.

[골딘 파이낸스 117 출처 구글 이미지]

강도, 손쉬운 도포, 저렴함은 콘크리트의 중요한 매력이지만, 동시에 저주가 되기도 한다. 필수 인프라와 주택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과 가장 긴 다리,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나 오스카르 니에메예르(Oscar Niemeyer)의 상징적 건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등뿐만 아니라 황량한 주차장과 고충 건물 단지, 흉물스럽고 별 특징도 없는 고가도로, 전 세계의 공장과 사무실 등지에서도 콘크리트가 과용되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물과 오스카르 니에메예르의 건축물들 출처 구글 이미지]

콘크리트의 또 다른 저주는 제조법이 쉽지만 잘못된 결과를 얻을 가능성 또한 크다는 점이다. 2010년에 지진이 아이티를 덮쳤을 때 피해가 막대했는데, 빌딩 25만 채가 파괴되었고 수십만 명이 사망했다. 대참사의 이유 중 하나는 날림으로 진행된 졸속 건설 때문이었다.


로마 판테온은 무려 2,000년 전에 지어졌는데도 지금까지 끄떡없는 반면, 중국에서 최근에 지어진 콘크리트 주택은 부실시공으로 평균 수명이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것은 콘크리트의 역사에서 강화 콘크리트(이른바 ‘철근 콘크리트’)라는 대혁신이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출처 구글 이미지]

콘크리트의 새로운 미래


부실시공의 문제는 콘크리트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콘크리트의 또 다른 저주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물질 중 하나라는 점이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항공업과 삼림 파괴가 집중포화를 맞고 있지만, 시멘트 산업은 이 두 가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시멘트  산업은 전체 탄소 배출량의 무려 7~8퍼센트를 차지한다.


시멘트 산업에서 배출하는 탄소량 중 60퍼센트는 백악이나 석회가 가마에서 시멘트로 바뀌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학반응이고, 나머지 40퍼센트는 가마를 가열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차지한다. 후자는 화석연료 대신 다른 연료를 사용하면 되므로 비교적 쉬운 문제이다. 하지만 화학반응은 해결이 훨씬 까다로운 문제이다. 우리는 아직도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서 탄소를 제거하는 손쉬운 방법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몇 가지 해결책이 있다. 최종적으로 얻는 시멘트 강도를 떨어뜨리지 않더라도 다른 분말을 사용하여 클링커를 희석하면 된다. 플라이 애시나 석회석 같은 물질들을 첨가하는 방법도 있다. 이 기술들은 현재 널리 활용되면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고 있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멘트 산업은 CCS(Carbon Capture and Storage, 탄소포집저장)에 희망을 걸고 있다. 이는 굴뚝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걸러서 지하 같은 다른 곳에 저장할 수 있는 물질로 바꾸는 기술인데, 단점은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특히 양은 많고 마진은 박한 시멘트 산업은 더욱 그러하다.

[CCUS 개념도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몇몇 국가들에서 탄소 배출 문제는 시멘트 생산에 필요한 석회석의 부족으로 더 악화되었다. 많은 나라가 지하에 석회석을 풍부하게 매장하고 있음에도 신규 채굴 허가를 내주는 일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그런데 석회석이 빠지면 시멘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접착제가 사라지는 셈이다.


보유량이 풍부하지만 둘러싼 상황이 급변할 수 있는 건 석회석뿐만이 아니다. 콘크리트를 생산할 때는 화학반응을 위해서 양질의 용수를 계속 공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시멘트가 산업용수에 얼마나 의존하냐면, 전 세계 산업용수의 10분의 1을 시멘트 산업이 차지할 정도이다.


18~19세기에 과학자, 건설업자, 로비스트가 로마식 콘크리트 제조법을 발견하기 위해 경쟁했던 것처럼, 현재 탄소 배출 없는 콘크리트를 발명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아무튼 탄소 배출 문제가 해결된다면 콘크리트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물질 세계의 주력 제품일 것이다. 


3장 반도체의 탄생

-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놀라운 여정


자연에는 놀라운 여정이 존재한다. 유럽뱀장어는 북대서양의 사르가소해까지 길고도 신비로운 여행을 한다. 극에서 극으로 여행하는 극제비갈매기는 평생 동안 250만 킬로미터를 이동한다. 왕연어는 강의 거친 물살을 역류하며 수백 킬로미터를 거슬러 올라간다.


물질 세계로의 여행에서도, 가령 보잘것없는 모래알인 작은 석영 조각을 생각해 보자. 그것들은 수억 년간 혹은 수십억 년간 시간의 흐름을 지켜봤다. 처음에는 암석이었다가 결정이 되었고 다시 암석이 되었다. 암석으로 압축된 채 수억 년간 땅속에 묻혀 있다가 강과 바람의 침식 작용으로 다시 해방된다.


물살을 타고 강의 하류로 내려가서 하구나 해안으로 향했다가, 거기서 다시 조수에 의해 바다로 나아갔다가 압축되어 해저에 틀어박힌다. 빙하에 마모되고, 물길과 폭포를 타고 이동하는 모래알은 그런 식으로 잠들었다가 자연의 힘에 다시 깨어나서 또 한 번 순환을 시작한다. 석영모래(quartz sand)의 절반 정도가 암석-모래-암석의 과정을 여섯 차례 반복한다. 모래는 순환하는 과정 동안 원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다.


모래의 여정도 주목할 만하지만, 땅에서 파낸 암석 상태로 시작해 호주머니 속에서 끝나는 동안 변신을 거듭하며 마침내 지구상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발전된 제품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은 더욱 장엄하다. 지구를 두세 바퀴 돌며 화학, 몰리학, 나노기술 등 저 먼 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 최장 거리 오디세이의 정체는 바로 실리콘을  반도체로 탈바꿈하는 공급망이다.


순수 실리콘 회로의 웨이퍼를 보면 그 반들거리는 금속성 물체가 우리가 익히 아는 실리콘과 같은 물질인지 의아할 것이다. 실리콘이라면 모래, 돌 혹은 콘크리트의 성분 아니던가. 실리콘은 경이로운 물질이다. 유리가 될 수 있는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고, 콘크리트가 되어 건물을 지탱할 정도로 단단하다. 주기율표의 다른 원소들과 차별화된  전기적 특성을 갖고 있어서 반도체가 될 수 있다.

[실리콘 웨이퍼 출처 구글 이미지]

1940년대 과학자들은 반도체를 일종의 스위치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스위치 역할로 쓰인 첫 번째 경우는 트랜지스터였다. 트랜지스터는 1947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월터 브래튼(Walter Brattain)과 존 바딘(John Barden)이 고안했는데, 이들은 벨 연구소의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 밑에서 일하는 물리학자들이었다.

[최초의 트랜지스터 출처 구글 이미지]

최초의 솔리드 스테이트 스위치(solid state switch)는 혁명이었다. 각각 0 혹은 1이라는 2진 코드를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스위치들을 잘 결합하면 자그마한 실리콘 조각으로 컴퓨터를 만들 수 있었다. 이때 실리콘 조각은 둥그런 웨이퍼에서 잘라냈기에(chipped) '칩(chip)'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최초의 혁신은 1959년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ld Semiconductor)에서 일하던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에 의해 실리콘에 새겨졌다. 스위치 그 자체부터 집적회로까지 비약적 혁신이 일어났으며 이는 컴퓨터 시대의 물리적 기반을 이루었다.

[페어차일드 설립자들과 로버트 노이스 출처 구글 이미지]

1947년에 나온 최초의 기기는 어린아이의 손바다만 크기였으나 핵심 부품인 트랜지스터 자체는 약 1센티미터였다. 지금은 어떠한가?  1971년 최초의 현대식 컴퓨터 칩인 인텔 4004가 나왔다. 1센티미터의 칩에 약 2000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가 있었는데, 트랜지스터 하나하나가 적혈구 크기였다. 2020년대 초반, 스마트폰 프로세서에는 1제곱센티미터보다 더 작은 공간에 약 120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갔다.


트랜지스터는 마이크로미터가 아니라 나노미터 단위로 측정한다. 인텔에 따르면 이제 트랜지스터가 옹스트롬 단위로 추정되는 ‘옹스트롬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 1옹스트롬은 0.1나노미터, 즉 0,00000001센티미터이다.


실리콘밸리가 물질 세계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 이유는 오늘날 반도체가 실리콘밸리에서는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실리콘밸리에 남아 있던 마지막 반도체 제조 공장은 문을 닫았고, 반도체 설계  회사들이 몇몇 남긴 했지만 요즘은 앱, 플랫폼, 서비스 같은 소프트테크에 밀리고 있다. 따라서 반도체의 놀라운 여행을 추적하고 싶다면 실리콘밸리가 아닌 다른 곳을 찾아봐야 한다.


실리콘 칩의 탄생


1) 피코 사크로의 세라발 백석영


우리는 지금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서 남쪽으로 약 24킬로미터 떨어진 어느 숲속의 먼지 쌓인 돌길에 서있다. 갈리시아 지방에 속하는 이곳은 해마다 전 세계에서 25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는 순례지로 유명하다. 순레자들은 산티아고 대성당에 안치된 성 야고보(St James)의 무덤을 방문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대성당 인근에서 가장 눈에 떠는 산은 피코 사크로(Pico Sacro)이다.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저 아래 비옥한 들판에서 피라미드가 불쑥 솟아오른 것 같다. 3억 5000만 년 전, 로라시아(Laurasia)와 곤드와나(Gondwana)라는 초대륙이 바로 이곳에서 충돌하여 석영 노두를 하늘로 수백 미터 밀어냈다고 한다.

[피코 사크로 출처 구글 이미지]

숲속으로 들어가면 세라발(Serabal)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세라발은 석영 광산이다. 피코 사크로와 이곳에 인집한 언덕들을 하늘을 향해 들어올린 암맥은 세계에서 가장 순수한 석영 매장층이다. 이 하얗고 먼지 쌓인 돌덩어리가 몇 달 혹은 몇 년을 거치면 차세대 반도체가 된다. 그래서 바로 세라발이 우리 반도체 여행의 출발점인 이유이다.

[세라발 광산 출처 구글 이미지]

이 광산의 소유주는 스페인 회사 페로글로브(Ferroglobe)로,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 최대의 실리콘메탈(silicon metal) 제조사이다. '중국 제외'라는  단서를 붙인 이유는 오늘날 기술 혁명의 원료 성분들 대다수가 중국에서 채굴 및 제련되기 때문이다.


세라발 석영은 눈처럼 희지만, 로칼린이나 풍텐블로 등의 모래 광산에서  나오는 모래보다 실리카 함량이 약간 낮은 편이다. 실리콘메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형태이다. 우덴-웬트워스 기준에 따르면, 여기서는 모래가 아니라 야구공보다 약간 더 큰 돌덩어리를 살펴본다.  


2) 사봉 공장에서의 실리콘 메탈 제조


세라발에서 가져온 암석들은 라코루냐 항구 외곽의 사봉 공장으로 옮겨져 코크스용 석탄과 우드칩에 뒤섞인 채 용광로로 들어가서 섭씨 1,800도 이상에서 가열된다.


석영암에서 산소를 제거하여 용해된 실리콘이 바닥에 가라앉고 작은 주둥이를 통해 밑으로 빠져나온다. 원료 6톤이 들어가면 1톤의 실리톤메탈이 생긴다. 이 과정에 대해 “마치 중세시대 같습니다. 석탄을 집어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모리아 광산을 닮았죠.”

[사봉 공장과 용광로 출처 구글 이미지]

사봉 공장의 용관로에서 생산된 실리콘 메탈을 용광로 바깥으로 부어서 굳힌 후에 이 덩어리를 부수어 알갱이 모양으로 만든다. 이 단계에서 실리콘의 순도는 98~99퍼센트이다. 굉장히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반도체 또는 태양광 패널이 요구하는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


3) 지멘스 공정을 통한 폴리실리콘 제조


페로글로브에서 나온 실리콘 덩어리들은 독일 회사인 바커(Wacker)로 향한다. 바커는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 최대의 폴리실리콘 제조사인데, 폴리실리콘은 일반 실리콘보다 더 순수한 실리콘이다. 바커의 주력 공장은 부르크하우젠에 있다.

[바커 부르크하우젠 공장 출처 구글 이미지]

바커 공장에서 지멘스 공정(Siemens process)을 거치는데, 실리콘메탈을 아주 작은 조각으로 부순 뒤, 순수 염화수소와 혼합해서 진공 용기 안에서 섭씨 1,150도까지 가열하면 오래된 주전자 안의 전열선 같은 기다란 가지가 남는데 이게 초순수 실리콘이다. 여기서 순도가 99.9999999퍼센트에 달하는 반도체 등급의 폴리실리콘이 만들어진다. 아직도 중국은 이 단계를 못 넘고 있다.


4) 웨이퍼 제조


폴리실리콘은 지구 반대편 미국 북서부 해안의 오리건주 포틀랜드 외곽의 ‘신에츠’ 공장으로 향한다. 신에츠는 일본의 세계적인 웨이퍼 제조사이다. 신에츠 엔지니어들은 초크랄스키(Czochralski, 이른바 CZ) 공법의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출처 구글 이미지]

폴리실리콘은 석영을 녹인 도가니로 들어가 섭씨 1500도에서 가열된다. 이 과정에서 실리콘에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도가니도 매우 깨끗해야 한다. 연필 크기의 실리콘 막대기를 석영을 녹인 쇳물에 담갔다가 천천히 위로 잡아당기면서 회전시킨다.

[초크랄스키공법 출처 구글 이미지]

완벽한 고체 잉곳 혹은 공이 쇳물에서 나와 서서히 형태를 잡기 시작한다. 반짝거리며 길고 어두운 색의 금속 원통이 몇 밀리미터 두께의 실에 매달린 모습으로, 실리콘 원자들이 완벽한 결정 상태로 배열되어 있다.


이렇게 완성된 실리콘 잉곳은 2~3미터 높이인데, 탄화규소 실톱으로 잘라서 두께가 1밀리미터도 안 되는 매우 얇은 조각으로 분리한다. 지름이 자그마한 피자 정도인 이 원형 조각들을 화학물질로 깨끗하게 닦아서 표면을 아주 평평하게 만들면 마침내 완성이다.


중국이 이 부문을 완벽히 지배하지 못하는 이유는, 신에츠의 도가니에서 초순수 실리콘을 녹이려면 먼저 특정한 유형의 석영암이 필요한데 이 물질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전 세계 단 한 곳,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블루리지 산맥의 스프루스파인(Spruce Pine) 밖에 없기 때문이다.

[출처 구글 이미지]

5) 칩 제작


대만에는 세계 최고의 파운드리 회사인 TSMC가 있다. 모리스 창(Morris Chang)은 텍사스인수트루먼트(TI)에서 대만 총통의 전화를 받고 1987년에 TSMC를 설립하였다.


TSMC의 Fab 18 건물에는 축구장 25개 크기의 클린룸, 그 아래의 ‘서브팹’(웨이퍼를 세척한 화학혼합물을 올려 보내는 곳), 서브팹 아래 ‘댐퍼(damper, 진동을 줄여주는 구조물)가 있고, 그 안에서 도핑, 포토리소그래피 과정 등을 거쳐 칩이 완성된다.

[TSMC 공장 출처 구글 이미지]

여기서 만들어진 칩은 말레이시아 공정으로 가서 추가 검사를 받는다. 이제 제품들은 말레이시아에서 중국의 조립 공장으로 운반된다. 대부분은 자회사 폭스콘(Foxconn)으로 유명한 홍하이정밀 소속 공장들이다. 여기사 퀄컴, TI 같은 회사에서 설계한 수십 개의 칩을 로직보드에 부착한다.


하나의 칩이 완성되기까지 참여사 수백 개가 관여하는데, 이들의 도움이 없다면 반도체 공급망에서 가장 눈에 띄는 회사들조차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초크랄스키법을 위한 도가니, 그리고 볼을 얇게 자르는 다이아몬드 톱을 만드는 린턴 크리스털, 포토레지스트 기술분야의 선두주자 JSR, 웨이퍼 접합과 포토마스크 생산을 맡은 EV그룹과 IMS나노패브리케이션, 비코, 도쿄일렉트론, 렘리서치, ASM 퍼시픽,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에드워드, TSMC, 삼성전자, 인텔, ASML등에서 한두 곳만 사라져도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만들 수 없다.

[린턴 크리스털 제품, JSR, EVG 장비, IMS, Lam 리서치,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ASML 장비 출처 구글 이미지]

반도체 관련 공급망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석영을 실리콘메탈로 바꾸어주는 석탄 용광로가 없다면 실리콘도 없다. 실리콘을 용해하여 지멘스공정을 시작하는 염화수소가 없다면 폴리실리콘도 없다. 아래층의 서브팹에서 클린룸으로 화학물질과 가스를 펌프로 올려 보내지 않으면 반도체도 없다. 이토록 많은 화학물질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그 대답은 당신의 식탁 위에 있을지도 모른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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